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파편들 사이로 걸어가기
3장. Choice – 선택의 자리에 머무는 일
인생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이라지만, 중년의 선택은 어딘가 다르다. 젊은 날의 선택이 가능성과 모험을 향한 문이라면, 중년의 선택은 되돌아보며 감당해야 할 무게를 따지는 일이다.
선택의 자리는 언제나 갈림길처럼 보이지만, 실은 어느 방향으로든 잃어야 하는 것과 남겨야 할 것이 명확한 자리다. 선택은 가능성의 축제가 아니라 어떤 손실을 견디겠느냐는 질문처럼 다가온다.
한때는 나도 과감히 고르던 사람이었다. “이쪽이다!” 하고 나아가던 걸음이,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가볍고도 맹렬했다. 다 잃어도 좋다는 건, 아직 잃어본 적 없는 자의 무모함이었다.
청춘의 선택은 실패해도 서사였고, 돌아서도 낭만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무엇을 고르든 무언가를 영영 잃게 되는 나이, 되감기를 할 수 없는 선택의 테이프만 남았다.
중년의 선택은 누구에게 털어놓지도 못하고, 화려한 연설도 없다.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다가 일어나, 차 한 잔을 들고 창밖을 보며 문득 결정하는 식이다. 그리고도 한참을, 그것이 맞는지 아닌지 되묻는 자신과의 싸움이 계속된다.
말하자면, 중년의 선택은 결단이라기보다는 내면에서 천천히 침전되어 가는 감정의 퇴적물에 가깝다.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 직감과 피로, 그리고 오랜 시간 쌓인 감정들이, 조용히 나를 어느 방향으로 밀어내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고르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다. 우리는 여전히 선택해야 한다. 회사를 계속 다닐지, 떠날지. 부모의 병실에 더 오래 남을지, 아이의 발표회에 갈지. 아프다는 사실을 알릴지, 괜찮은 척 숨길지.
소소해 보이지만 어떤 것은, 삶 전체의 방향을 바꾸어놓을 만큼 중대한 선택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선택의 뒤에는 늘, 말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길게 누워 있다.
가끔은 선택하지 않았던 길을 꿈꾼다. “그때 그랬다면…”으로 시작하는 상상들. 그러나 나는 안다. 그 길 역시 또 다른 무게를 지녔을 것이다. 선택의 본질은 정답이 아니라 책임의 형식이다. 무엇을 택했든, 그 자리에서 살아내야 한다. 그것이 중년이 나에게 가르쳐준 냉정한 진실이었다.
중년의 선택은 이전보다 훨씬 복잡한 맥락을 가진다. 혼자의 결정이 아닌, 타인의 삶과 얽힌 책임이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선택이 누군가의 희생이 되기도 하고, 타인의 결정을 받아들이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 된다.
나는 이제 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결국 하나의 선택이라는 것을.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떠밀려 가는 삶 역시, 나의 서명 아래 존재한다는 것을.
어떤 밤은 그런 생각으로 잠 못 이루기도 한다. 지금 이 삶은 과연 내가 선택한 결과일까, 아니면 어쩌다 떠밀려온 어느 안락한 타협일까. 그러나 그런 질문조차, 이미 너무 늦은 사유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삶이란 원래 그런 것이 아닐까. 철저한 계획보다는, 조용한 수용으로 이루어진 궤적. 우리는 선택했기 때문에 여기 있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선택하면서도 끝내 망설였던 자리에 그냥 주저앉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질문을 던진다. 오늘 나는 무엇을 고를 것인가. 작고 사소한 것일지라도,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거나, 조금 더 부드럽게 해줄 수 있는 쪽을 향해 고르고 싶다. 매일 아침 마시는 커피의 농도부터, 퇴근길의 경로, 말할 것인지 침묵할 것인지. 그런 선택들이 쌓여, 결국 ‘나’라는 사람의 뒷모습을 만든다.
중년이란 결국, 선택의 파편들로 이루어진 풍경 속을 걸어가는 일이다. 뒤를 돌아보며, 앞을 내다보며,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때로는 후회하고, 때로는 안도하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선택해나간다. 나라는 이야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고, 다음 문장을 어떻게 쓸 것인지 역시 내가 선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