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일생 리뷰

by 라온재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1935년 10월 12일, 이탈리아 모데나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빵집 주인이자 아마추어 테너 가수였고, 어머니는 담배 공장에서 일했다. 어린 시절 파바로티는 축구선수가 되기를 꿈꿨지만, 결국 아버지의 영향으로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9살 때 아버지와 함께 지역 합창단에서 노래를 시작했다. 음악적 재능을 보였지만 가난한 형편 때문에 정식으로 음악 교육을 받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청년 시절, 파바로티는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생계를 유지했고, 틈틈이 성악 공부를 이어갔다. 그는 모데나의 유명한 성악 교사인 아리고 폴라(Arrigo Pola)와 에토레 캄파그니올리(Ettore Campogalliani)에게 사사를 받으며 본격적인 훈련을 받았다.


1961년, 파바로티는 레조 에밀리아에서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의 ‘로돌포’ 역으로 데뷔했다. 이 데뷔는 그의 천부적인 고음과 감미로운 목소리를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몇 년간 그는 유럽 각지의 오페라 무대에 서면서 차츰 명성을 쌓아갔다.


1965년, 그는 런던 코벤트 가든에서의 공연을 통해 국제적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특히 1972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에서 선보인 ‘9번의 고음 C’를 완벽하게 소화한 공연은 전설로 남아 있다. 이 공연을 통해 그는 세계적인 스타로 떠올랐고, ‘고음의 제왕’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파바로티는 오페라 무대뿐만 아니라 대중음악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1990년대 초, 호세 카레라스, 플라시도 도밍고와 함께 ‘삼테너’ 콘서트를 개최하면서 클래식 음악을 전 세계 대중에게 알리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는 대형 스타디움과 야외 공연장에서 수십만 명을 대상으로 공연을 열었으며,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를 이끈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음악 외에도 인도주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세계 기아 퇴치, 난민 구호, 암 연구 기금 마련을 위한 자선 콘서트를 수차례 열었다. 그의 따뜻한 성격과 인간적인 면모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파바로티는 2004년 마지막 공식 오페라 공연을 가졌고, 이후에도 ‘고별 투어’를 통해 전 세계를 순회하며 팬들과 작별을 고했다. 그러나 건강 문제로 인해 점차 활동을 줄여야 했다. 그는 췌장암 판정을 받고 투병하다가 2007년 9월 6일, 고향 모데나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는 71세였다.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천상의 목소리’로 불리며 오페라 역사상 가장 사랑받는 테너 중 한 사람으로 기억된다. 그의 목소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며, 음악과 인간애를 노래한 거장의 흔적은 영원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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