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해: 말로 다 할 수 없는 마음의 외침
“우리가 말할 수 없는 것은, 몸이 대신 말한다.”
— 어느 정신과 의사의 기록 중에서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의 세계는, 겉으로 보기엔 평온할지 몰라도 그 내면은 늘 거센 파도가 치고 있습니다. 때로는 이 거센 마음의 소용돌이를 감당할 수 없을 때, 그 고통이 자해라는 형태로 표출되기도 합니다.
자해란, 말 그대로 자기 자신을 다치게 하는 행동입니다. 피부를 스스로 긋거나, 벽에 머리를 부딪히거나, 손톱으로 살을 파내기도 합니다. 언뜻 보면 ‘왜 저런 짓을 하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사실 자해는 생명을 끊고자 하는 행위라기보다 살아내기 위한 몸부림인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우울증, 조현병, 경계선 성격장애 같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해는 내면의 고통을 표현하는 하나의 언어입니다. 말을 해도 통하지 않을 것 같고, 이해받을 수 없을 것 같은 절망 속에서, 그들은 상처를 내는 것으로 자신이 여전히 ‘느끼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려 합니다.
“아픔이라도 느끼고 싶었다. 아픔이 있다는 것은, 내가 아직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다는 증거였으니까.”
자해를 하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떤 이는 너무 큰 감정의 고통을 물리적 고통으로 덮으려 하고, 또 어떤 이는 스스로를 벌주려 합니다. ‘나는 가치 없는 사람이다’, ‘나는 벌을 받아야 한다’는 깊은 자기혐오가 자해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때로는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기 위한 몸짓이 되기도 하지요.
“나는 살아 있다. 그러나 누구도 내 살아 있음을 알아채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자해를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됩니다. 자해는 종종 반복되면서 점점 심각해지고, 결국은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자해가 보일 때는, 단순한 ‘행동 문제’로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그 이면에 숨겨진 절박한 마음을 헤아려야 합니다.
도움을 주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비난하거나 다그치지 않는 것입니다. ‘왜 그런 짓을 했느냐’고 몰아세우면, 자해자는 더욱 마음의 문을 닫고 맙니다. 대신 조심스럽게, 부드럽게, “네가 이렇게까지 아플 줄은 몰랐어. 이야기해줄 수 있겠니?” 하고 묻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치료적인 접근에서는 인지행동치료나 변증법적 행동치료처럼 감정을 다루는 방법을 함께 배우는 과정이 도움이 됩니다. 때로는 약물치료가 충동을 조절하는 데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자해 없이도 살아갈 수 있도록 새로운 길을 찾아주는 것입니다. 감정을 표현할 다른 방법을 배우고, 고통을 견디는 힘을 기르고, 세상과 연결될 수 있는 따뜻한 다리를 놓아주는 것 — 그것이 자해를 멈추게 하는 진짜 시작입니다.
“아무도 내 손을 잡아주지 않았던 밤, 나는 내 상처를 통해 울었다.”
자해는 단순한 ‘나쁜 행동’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독히 아팠던 어떤 순간들의 흔적이며,
살고 싶었던 마음의 뒤틀린 표현입니다.
그 아픔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한 사람의 존재 전체를 껴안으려는 노력이, 자해라는 외로운 외침에 가장 깊은 위로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