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리 부촌에서 살아남는 법

그리고 속 시원한 탈출기

by 라온재

Frontenac. 미주리주에서도 손꼽히는 부촌이다. 같은 공립학교라도 Ladue 학군은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훌륭했다. 단점이라면, 물론 집값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하지만 시카고나 LA 부동산 가격에 비하면 여기는 아직 귀여운 수준이다.


내가 살던 집을 소개하자면, 대지 2800평에 건물 약 180평. 부동산 중개인들이 “Cozy한 크기”라고 농담할 만큼, 사실 이 동네 기준으로는 가장 작은 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영장에 집 안 체육관, 사무실까지 갖췄고, 식사 시간에 아이들을 부르기 위해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를 필요도 없었다. 대신 집안에 설치된 ‘벨’을 눌렀다. 종소리 하나에 애들이 어디선가 굴러떨어지듯 모여들었다.


이 동네 기본 패키지는 다 비슷했다. 문제는, 집 안에 다섯 식구가 꽉 들어차 있던 우리 집과 달리, 이웃집들은 대부분 노부부 두 명이 살다가, 시간이 지나면 한 분만 남는다는 점이었다. 그러다 보니 뒷마당은 점점 정적에 잠기고, 수영장은 썰렁해졌다.


수영장 관리는 생각보다 낭만적이지 않았다. 매일 아침마다 알지(이끼) 제거, 불순물 떠내기, 필터링, 매주 클로린 샤킹과 알지사이드 작업. 한두 번 거르면 물이 금세 오염되었다. 아이들은 물 위에 죽은 벌레 몇마리, 나뭇잎 몇 장만 떠 있어도 이건 공포 영화야 라며 발도 담그지 않았다. 봄에는 꽃가루, 여름엔 토네이도, 가을에는 낙엽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겨울에는 클로징 커버를 덮고 나서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그러나 겨울이라고 쉬울 리 없다. 2800평 대지 위로 내리는 눈과 매일 싸워야 했다. 긴 진입로를 치우다 보면, 어느새 ‘삶’이란 단어가 눈처럼 녹아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봄에는 토네이도에 부러진 나무들과 씨름하고, 여름이면 끝없이 펼쳐진 잔디를 깎고 스프링클러를 돌리는 데 하루가 갔다.


게다가 나는 언젠가 멋을 부려보고자 집 한 켠에 연못까지 파고 값비싼 코이피쉬를 길렀다. 그러나 동네 수달이 이를 ‘뷔페 오픈’으로 착각했는지, 매일 몇 마리씩 사라졌다. 철망을 둘렀지만 헛수고였다. 결국 수달이 웃으며(?) 이긴 셈이 되었다.


텃밭도 있었다. 처음에는 방울토마토 몇 송이만 키울 생각이었다. 그런데 자라면서 욕심이 커졌다. 어릴 적 꿈이었던 내 손으로 키운 채소를 현실로 만들어 보고자 애썼다. 물을 주고, 지지대를 세우고, 잡초를 뽑고. 그렇게 애지중지 키운 토마토가 붉게 익었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날 아침, 텃밭을 둘러보니, 방울토마토가 몽땅 사라져 있었다. 범인은 동네 토끼였다. 토끼들은 예의도 없었다. 단 한 알도 남기지 않고, 가장 잘 익은 것부터 골라 먹었다. 그렇게 애써 키운 토마토는 토끼들의 간식으로 ‘헌납’되고 말았다. 내가 심은 텃밭은 결국 동물원 뷔페로 전락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집 한쪽 구석에서는 사슴이 새끼를 낳았다. 어미 사슴은 눈치도 보지 않고 내 잔디밭을 분만실 삼았다. 그렇게 태어난 새끼 사슴은 우리 집을 자기 집처럼 어슬렁거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집의 진짜 주인은 나인가, 아니면 사슴인가.”


그러나 우리 집은 자유로웠다. 아이들은 한밤중에 트럼펫과 트롬본을 마음껏 불었다. 단 한 번도 이웃에게서 항의가 들어온 적이 없었다.


청소는 단순했다. 하루에 한 층만 진공청소기를 돌렸다. 안방만 해도 15평이 넘었으니, 부부 각자 워크인 옷장이 따로 있고, 화장실은 호텔 로비 수준의 크기였다. 서로 얼굴 안 마주치고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었다.


그렇게 숨 가쁘게 유지하던 집이었다. 그러나 결국, 인생의 또 다른 챕터를 열기 위해 이혼을 하며 이 집을 팔았다.

놀랍게도, 집을 팔고 나서야 느꼈다.


속이 이렇게 시원할 수가!


끝없이 깎아야 할 잔디도, 끝없이 쓸어야 할 낙엽도, 갑자기 몰아칠 토네이도 걱정도, 코이피쉬 실종사건도, 모두 지난 일이 되었다.

앞으로는, ‘나를 소모하는 집’이 아니라 ‘나를 쉬게 하는 집’에서 살고 싶다.


가끔은 이렇게 생각한다.

“사람이 집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집이 사람을 소유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러니, Frontenac 부촌 탈출기.

그건 비단 한 채의 집을 판 것이 아니라,

어쩌면 내 삶의 무게를 내려놓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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