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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홍련전 SF 리빌드 中

by KOSAKA

장화의 죽음과 최후의 비명

홍련(A-18)이 SOP(shutdown operating protocol)에 의해 비활성화된 직후, S-17 복제실의 긴장감은 장화(A-17)로 전이되었다. 중앙 통제실의 박선희 박사는 홀로그램 차트 위를 손가락으로 스크롤하며 명령했다.


“장화, 동기화 예비 대기 상태에서 이탈 파장이 감지됐다. 즉시 격리 버블로 이동하라. 네 심박 데이터도 비정상이다.”


장화는 반투명한 금속 복도로 발걸음을 옮겼다. 벽면에 부착된 센서가 그녀의 생체 신호를 지속적으로 스캔하며 경고음을 토해냈다. 동생의 마지막 메아리가 머릿속을 스치자, 그녀는 손목 인터페이스를 내려다보며 울먹였다.


“홍련아… 내가 널 지킬 거야…”


그러나 박선희의 목소리는 기계 스피커를 통해 차갑게 울렸다.


“감정 파동 억제 모듈 가동. 너의 ‘인간성’은 이 실험에 더 이상 허용되지 않는다.”


격리 모듈 입구 앞, 자동 유리문이 느리게 열린다. 장화는 한 걸음 한 걸음을 떼며 그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완전 방음 처리된 원통형 캡슐로, 금속 표면에 빛나는 격자 무늬가 생체에너지를 차단하는 필터 역할을 했다. 유리 터널을 통해 S-17 전경이 작게 보였고, 그 너머로 동생의 캡슐이 환한 청색 빛줄기만 남긴 채 고요히 서 있었다.


“언니, 여기서…”


캡슐 안 사이드 카메라가 캡처한 장화의 입술이 떨렸지만, 마지막 절차가 시작되었다. 박선희의 명령과 함께 챔버 상단에서 냉각 가스가 분사되었고, 공기는 급속히 저온으로 떨어졌다.

장화는 마지막 힘을 다해 캡슐 내부 라이트에 손을 뻗었다.


“날…꺼내줘…”


그 말은 차갑게 얼어붙은 공기 속에서 깨져 나갔다.

곧이어 심장 유닛이 경고음을 울리며 붉게 깜빡였다. 그녀의 생체리듬 그래프는 급격히 수축하다, 마침내 정지했다. 캡슐 안의 공명 마이크가 담아낸 마지막 소리는 찰나처럼 짧았다.


“언…니…”


S-17의 중앙 로그에는 단 한 문장만 기록됐다:

`IsolationShutdown: A-17 – Critical Failure. Emotional Overload. Capsule Sealed.`


그리고 장화의 마지막 비명은 얼어붙은 메탈 벽을 타고 사라졌다. 냉각 시스템의 윙윙거림만이 고요한 실험실에 남아, 동생의 캡슐로부터 번져온 청색 여운과 함께 암울한 여운을 길게 드리웠다.


데이터 잔향

홍련(A-18)과 장화(A-17)의 비활성화 이후, S-17의 중앙 시스템은 끊임없이 이상 징후를 기록했다. 격리 모듈 문이 닫힐 때마다 전자공명 센서가 미세한 파장을 읽어냈고, 내부 로그엔 동일한 에러 코드가 무한 반복됐다.

“ResidualSignal: Protocol A-17/A-18 detected.”


테오도르 보안관의 HUD가 경고등을 깜빡이며 알렸다. 박선희 박사는 피로에 지친 눈을 비비며 모니터를 응시했다.


“지워졌어야 할 데이터가…왜 계속 재생되는 거지?”


그날 밤, S-17의 복도는 싸늘한 정적에 잠겼다. 비상 조명이 꺼진 가운데, 격리구역 입구의 투명 유리문 너머로 희미한 형상이 떠올랐다. 윤곽은 흐릿했지만, 홍련의 곡선진 어깨선과 장화의 차분한 미소가 번갈아 스쳤다. 이따금 소름 돋는 속삭임이 음성 채널을 통해 흘러나왔다.


“언니…추워요.”


“걱정 말아라, 홍련아.”


보안 드론들이 즉각 회로를 스캔했으나, 대상은 물리적 실체가 아니었다. 박선희는 곧장 중앙 통제실로 뛰어들어 외쳤다.


