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 공모전
그 사이트는 갑자기 생겨났다.
<No Title>이라는 이름의 이 사이트의 이용 방법은 딱 한 가지.
[어떤 글, 그림, 영상이든 상관없습니다! 창작물을 이 사이트에 등록만 하시면 지금까지 본 사람들을 집계해 정산해 드립니다! 단, 등록된 창작물은 이름을 잃고 숫자로 분류되어 모두에게 공유될 예정이니 신중하게 등록하세요.]
이 사이트를 우연히 처음 발견한 한 아이가 별생각 없이 좋아하는 유튜버의 영상을 등록했다. 곧바로 아이의 통장으로 1500만 원이 입금됨과 동시에 영상이 사이트에 1-1로 업로드되었고, 다른 모든 곳에서 사라졌다.
이 사이트는 순식간에 세계로 퍼져나가 대혼란을 일으켰다. 특히, 침몰하는 배에 탄 연인들의 이야기나 이마에 흉터가 있는 마법사 이야기를 등록해 수백억의 벼락부자가 된 사람들이 생기면서 하루 만에 세계의 유명 작품들이 모두가 공유하는 공공의 것이 되어버렸다.
전 세계에 비상이 걸렸다. 긴급 세계 회의가 열렸고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했으나 무슨 짓을 해도 그 사이트를 만든 사람도 찾을 수 없었고 사이트를 없앨 수도 없었다. 이쯤 되자 자신들의 영역이 아니라고 판단한 각 나라의 정부는 앞다투어 창작물을 등록해 손해를 메꾸기 시작했고 2주쯤 되자 더 이상 등록할 것이 없었다. 세상에 창작물이 사라진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자신의 것을 인터넷에 올리지 않는다. 혼자 조용히 올리던 일기마저 돈이 되는 세상에서 자신의 것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작품의 가치가 숫자로 매겨지길 원치 않았던 사람들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다른 이들에게 정산이 되는 것을 보며 좌절했다. 이런 세상을 인정할 수 없었던 소수의 사람들은 종이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R}이라는 이름의 한 상점이 대대적인 홍보를 시작했다.
[새로운 창작물 삽니다! 종이로 직접 가져오시거나 영상을 보내주시면 돈을 드립니다! 단, 기존에 공유되고 있는 것이 아닌 온전히 새로운 것만 받겠습니다.]
전 세계 사람들은 앞다투어 이 상점에 자신의 새로운 창작물을 팔았다. 다만, 상점은 길이나 내용에 상관없이 새로운 것이라면 일괄적으로 같은 돈을 지불했다. 적은 돈이었지만 <No Title>이 생겨난 이후 자신의 것을 직접 정산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처럼 보였기 때문에 이용객은 점점 늘어났다.
이후 상점 {R}은 그것들을 이용해 <No Title>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자신들만의 사이트를 만들고 사들인 것들을 등록함과 동시에 각종 수단을 이용해 사이트에 등록된 것을 사람들이 클릭하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조회수를 올리고 <No Title>에 등록하는 방법으로 사들인 돈 대비 압도적인 수익을 거두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들의 것을 헐값에 사들인 상점이 그런 식으로 돈을 버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은 분노했다. 막아보려 했지만 그 사이트는 글을 클릭해 들어가는 순간 조회수만 올리고 내용이 사라졌기 때문에 그들보다 먼저 <No Title>에 등록할 수가 없었다. 운 좋게 먼저 등록하더라도 조회수가 낮거나 거의 없어 상점에 글을 파는 것보다 돈을 벌 수 없단 걸 깨달은 사람들은 결국 계속해서 상점에 자신의 작품을 팔았다.
많은 시간이 지나고 수많은 혼란과 후퇴를 겪은 끝에 인류는 완전히 이 시스템에 종속되었다.
기존의 창작물은 <No Title>에, 새로운 창작물은 {R}을 통해 지속적으로 <No Title>에 등록되었다.
예술성이나 내용, 길이에 상관없이 같은 금액을 지불받는 {R}의 시스템 덕분에 사람들은 갈수록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러다 더 이상 등록할 수 있는 것이 없게 되자 새로운 것을 생각하려고 해 봤지만 이미 통제된 시스템 속에 스스로를 가둔 사람들은 그 이상을 생각할 수 없었다.
그쯤 되자 <No Title>에 처음으로 새로운 공지가 올라왔다.
[행성 E17 여러분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저희는 원하는 목표를 초과 달성했으니 이만 서비스를 종료할까 합니다. 저희 사이트에 등록된 모든 것들은 소멸됩니다. 상관없으시죠? 아 저희의 또 다른 상점 <R>도 함께 종료할 예정입니다. 즐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