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불러주면 아무 노래나 다 좋아.
가끔 기타를 치며 찬송가나 가요를 불러 드리면, 어머니는 늘 그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이제 다시 그 노래들을 불러보지만, 이젠 대답해 주실 수 없네요.
무릎 베개를 해주시며 제 이야기를 들으시던 어머니.
제가 세상에서 힘든 일을 겪을 때마다 떠오르는 건 어머니의 따뜻한 무릎입니다.
제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함께 웃고, 함께 걱정해 주시던 그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이제야 가슴 깊이 깨닫습니다.
어머니 곁에 기대어 마음을 나누던 그 순간이 다시 돌아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환갑을 넘긴 나이에 요양원 미용 봉사를 위해 직접 미용사 자격증까지 따셨던 어머니.
다른 이를 돌보는 기쁨을 아셨던 당신을 떠올리며, 저도 제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어머니는 늘 어려운 이웃을 위해 힘쓰셨습니다.
집 근처 독거노인들을 챙기시고, 추운 겨울이면 따뜻한 옷과 음식을 나누며 말벗이 되어 주셨지요.
제가 보지 못했던 곳까지 세심히 살피며, 망설임 없이 손을 내미셨던 어머니.
당신에게 베풂은 의무가 아닌 삶 그 자체였습니다.
제가 매달 드리던 작은 용돈조차, 어머니는 이웃을 위해 쓰셨습니다.
“나는 괜찮아. 나는 그래도 저분들보다 훨씬 나아.”
항상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셨던 당신.
그 넉넉한 마음을, 저도 닮고 싶습니다.
밝은 보름달을 바라볼 때마다 어머니 얼굴이 떠오른 지도 어느덧 20년이 흘렀습니다.
아들은 환갑을 넘겼고, 손녀와 손자들은 모두 미국에서 의사가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보셨다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요.
어릴 적, 어머니는 늘 자식 걱정을 하셨지요.
우리 아이들이 잘 자랄 수 있을까, 좋은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이제 저는 어머니께 자랑스럽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손녀와 손자들은 훌륭한 의사가 되어 많은 사람을 돕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베풀었던 사랑과 따뜻함을, 그들도 이어가고 있습니다.
“사랑은 내리사랑이야. 네 가족이 생기면 아내와 아이들을 먼저 사랑하고, 부모는 잊어도 돼.”
결혼 전, 어머니는 자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때는 그 뜻을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아내가 뭘 이야기하든 세 번 반복하면 그땐 네가 져라.”
지혜로웠던 어머니의 말.
그 말씀을 지키려 노력했지만, 결국 저는 부족했습니다.
몇 년 전, 이혼을 했습니다.
어머니가 계셨다면, 눈물과 기도로 저를 붙잡아 주셨을 텐데…
그때 왜 어머니의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하지 못했을까요.
어머니가 맺어주신 소중한 인연을 끝까지 지키지 못해 죄송합니다.
당신이 가르쳐주신 사랑과 이해를 끝내 지켜내지 못한 제 자신이 원망스럽습니다.
이제 와 돌아보니, 그땐 제가 몰랐던 것이 너무 많습니다.
잠자리를 힘들게 했던 베개 하나, 늘 아프셨던 허리, 생활비 걱정까지…
그 모든 것을 왜 더 살펴드리지 못했을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어머니의 고통을 몰라서 너무 미안합니다.
하루하루 힘들었던 삶, 말하지 못했던 아픔들, 묵묵히 감당하셨던 외로움까지…
저는 너무나도 몰랐습니다.
어머니가 힘든 기색 없이 미소 지으실 때, 그 미소 속에 숨겨진 아픔을 알아채지 못했던 제가 원망스럽습니다.
이제야 어머니의 삶이 얼마나 고되었는지, 얼마나 외로웠을지를 깨닫습니다.
너무 늦어버린 후회가 가슴을 저밉니다.
어머니, 너무 사랑하고, 너무 그립습니다.
오늘 밤도 일하며 문득 달을 바라보며, 당신을 그려봅니다.
언제나 제 곁에 계셨던,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어머니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