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혼모노에서 느낀 기시감으로 닮은 작가 찾기
한국 소설인데 제목이 『혼모노』? 최근 성해나 작가의 이 소설을 읽고 묘한 기시감을 느껴 책장과 인터넷을 뒤적이던 중, 김보영·권여선·황정은이라는 이름을 발견했다. 처음엔 이 작가들이 어떤 공통점을 지녔는지 막연했지만, 단편들의 여운과 문장들을 하나하나 음미하며 네 사람의 세계가 미묘한 실타래처럼 얽혀 있음을 깨달았다.
먼저 이들이 모두 ‘경계 위에 서 있는 존재들’을 주인공으로 삼는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성해나의 『혼모노』에서는 진짜와 가짜를 가르는 굿판 한가운데에서, 가짜 무당이 신명의 울림을 빌려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몸부림친다. 그 순간 나는 ‘나와 너’, ‘현실과 의례’ 사이에서 흔들리는 불안한 자아를 목격했다. 김보영 작가의 SF 소설들도 그러하다. 『진화신화』 속 인물은 인간과 기계, 생물과 인공지능의 경계에서 정체성을 잃었다 되찾기를 반복하며, 과학적 논리와 상상력 사이의 균열에 몸을 맡긴다. 권여선 작가의 단편에는 평범한 일상 안에서 욕망과 불안이 차가운 파장으로 밀려온다. 그녀는 어떤 방안의 한낮 풍경을 그리다가도 단 몇 줄의 묘사로 ‘내면의 이질감’을 폭발시킨다. 황정은 작가는 또한 사소해 보이는 대화나 행동에서 관계의 틈을 포착해, 마치 보이지 않는 공백을 문장 사이에 숨겨 놓는다. 이처럼 네 작가는 각기 다른 장르와 배경을 통해, ‘어느 한가운데서 길을 잃은 자아’를 일관되게 탐구한다.
두 번째 공통점은 ‘간결한 문체 속에 깊은 여운을 남긴다’는 것이다. 김보영은 SF의 대서사와 기술적 디테일을 바탕으로 현실과 환상을 교차시키지만, 과장된 수식 없이도 한 문장 한 문장이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권여선은 최소한의 수사만으로도 인물의 비밀스러운 심리 상태를 드러낸다. 짧은 대사 하나, 서늘하게 비트는 시선 하나가 곧 이야기를 끌어간다. 성해나는 의례의 리듬감을 문장 구조에 녹여내어, 단문과 장문이 마치 북소리처럼 리듬을 이루게 한다. 황정은은 부드러운 묘사와 날카로운 대화 사이를 오가며, 읽는 이를 긴장의 끈 위에 매달아 둔다. 이들은 모두 불필요한 장식을 걷어내고 오히려 ‘언어의 여백’을 의도적으로 남김으로써, 독자 스스로 서사의 빈칸을 채우도록 초대한다.
세 번째 공통점은 ‘모호한 결말을 남긴다는 점’이다. 성해나는 굿판이 끝나고 나면 무엇이 진짜였는지 분명히 밝히지 않는다. 독자는 그 미묘한 공백에서 자신만의 해석을 만들어야 한다. 김보영도 결말부를 느슨하게 열어 두어, 인물과 독자가 공동으로 상상 공간을 확장하도록 유도한다. 권여선의 단편마저도 사건이 일단락된 뒤에도 남는 찝찝한 질문들을 던져, 독자가 곱씹을 여지를 준다. 황정은은 대화의 막이 조용히 내리는 순간, 그 침묵이 더 길게 울리도록 자리를 비워 둔다. 이들이 모르는 사이 남긴 텍스트의 틈새들이 모여, 책장을 덮은 뒤에도 머릿속에서 서사의 잔향으로 자리 잡는다.
네 번째 공통점은 ‘정체성과 타자의 문제를 치열하게 다룬다’는 것이다. 김보영은 인간과 기계 간 경계를, 권여선은 내면 깊숙이 숨겨진 타인에 대한 경외감을, 성해나는 무속인과 일반 인간 사이의 의례적 단절과 연결을, 황정은은 관계의 사소한 틈으로 타자의 존재를 환기시킨다. 이들은 서로 다른 ‘타자’를 내세우지만, 결국 그 타자는 곧 나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경계선을 돌아보게 만든다.
이처럼 공통된 뿌리를 지닌 네 명의 작가는 각자의 색채를 분명히 지니고 있다. 김보영이 펼치는 스케일 큰 SF 의식 세계와 성해나의 소규모 굿판 묘사는 결이 다르지만, 모두가 ‘의식의 전환’을 그려 내는 예술가다. 권여선이 파헤치는 심리의 심층부와 황정은이 포착하는 사회적 균열은 결이 다르나, 둘 다 ‘침묵 속의 균열’을 마치 하나의 악보처럼 텍스트 위에 기록하는 방식이 같다. 이 차이들이 모여 이른바 '경계문학'의 다양한 얼굴을 만드는 셈이다.
『혼모노』를 읽은 뒤 맞이한 이 묘한 기시감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경계 위에 서서 우리 자신을 질문하게 만드는 네 작가의 목소리가, 서로 다른 파장을 이루며 나의 독서 경험을 채워 줬기 때문이다. 책장을 덮으며 속으로 다짐한다. 이들의 작품을 거쳐 가야만 비로소 내 안의 ‘경계’를 온전히 만날 수 있으리라고. 그리고 그 만남은 하루가 다르게 복잡해지는 세상 속에서 나만의 중심을 잡아 주는 작은 등불이 되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