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대통령에게 라포를 말할 것인가

다리를 놓다 : 라포형성의 비밀

by 비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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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대화를 하지 않는다. 우린 리액션을 주고받을 뿐이다.”




정치는 ‘대표’의 시대에서 ‘댓글’의 시대로 바뀌었다.

외교는 ‘정상회담’이 아니라 ‘라이브방송’처럼 흘러간다.

사람들은 말한다.

"유튜브는 라포의 지옥"이고

"틱톡은 연결의 패러디"라고.


하지만, 거기에도 진짜 라포는 존재한다.





라포(Rapport)

심리학에서 말하는 이 단어는

한마디로 ''마음을 잇는 다리’다.


하지만 요즘 그 다리는

너무도 쉽게 끊기고

너무도 쉽게 만들어진다.





"아이고 형님~ 잘 보고 있습니다!"는 라포가 아니다.


1인방송 댓글창에선

"행님~ 진짜 팬이에요! 행님"라는 말이

라포를 뜻하지 않는다.


그건 기계적인 생존술이다.

‘차단’ 당하지 않기 위해, 검열당하거나 강퇴당하지 않기 위해 던지는, 살고자 할 뿐인 생존응대 헌사일 뿐.

말의 온도도 없고, 맛도 향도 없으며 심지어 눈빛의 떨림도 없다.

진짜 라포는, 칼을 들고 다가가는 것이다.




° 라포는 날 선 신뢰다.


라포는 상대방을 웃게 만드는 기술이 아니다.

그건 유머일 뿐이다.

라포는 칼끝처럼 날카롭게,

상대의 ‘심장’ 앞에 멈춰야 한다.


"형, 저 진짜로 궁금한 게 있는데요."

"누나, 저 이거 말하면 욕먹을 수도 있어요."

"의원이시니까 한 번만, 듣고 진짜 대답해 주세요."


이런 문장이 라포의 전초전이자, 독한 식전주이자 달콤 쌉싸름한 웰컴티 인것이다.





° 정치와 라포: 연설이 아니라 대화일 때 표가 생긴다.


정치는 말로 지배하는 게 아니라,

‘말을 멈추는 타이밍’으로 신뢰를 얻는다.


이재명 대통령의 연설을 본 사람들은 말한다.

“말을 잘한다.”

하지만 진짜 무서운 건 ‘듣는 타이밍’이다.


상대가 울먹일 때,

눈을 마주치고 “괜찮습니다.”

이 한마디로 표심은 움직인다.


그건 라포의 순간이다.

말을 잘하는 게 아니라, ‘공감의 정지화면’을 잘 만드는 것. 왜 있잖은가. CF나 영화의 한 장면에 모두 일시정지 시켜놓고, 혼자 놀며 잘못된 부분을 살짝살짝 고쳐놓는 클리셰.





° 외교와 라포: 유머가 협상보다 강하다.


외교에서는 긴장과 긴장의 줄다리기만 있을까?

아닐 것이다.

진짜 외교는, 라포가 터져야 된다.

난 외교는 안 해봤지만(해봤을 리가), 외적인 교감에서는 항상 유머가 함께 공존했을 때 이득을 본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트럼프와 악수할 때,

살짝 손을 끌어당기며 웃은 그 순간,

그건 협상이 아니라 라포의 한 컷이다.


"이 사람, 겉만 점잖은 줄 알았더니, 농담도 하네."

"이 사람, 똑똑한데 웃기네."

"이 사람, 못생겨서 더 웃기네."


이런 감정이 한 번 터지면, 협상력은 2배가 된다.





°1인 방송과 라포: 시청자수보다 깊이, 후원금보다 멀리


틱톡, 아프리카, 유튜브, 팝콘 라이브.

수십만의 팔로워나 시청자수보다 더 무서운 건,

딱 한 사람과 통하는 연결.


“오늘 제 얘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오늘도 그분 오셨나요?”

“그때 말했던 그 사연, 그거 저도 잊지 못했어요.”


라포란, 이름을 기억하는 능력이다.

숫자 대신 사람을 기억하면,

그 방송은 살아남는다.





°댓글과 라포: 싸우지 않고 붙어있기


댓글에서 라포는 가능할까?

두말해 봐야 뭐 할까.. 가능하다.

단, 욕 대신 질문을 쓰면 된다.


"그 생각, 조금만 더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이 부분에서 왜 그렇게 느끼셨는지 궁금해요."

"저는 반대인데, 혹시 이렇게 생각하신 적은 없나요?"


이게 댓글 속 라포다.

‘싸움을 피하는 게 아니라, 싸움을 연결로 바꾸는 것.’

이게 라포의 기술이자 예술이다. 하지만 댓글로 피 터지게 싸우는, 배설의 쾌감이라는 달콤한 유혹은 버티기 힘들지.(한 대 맞았는데 ,쉬원하게 두대는 쳐야..)





°라포가 깨질 때, 진심은 드러나고 관계는 나락으로.


하지만 이 모든 연결은

단 한마디의 비웃음으로 깨진다.


"그딴 말해서 뭐 하냐고!?"

"니가 뭘 안다고 그래?"

"틀딱 꺼져."

"이 쉐킷쉐킷이 여기서 틀딱이 왜 나와 야잇!"


이런 댓글은

그동안 쌓아온 모든 다리를 불태운다.

그리고 남는 건 진짜다.

"이제, 진심만 남았네?"


그 순간이,

반란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 바보멍충이들의 반란은 ‘다리’를 놓는다.


우리는 바보였다.

진심을 말하면 욕먹는 줄 알았다.

웃어주면 호구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침묵했고, 웃음을 삼켰고, 대화를 끊었다.(똥도 끊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가 다리를 놓는다.


욕 대신 질문을,

비웃음 대신 이름을,

침묵 대신 고개 끄덕임을 선택한다.





우리는 다시 말한다. “나도 너처럼 생각한 적 있어. 근데, 말 걸어줘서 고마워.”


우리는 연결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린 라포로 싸운다.

우리는, 바보멍청이들의 반란이다.







“이 글은 고백이다. 라포란 말이 어려워서, 우린 그냥 ‘정 붙인다’고 했다.
그 정이, 세상을 바꾼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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