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언제나 선택할 수 있었다
엄밀하게는 138억년전 빅뱅부터의 역사를 빅히스토리라고 하지만, 여기서는 편의상 선사시대 인류사와 혼용합니다.
우리는 어디서 왔고,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까. 이 질문은 너무 오래된 질문이라 오히려 지금 시대에는 낯설게 느껴진다. 우리는 대부분 “역사는 진보한다”, “인간은 본래 경쟁적이다”, “국가와 법은 혼란을 막기 위한 필연이다”라는 말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그렇게 역사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흐름처럼 여겨지고, 지금의 사회 시스템은 불가피한 진화의 산물로 간주된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이 ‘당연한 이야기’들에 균열을 일으키는 책들이 출간되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는 인류의 기원을 ‘허구를 믿는 능력’으로 설명하며, 인류가 만든 모든 제도가 결국 믿음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통찰력 있게 드러냈다.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는 지리적 요인이 세계의 불평등을 낳았다는 놀라운 설명으로 독자들을 사로잡았고, 데이비드 크리스천의 『시간의 지도』은 빅히스토리 관점에서 우주와 인간의 역사를 통합적으로 서술했다. 그리고 이 흐름의 연장선이자 전복으로 등장한 책이 바로 데이비드 그레이버와 데이비드 웬그로의 『모든 것의 새벽』이다.
나는 이 네 권의 책 모두가 인간 사회를 보는 눈을 넓혀주었지만, 그중에서도 『모든 것의 새벽』이 던지는 질문이 가장 근본적이고 전복적이라 느꼈다. 이 책은 단순히 과거를 해석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우리가 ‘문명’이라 부르는 삶의 형태가 하나의 가능성에 지나지 않으며, 그 이외의 무수한 가능성들이 과거에도, 현재에도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집요하게 보여준다.
『총, 균, 쇠』는 세계의 불평등이 인종이나 지능이 아니라 지리적 조건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유라시아 대륙이 가축화 가능한 동식물을 보유하고, 동서로 긴 지형 덕분에 작물과 기술이 더 쉽게 퍼졌다는 설명은 획기적이면서도 설득력 있다. 다이아몬드는 자연환경이 문명의 조건을 결정했으며, 결과적으로 총기, 병균, 철기를 먼저 갖게 된 사회가 다른 사회를 지배하게 되었다고 분석한다. 이 책은 인류 문명의 불균형을 구조적으로 설명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지만, 인간 사회의 다양성과 윤리적 선택의 문제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침묵한다.
『사피엔스』는 인간이 집단을 이루고 대규모 사회를 가능하게 만든 것이 허구의 공유, 즉 ‘상상의 질서’ 덕분이라고 본다. 법, 종교, 돈, 국가 모두l 상상의 산물이며, 인간은 이를 통해 협력하고, 조직하고, 지배하게 되었다. 특히 농업혁명을 “사기”라고 부르는 대목은 인상 깊다. 더 많은 식량을 확보했지만, 인간은 오히려 더 많은 노동과 불평등 속에 빠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거대한 흐름 속에서 인간을 수동적으로 묘사한다. 한 번 농업과 문명을 선택한 이상, 복잡성과 권력은 따라올 수밖에 없다는 식의 결정론이 깔려 있다. 인간은 구조에 끌려가는 존재처럼 보인다.
반면 『모든 것의 새벽』은 인간에게서 그 잃어버린 자율성의 기억을 되살린다. 수렵채집 사회라고 해서 모두 평등하거나 단순했던 것이 아니며, 농경을 시작했다고 모두가 위계적 사회로 이행한 것도 아니었다. 과거의 많은 사회는 계급과 권위를 임시적으로 수용하거나 완전히 거부하기도 했다. 거대한 도시가 존재했으나, 그 안에 왕도, 귀족도, 경찰도 없었던 경우도 존재했다. 어떤 공동체는 계절에 따라 지배체계를 도입했다가 해체했고, 어떤 공동체는 위계 자체를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방식으로 사회를 유지했다.
인간 사회의 구조는 한 방향으로만 진화한 것이 아니다
이처럼 『모든 것의 새벽』은 역사에 ‘다른 길’이 있었다는 사실을 구체적인 고고학과 인류학적 사례를 통해 제시한다. 인간 사회의 구조는 한 방향으로만 진화한 것이 아니다. 수많은 갈림길과 선택지, 실험과 실패가 존재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체제—자본주의, 민족국가, 고정된 소유의 개념—역시 역사 속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일 뿐이다.
이 책이 제시하는 개념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인간이 과거에 누렸던 세 가지 자유다. 하나, 다른 공동체로 이동할 수 있는 자유. 둘, 명령에 따르지 않을 자유. 셋, 사회 구조 자체를 재편할 수 있는 자유. 오늘날의 우리는 이 세 가지 자유를 거의 잃었다. 우리는 이동의 자유를 국가의 경계로부터, 불복종의 자유를 시스템으로부터, 구조를 바꿀 자유를 제도 그 자체로부터 제한받고 있다. 민주주의는 있지만, 그 민주주의의 바깥을 상상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시간의 지도』 역시 인간과 우주의 관계를 통합적으로 조망하는 데 탁월한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은 ‘왜 우리가 지금처럼 살게 되었는가’라는 질문보다 ‘어떻게 복잡성이 증가했는가’에 집중한다. 정치와 윤리의 차원보다는 에너지 흐름과 정보의 누적이라는 과학적 설명에 가까운 접근이다. 그에 비해 『모든 것의 새벽』은 인간 사회의 방향성과 가능성을 되짚으며, 더 나은 삶의 상상력을 회복시킨다.
지금의 삶이 전부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느끼는 모든 사람에게.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지금의 세계가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국가라는 단위, 노동의 구조, 사유재산과 위계의 존재—all of that—이 반드시 필요한 것도, 불가피한 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너무 오래 "세상은 원래 이런 거야"라는 말을 들어왔다. 인간은 본래 이기적이고, 불평등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권력은 질서를 위해 필요하다고. 하지만 『모든 것의 새벽』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꼭 이렇게 살아야만 했을까?”
이 질문 하나만으로도, 이 책은 우리 삶의 풍경을 근본적으로 흔든다. 어쩌면 우리는 아직도 ‘모든 것의 새벽’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아직 완전히 밝아오지 않은 새벽녘, 수많은 가능성과 선택의 문 앞에 우리가 있다는 감각. 그 감각을 되찾고 싶은 이라면, 이 책을 꼭 한번 읽어보길 권한다. 지금의 삶이 전부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느끼는 모든 사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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