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책 Check 03화

정유정 작가의 복수 트릴로지

되돌릴 수 없는 감정들에 대하여

by KOSAKA

정유정의 이름을 들을 때면 나는 늘 긴장하게 된다. 그녀의 소설을 펼치는 일은 언제나 마음의 안전핀을 하나 빼는 일에 가깝기 때문이다. 정유정은 인간의 마음속에 잠든 짐승을 흔들어 깨우는 데 주저함이 없다. 특히 복수라는 감정이 인간을 어떻게 파괴하고 또 변형시키는지를, 세밀하게 조율된 문장과 정확한 플롯 속에 정교하게 배치한다.


그 가운데에서도 『7년의 밤』, 『28』, 『종의 기원』 이 세 작품은 정유정 문학의 복수 삼부작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공통적으로 복수라는 감정이 주요 동력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단순한 응징이나 클리셰적 반전이 아니라, 이 감정이 인물 내면에 어떻게 침전하고, 또 어떻게 파열하는지를 치밀하게 탐색한다.


『7년의 밤』은 가장 전형적인 복수 서사로 출발한다. 살인을 저지른 남자와, 그로 인해 삶이 무너진 피해자의 아버지. 이 둘의 대립은 마치 고전적인 선악 구조처럼 보이지만, 정유정은 그 단순한 도식에서 벗어난다. 그는 피해자 오영제를 단순한 정의의 사도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복수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파괴를 행하는, 자신조차 괴물이 되어버린 인물로 묘사한다. 복수는 여기서 '정당한 감정'이 아닌, 피할 수 없는 중독이자 숙명으로 기능한다. 결국 그 복수는 아들의 삶까지 파괴한다. 그러니 독자는 자연스럽게 묻게 된다. "복수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28』은 조금 더 집단적이고 문명적인 스케일의 파국을 다룬다. 전염병이 번지는 재난 상황 속에서, 인간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서로를 의심하고, 공격하며, 생존을 위한 선택을 내린다. 여기서의 복수는 특정 인물 간의 개인적인 감정보다, 체계의 배신에 대한 응답처럼 느껴진다. 나는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를 이 지경까지 몰고 간 세상은 미워했다. 그래서 파괴를 택한다. 『28』의 복수는 냉소적이고 허무하다. 그것은 정의가 아닌 절망의 산물이다. 구조되지 못한 자가 마지막으로 택할 수 있는 자구책으로서의 복수. 그것은 전염병보다도 더 빠르게 퍼지는 감정의 전염이다.


그리고 『종의 기원』은 이 복수의 감정을 가장 정밀하게 들여다본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당한 주인공은, 연쇄살인의 형태로 복수를 감행한다. 그 과정은 매우 치밀하고 계산적이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그 복수의 행위 하나하나는 인간의 심리에 대한 집요한 탐색처럼 읽힌다. 정유정은 복수를 '욕망의 변주'로 그린다. 사랑이 좌절될 때, 인간은 왜 이렇게까지 잔인해질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준다. 『종의 기원』의 주인공은 감정을 제거한 채, 복수를 합리화한다. 하지만 그 속에는 누구보다 깊은 상처와 공허가 자리하고 있다. 복수는 그에게 고통의 배출구가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은 고통을 끌어들이는 통로다.


복수하는 자의 복합적인 내면을 탐구


이 세 작품의 공통점은, 복수라는 감정을 다룰 때 한결같이 복합적인 내면을 탐구한다는 것이다. 그 어떤 작품에서도 복수가 완전한 해방이나 정의의 실현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복수 이후의 공허, 복수로 인해 무너지는 자아, 그 잔해 위에 남겨진 관계들의 균열을 응시한다. 정유정의 인물들은 모두 '되돌릴 수 없음' 속에 놓인다. 그 되돌릴 수 없는 감정, 되돌릴 수 없는 선택, 되돌릴 수 없는 결과 속에서, 독자 역시 쉽게 판단을 내릴 수 없게 된다.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가? 복수는 용서보다 고결한가, 혹은 더 저열한가?


이런 질문들을 남기는 소설가, 그래서 정유정의 소설은 쉽게 닫히지 않는다. 책장을 덮은 이후에도 그 인물들이 품었던 분노와 슬픔이 자꾸 마음속을 건드린다. 나는 그 감정들을 오래도록 끌어안고 살아간다. 그것이 정유정이 소설 속에서 보여준 복수의 진짜 얼굴, 즉 '치유되지 않은 상처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복수는 끝내 아무것도 회복하지 못한다. 오히려 모든 것을 훼손한다. 그렇기에 정유정의 복수 소설들은 반어적으로, 복수가 아닌 삶의 고통을 직시하는 용기를 요구한다. 그리고 그 용기는, 정유정의 문장을 통과할 때만 겨우 길어 올릴 수 있다. 복수로 시작해, 인간으로 돌아오는 문학. 바로 그것이 정유정식 복수 3부작이 독자에게 남기는 가장 깊은 인상이다.


그건 그렇고, 작가님 다음 작품은 언제 나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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