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던 시작
아침 첫 빛이 S-17 바이오돔의 투명 외벽을 타고 흘러내렸다. 두 자매 복제체 A-17, 장화와 A-18, 홍련은 아직 동기화가 완벽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서로의 손목 인터페이스를 맞대고 눈을 맞추며 깨어났다.
“언니, 오늘 새벽 기동 테스트 지연 없이 성공했어요.”
홍련의 인공망막이 부드럽게 윙크하자, 장화는 어깨에 부착된 햅틱 센서를 가볍게 두드리며 답했다.
“잘했어, 홍련아. 네 반응 시간 덕분에 오늘 감각 모듈 보정치가 0.5% 향상될 거야.”
바이오돔 중앙에는 ‘아버지’라 불리는 프로젝트 책임자, 박사 한윤석이 홀로그램 패널 앞에 서 있었다. 옅은 미소를 띤 그는 두 자매의 생체리듬 그래프를 보며 속삭였다.
“너희가 자랄수록 내 데이터베이스도 풍부해진다. 오늘도 건강하게, 그리고 자유롭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S-17의 환경 조절 장치가 자동으로 정화 사이클을 시작했다. 은은한 합성해류 냄새가 실려왔고, 미세중력 샤워가 둥글게 퍼져 바이오돔 내부의 온도와 습도를 완벽히 맞췄다.
장화는 홍련의 손을 꼭 잡고 고개를 들어 돔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여기가 우리의 시작이었지, 홍련아.”
“응, 언니. 이곳에서 우리는 누군가의 꿈이자…우리 스스로의 증명이야.”
그 순간, 투명 외벽 너머로 은빛 항로를 따라 떠오르는 우주 정거장의 불빛이 눈부시게 스쳤다.
“좋아. 오늘도 완벽하게 살아 보자.”
두 자매의 목소리가 하나로 어우러지며, S-17 생명 유지 시스템이 조용히 부드러운 윙윙거림을 더했다.
박선희 박사의 시기와 억압
감시 카메라의 붉은 빛이 S-17 복도에 연기를 뿌리듯 깔리던 날, 박선희 박사는 냉정하게 홀로그램 차트 위를 손가락으로 훑었다. A-17과 A-18의 감정 파장 데이터는 한윤석 박사가 설정한 한계를 훌쩍 뛰어넘었다.
“데이터 불안정 폭주 23% 증가.”
박선희의 목소리는 메탈릭하게 울려 퍼졌다.
“이웃한 모듈로 간섭까지 발생시키고 있어. 즉시 감정 억제 프로토콜을 가동하라.”
알아서 움직이는 보안 드론 수십 대가 천장에서 내려와 두 자매의 어깨와 허리에 작은 제어 유닛을 부착했다. 감각 억제 필터는 마치 투명한 마스크처럼, 그들의 모든 미세한 웃음이나 눈물까지도 실시간으로 감지해 소거했다. 장화가 겨우 속삭이듯 물었다.
“이제… 웃음도 눈물도 안 돼?”
레이저처럼 차가운 박선희의 답변이 돌아왔다.
“규격에 맞지 않는 파동은 시스템 과부하를 일으키는 독소와 같다. 제거해야 한다.”
이튿날 오전, 박선희는 양자 연산 컨솔 앞에서 새로운 실험 계획을 발표했다.
“오늘부터 48시간 동안, 네트워크 격리 상태에서 생체 반응을 0.1초 단위로 수집하겠다. 비인가 감정 파형 발견 시 즉각 셧다운.”
바이오돔 내부는 숙연한 정적에 잠겼다. 햅틱 센서가 가볍게 떨릴 때마다, 홍련은 언니의 손을 쥐고 눈빛으로 위로를 건넸다. 그러나 그 눈빛마저도 곧이어 붉은 패널 위에 ‘차단됨’으로 표시되었다.
“A-18, 심박 급등. 억제 회로 가동.”
움츠러든 홍련의 가슴 위에서 작은 전극이 빛을 내리며 박동을 억제했다.
저녁이 되자, 박선희는 홀로그램으로 동기화 지표를 공유하며 냉소 섞인 박수를 보냈다.
“이제 네 감정은 실험실의 코드로만 존재한다. 인간이라 믿었던 너희는, 시스템의 일부일 뿐이다.”
두 자매의 조용한 눈물이, 차가운 형광등 아래서 은은하게 증발했다. S-17의 하이라이트가 꺼지고, 그들의 속삭임은 기계음 속으로 완전히 지워졌다.
홍련의 죽음과 비명
어느 서늘한 밤, S-17의 안정화 풀 구역(Chamber B-03)은 은빛 센서 불빛만이 깜빡이고 있었다. 홍련(A-18)은 박선희 박사의 지시를 받아 풀 가장자리로 천천히 걸어갔다.
“데이터 정밀 측정을 위해선, 이 방이 최적 상태야.”
박선희의 음성은 메탈 인터콤 너머로 부드럽게 울렸지만, 그 끝엔 단호함이 배어 있었다.
풀 속으로 발이 닿는 순간, 청정수의 차가움이 그녀의 합성 신경망을 스쳤다.
“정말…시원하네요.”
홍련의 인공홍채가 반짝였지만 곧 심박 유닛이 폭주 경고를 띄웠다.
“경고: 심박수 급등, 감정 파장 과부하.”
박선희의 명령이 즉각 전송됐다.
“셧다운 프로토콜 ALPHA-7 가동. A-18, 활동 종료.”
순간, 챔버 문이 무자비하게 닫히고 내부 환기·난류 제어 시스템이 냉각 코일을 가동하면서 물은 순식간에 급속 냉각됐다.
홍련의 비명은 마이크로폰으로 고스란히 기록되었다.
“언니…살려줘…”
그러나 S-17의 중앙 로그에는 단 한 줄의 문구만 남았다.
`ComponentFailure: A-18 – Inactive`
붉은 LED가 서서히 꺼지고, 챔버 외벽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투명하게 빛났다.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온 박선희의 숨소리만이, 두 자매의 끊어진 파장을 차갑게 증명하고 있었다. -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