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책 Check 04화

[서평] SF는 미래의 옷을 입은 오늘이다

필립 K. 딕에서 김초엽까지

by KOSAKA

SF라는 장르는 때때로 ‘공상과학소설’이라는 이름 아래 가볍게 소비된다. 우주선과 외계인, 기계와 미래 기술이 등장하면 그것이 곧 SF로 오인되곤 한다. 그러나 좋은 SF는 단지 상상력의 결과물이 아니다. SF는 종종 현실보다 더 냉철하게 오늘을 직시하고, 문명과 인간을 향한 깊은 사유를 담는다. 그것은 형식적으로는 미래를 배경으로 하지만, 그 본질은 언제나 현재를 향해 있다. 오늘을 미래의 거울에 비춰보는 장르. 그리고 그 거울 속에서 우리는 낯설게 재구성된 우리 자신과 마주한다.


그런 점에서 필립 K. 딕, 아이작 아시모프, 류츠신, 김초엽이라는 네 작가가 보여주는 작품은, SF의 본질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예라 할 수 있다.


필립 K. 딕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는 인간과 기계 사이의 구분이 흐려진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핵전쟁 이후 황폐해진 지구에서 인간들은 ‘공감 능력’이라는 단 하나의 기준으로 자신과 안드로이드를 구분하려 한다. 그러나 작중 주인공 데커드는 점차 그 경계가 모호해짐을 깨닫는다. 안드로이드는 인간처럼 말하고, 인간처럼 행동하며, 심지어 인간보다 더 절박하게 생존을 원한다. 딕은 기술이 인간을 닮아갈수록, 우리는 인간다움이라는 개념을 다시 정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이 기계를 인간적으로 보게 될 때, 인간이었던 우리는 과연 어디에 서 있을 것인가? 그는 물리적 진보가 윤리적 진보를 보장하지 않음을 경고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이라는, 기술과는 무관한 감정의 요소임을 강조한다. 딕은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철학적 질문을 안드로이드라는 매개를 통해 던지고 있는 것이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은 SF의 이성적이고 체계적인 측면을 대표한다. 그는 역사적 법칙성을 수학적으로 예측하는 ‘사이코히스토리’라는 개념을 만들어냈고, 이를 통해 은하제국의 몰락과 재건을 설계한다. 『파운데이션』은 미래를 예측하고 통제하려는 인간의 욕망과,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무질서와 예외의 등장—이를 통해 드러나는 인간성의 복잡함을 정교하게 그린다. 아시모프는 말한다. 이성은 세계를 설명하는 데 유용하지만, 그것이 세계를 완전히 제어할 수 있다는 착각은 오만이다. 그의 SF는 기술과 수학이 지닌 냉정한 매력을 보여주지만, 그 이면에 자리한 예측 불가능성과 감정, 우연의 힘 또한 놓치지 않는다. 결국 『파운데이션』은 ‘이성과 통제’라는 근대적 이상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보여주는 우화이자, 문명의 순환에 대한 명상이다.


류츠신의 『삼체』는 동시대 SF 중 가장 스케일이 크고 철학적 무게가 강한 작품이다. 문화대혁명이라는 중국의 아픈 과거에서 시작해, 외계 문명과의 접촉이라는 설정까지 확장되는 이 소설은 인간의 과학이 얼마나 무력해질 수 있는지를 조명한다. 삼체 세계의 존재는 지구 인류에게 있어 위협임과 동시에 반성의 거울이다. 과학을 통해 발전해온 문명은 외계 문명의 침공 앞에서 도리어 가장 위험한 약점으로 전락한다. 류츠신은 이 문명을 구성하는 인간 개개인의 탐욕과 이기심, 그리고 냉혹한 생존 논리를 통해, 과학기술의 진보가 곧 인류의 진보를 의미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는 말한다. 인간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아버렸고, 그것이 재앙을 불러왔다. 이 작품은 과학의 성취가 결국 인간의 윤리와 감정, 협력의 기반 위에 놓이지 않으면 얼마나 파국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현대적인 경고다.

이처럼 디스토피아와 은하제국, 외계 문명과 같은 거대한 배경을 통해 인간을 조명한 위 세 작품과 달리,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아주 사적인 서사로 SF를 풀어낸다. 그의 작품에서는 우주와 과학, 시간여행 같은 설정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핵심은 인간 관계, 감정, 상실과 그리움이다. 타행성에 남겨진 가족, 빛보다 느리게 도착하는 메시지, 기억을 담은 물질. 과학은 그저 삶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해주는 도구일 뿐이다. 김초엽은 기술이 인간을 멀어지게 한다는 오랜 SF적 통념과는 달리, 기술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다가설 수 있다고 말한다. 차갑게 느껴지던 과학이 오히려 따뜻한 감정의 매개체가 되는 순간, 우리는 새로운 감정의 영역에 도달하게 된다. 김초엽의 SF는 거창하지 않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날카롭다. 그녀는 ‘공상’이 아니라 ‘공감’을 중심에 놓고 SF를 다시 쓰고 있다.


이 네 편의 작품은 서로 다른 시대와 문화, 문체와 구조를 지녔지만, 모두 SF가 단지 미래나 과학기술의 환상이 아님을 보여준다. 오히려 SF는 작가의 감정과 상상력이 극한까지 확장되는 문학 장르이며, 그 안에서 우리는 현재의 사회 구조, 인간 존재, 윤리, 정체성과 같은 문제를 다시 보게 된다. SF는 결국 "지금"을 외면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늘을 낯설게 보기 위한 기술이자, 상상을 통해 더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 우리의 현실을 정밀하게 들여다보는 렌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장르를 오해해서는 안 된다. SF는 '과학'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과학을 통해 인간과 세계를 묻는 문학이다. 그것은 때로 디스토피아가 되고, 때로 구원의 신화가 되며, 때로는 눈물 한 방울을 닦아주는 이야기로도 다가온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 속에는 결국, '인간'이 있다. SF는 인간을 가장 낯설게 만들면서도, 가장 정확하게 이해하게 하는 문학이다. 공상 속에서 오늘을 보고, 감정 속에서 내일을 짐작하게 한다. 그래서 SF는, 미래의 옷을 입은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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