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서평]《꽃 피운 엄마, 꽃 피우는 나》

by KOSAKA

이 글은 브런치 작가 꽃보다 예쁜 여자님의 브런치북 <꽃 피운 엄마, 꽃 피우는 나>에 대한 저의 짧은 서평입니다.


다 읽고 난 뒤, 이 브런치북은 ‘상실을 기록하는 법’과 ‘돌봄을 설계하는 법’, 그리고 ‘기억을 작업으로 바꾸는 법’을 동시에 보여주는 드문 사례라고 판단했습니다. 애도의 감정을 과장하지 않고, 간병과 행정, 공예와 글쓰기라는 구체적 행위를 앞세워 독자를 움직이게 하는 점이 가장 큰 미덕입니다.


작가의 문장은 차분하고 건조합니다. 그러나 그 건조함은 무심함이 아니라 정확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독자가 다음 행동을 떠올리게 만드는 실용적 밀도를 갖습니다.


이 책의 첫 번째 축은 모친의 투병과 임종을 둘러싼 사실 기록입니다. 변비 관리, 식이 조절, 응급 상황 대처 같은 생활 단위의 디테일이 감상 앞에 놓입니다. 독자는 슬픔보다 먼저 ‘무엇을, 언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우게 됩니다. 작가는 “사소한 것들이 환자와 보호자의 하루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반복해 확인시킵니다. 이 반복은 감정의 파도 대신, 돌봄의 리듬을 몸에 익히도록 돕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두 번째 축은 제도와 자원의 학습입니다. 노인장기요양보험 등급 신청, 복지용구 활용, 가족요양의 현실 같은 정보가 경험담 속에 자연스럽게 배치됩니다. 이 대목에서 작가는 ‘정보의 시차’가 가져오는 비용을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늦게 알면 뒤늦게 후회하게 된다는 문장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제도 설계의 빈틈과 현장의 마찰을 드러내는 보고이기도 합니다. 독자는 글을 읽으며 체크리스트를 만들게 되고, 그 순간 이 책은 개인의 회고록을 넘어 타인을 위한 안내서가 됩니다.


세 번째 축은 관계의 윤리입니다. 돌봄의 현장에서 필요한 것은 거창한 영웅주의가 아니라 작은 배려와 지속적인 말벗이라는 점을 작가는 거듭 확인합니다. 오랜 친구의 꾸준한 안부 전화, 호의를 상처로 바꾸지 않으려는 섬세한 언행, 떠나는 이를 배웅하는 몇 사람의 존재가 한 생의 품격을 어떻게 지탱하는지 설명합니다.


이 관계의 윤리는 ‘착해야 한다’는 도덕이 아니라 ‘지속 가능해야 한다’는 운영의 문제로 제시됩니다. 그래서 독자는 도덕적 감동보다 실천 계획을 먼저 세우게 됩니다.


네 번째 축은 기억을 작품으로 전환하는 작업입니다. 작가는 ‘시들지 않는 꽃’인 가죽공예를 통해 상실을 지속 가능한 형태로 바꿉니다. 남는 자투리를 살려내는 업사이클링은 애도의 에토스이기도 합니다. 없어진 것을 붙잡으려 하지 않고, 남은 것으로 새로운 쓸모를 발명하는 태도입니다.


그 과정 서술은 감성적 자랑이 아니라 작업 메모처럼 간결합니다. 작업의 결과물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거나 행동을 낳는 순간이 등장할 때, 독자는 애도의 다른 문법을 목격합니다.


이 브런치북의 구성은 체험담, 정보 정리, 작업기, 단상 에세이가 교차하는 형태입니다. 장르가 혼합되면 산만해지기 쉽지만, 여기서는 ‘행동 중심’이라는 공통의 축이 흐름을 잡습니다. 각 편의 서사는 개인의 추억을 공적 지식으로 번역하는 방식으로 수렴합니다.


그래서 어떤 글은 기사처럼 읽히고, 어떤 글은 사용설명서처럼 읽히며, 또 어떤 글은 작업 노트처럼 읽힙니다. 이 장르적 변주는 독자의 피로를 줄이고, 각기 다른 독서 욕구를 번갈아 채웁니다.


문체는 절제되어 있습니다. 과거의 상처를 장식하지 않고, 현재의 필요한 문장을 우선합니다. 과장된 이미지 대신 정확한 명사가 등장하고, 상징물—네잎클로버, 나비, 가죽꽃—은 설명이 아닌 동선의 표시로 사용됩니다. 이 절제는 슬픔을 억누르기 위함이 아니라, 슬픔이 일을 방해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태도에서 나옵니다. 애도와 운영을 동시에 해내야 했던 보호자의 시간이 문장의 호흡에 남아 있습니다.


읽고 나면 마음에 남는 것은 ‘무엇을 해냈다’는 체크리스트가 아니라, 하루를 버티게 해 준 몇 가지 작은 동작들입니다. 물 한 잔을 건네는 손짓, 한밤의 짧은 통화, 침대 머리맡을 정돈하는 리듬처럼요. 이 책은 상실을 밀어내지 않습니다. 다만 그 곁에 앉아 숨을 고르는 방법을, 너무 크지 않은 말들로 알려 드립니다. 그래서 위로는 문장으로만 남지 않고, 다음 날의 생활로 조용히 이어집니다.


물론 체험 기반 연재의 특성상 특정 장면이나 메시지가 반복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반복은 우연이 아니라 의도에 가깝습니다. 돌봄과 애도는 사건이 아니라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과정은 곡선으로 진행되고, 곡선의 좌표는 비슷한 값을 자주 지나갑니다. 작가는 그 곡선을 사실적으로 그립니다. 그래서 독자는 ‘또 이 얘기인가’가 아니라 ‘현장에선 이렇게 겹치는구나’를 이해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이 브런치북은 “떠난 뒤에도 남는 것”을 묻습니다. 작가는 답을 거창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남는 것은 목록과 도구, 손의 기술, 몇 사람의 목소리, 그리고 조용한 작품들입니다. 애도는 이렇게 생활이 됩니다. 그 생활이 다른 누군가의 하루를 덜 힘들게 한다면, 이미 충분한 문학입니다.


keyword
이전 09화[서평]《죽기전 아들에게 전하는 100가지 삶의 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