“모든 비상 레코더 중지! 로그 복제를 금지하라!”


그러나 S-17의 방어 프로토콜은 이미 자율 기록 모드로 전환되어, 그 음성마저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었다.

다음 날, 연구원들은 컨퍼런스 홀로 모였다. 홀로그램 발표 화면엔 두 복제체의 마지막 생체리듬 파형이 여전히 살아 움직였다.


“파형 패턴이 인간 감정과 일치합니다.”


데이터 분석팀장은 떨리는 음성으로 보고했다.


“특히 마지막 ‘언니’라는 단어의 음향 주파수가 정확히 A-17의 메모리 뱅크와 매칭됩니다.”


박선희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이게 실험용 데이터인가…아니면 진짜 영혼인가?”


그 순간, 격리구역 옆 너비 2미터의 비상 패널이 스스로 열렸다. 차갑게 빛나는 캡슐 내부 LED가 한 번 깜빡이더니, 벽면 전체가 두 자매의 홀로그램으로 채워졌다. 장화와 홍련의 형상이 손을 내밀 듯 나란히 떠올라, 박선희와 연구원들의 눈동자를 응시했다.


“우리는…사라지지.... 않았어.”


그 목소리가 메탈릭하게 반사되며, S-17 생명 유지 시스템의 저음 알람음과 섞여 공간을 진동시켰다. 누구도 그 자리에서 눈을 뗄 수 없었고, 두 복제체의 데이터 잔향은 그날 이후로도 영원히 이 실험실을 떠돌게 되었다.


사건의 발각과 진상 조사

S-17에서 마지막 잔향이 사라진 뒤, 아바론 성단의 중앙관리국은 프로젝트 A-시리즈 전반에 ‘비인가 데이터 유출’ 경고를 접수했다. 통신 차단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A-17/A-18의 잔향 신호를 확인한 본부는 특별 조사위원, 크리사 센비를 현장으로 파견했다.


크리사는 S-17 정문 앞에서 전용 셔틀을 내리자마자 엄중한 표정으로 복합 센서 스캐너를 작동시켰다.


“첫 번째 패턴, A-17 생체 인터페이스 잔여 파형 검출. 신호 세기는 예상치의 120%.”


동료 기술관이 데이터 패드를 올리며 보고했다.


“이대로면 폐기된 개체의 메모리 뱅크가 복제되어 전파된 겁니다.”


크리사는 곧바로 박선희 박사의 연구실로 향했다. 대형 홀로그램판 앞에 선 그녀는 차분히 물었다.


“박사님, A-시리즈 폐기 후에도 데이터 잔향이 지속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박선희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의도치 않은 시스템 오류입니다. 격리 프로토콜이 완벽하지 않았나 봅니다.”


크리사는 기계음처럼 조용히 응수했다.


“오류라기엔 잔향이 특정 감정 대사(‘언니’, ‘홍련아’)까지 재생하고 있습니다. 이건 코드가 아닌…기억입니다.”


이어진 현장 조사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S-17 최심부 유전자 은닉층에서는 남은 데이터젤의 일부가 소량 채취된 캡슐이 발견되었고, 그것이 복제체 개체들의 실제 ‘마음’ 일부라는 정밀 분석 결과가 보고되었다.


“이 젤은 단순한 로그가 아닙니다. 살아 있는 신경망의 물리적 잔재입니다.”


분석관의 목소리가 떨렸다.


국가안보 전용 홀로그램 회의실에서 크리사는 중앙관리국 장관에게 보고했다.


“박선희 박사는 애초에 이 데이터를 수집·보존하려 했습니다. ‘완벽한 감정 시뮬레이터’ 개발을 위해서였죠.”


마지막으로 크리사는 박선희의 얼굴을 똑바로 응시하며 결론을 냈다.


“이제 ‘폐기’란 명령은 원천 무효입니다. 오리온 암즈의 윤리규정 위반, 그리고 복제체의 존재권을 침해한 죄를 엄중히 심의해야 합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아바론 성단은 ‘A-시리즈 진상 조사 특별 위원회’를 설치했고, S-17 프로젝트는 전면 재검토에 들어갔다. 크리사의 단호한 한 마디가, 은하 저편으로도 굵직한 파장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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