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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지마롤에 대하여

크림 속에 감춰진 것들

by KOSAKA

나는 지금 오사카 도지마 인근에 산다. 도지마가와 강을 따라 난 산책길과, 점심시간이면 정장을 입은 사람들로 붐비는 사무지구, 그리고 해가 지고 나면 조용해지는 골목들이 공존하는 동네. 백화점도 많고, 은행도 많고, 호텔도 많다. 오사카라는 도시의 가장 도시적인 면을 품은 장소. 그런데 바로 이 도지마에서, 일본 전역의 사랑을 받은 하나의 디저트가 태어났다. 크림이 도톰하게 들어찬 단순한 롤케이크, 도지마롤.

KakaoTalk_20250521_155617048_01.jpg 도지마롤의 발상지

도지마롤은 지금 내가 사는 동네 이름을 그대로 붙인 디저트다. 제과점 몽슈슈에서 처음 만들어졌고, 이름 그대로 ‘도지마에서 태어난 롤케이크’란 뜻이다. 얇고 부드러운 스폰지 케이크에 담백하고 매끄러운 크림이 감겨 있다. 겉보기에 너무 단순해서 ‘이게 왜 그렇게 인기가 있지?’ 싶을 수도 있지만, 한 입 먹어보면 생각이 바뀐다. 기름지지 않으면서도 풍부한 맛, 달지 않으면서도 입 안에 은은히 퍼지는 감촉,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입안에서 거의 ‘소멸’하듯 사라지는 질감. 이건 단순히 케이크가 아니라 기술이고, 감각이다.


도지마롤을 처음 먹어본 건 10년 전 나고야에서 근무하던 시절이었다. 도지마에서 만들었다는 그 유명한 롤케이크가 나고야 시내 한 백화점에 한정 수량으로 들어온다는 말을 듣고, 일부러 점심시간에 줄을 서서 샀다. 종이 상자를 열고, 크림의 단면을 바라보던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다. 퇴근 후 숙소에서 조심스럽게 잘라 한 조각을 입에 넣었을 때, 부드럽게 퍼지던 크림의 온도와 향이 아직도 기억난다. 당시는 ‘언젠가 오사카에 가게 된다면 꼭 본점에 가봐야지’ 하고 마음먹었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지금은 정작 그 본점이 집에서 도보 10분 거리 안에 있다. 언제든 살 수 있고, 아무 때나 먹을 수 있지만, 요즘 나는 그걸 잘 사먹지 않는다. 매일 지나다니는 거리, 익숙한 쇼윈도, 이미 너무 잘 아는 포장 상자. 가까이에 있을수록 잊히는 것들이 있다는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특별했던 맛이 일상이 되면, 그 감동도 조금씩 흐려진다. 가끔 여행객처럼 그 거리에서 도지마롤 상자를 들고 나온 사람들을 보면, 어쩐지 내가 예전의 나를 바라보는 것 같다. 먼 도시에서 일부러 찾아와, 소중히 상자를 들고 가던 그때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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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먹음직스러운 쇼윈도우

그래도 가끔은 생각이 난다. 아주 피곤한 날, 혹은 묘하게 기분이 가라앉는 날이면, “Pâtisserie Mon cher”(파티스리 몽셰르) 앞에 멈춰 서게 된다. 유리 진열장 속에서 고요히 줄 지어 놓인 도지마롤은 여전히 단정하고 조용하다. 흰 크림은 반짝이고, 손님들은 무심한 듯 상자를 받아간다. 나도 그렇게 하나를 사서 집에 돌아와, 조심스레 포장을 연다. 한 조각을 잘라 접시에 올리고, 입에 넣는다. 그러면 묘하게도 시간이 되감기듯 느껴진다. 나고야의 낡은 숙소, 혼자 살던 방의 노란 형광등, 그리고 그 안에서 처음 맛본 도지마롤. 지금은 내 집 근처에 있지만, 그 시절의 거리감과 설렘은 아직도 내 안 어딘가에 남아 있다.

KakaoTalk_20250521_160008315.jpg 사버렸다

도지마롤의 맛은 지금도 변함없다. 은은하고 담백한 단맛, 사라질 듯 부드러운 질감, 부담 없는 크림의 깊이. 일본 디저트 특유의 절제된 미학이 잘 살아 있다. 도지마라는 이 동네처럼. 오사카 전체가 분주하고 활기차다면, 도지마는 그 한복판에서 고요한 리듬을 간직한 곳이다. 도지마롤 역시 그런 도시의 리듬을 품고 있다. 요란하지 않고, 과하지 않고, 그러면서도 분명히 기억에 남는다.


나는 이 동네에서, 때로는 그 디저트를 잊고 살다가, 때로는 뜻밖의 순간에 그리워하게 된다. 누군가는 그것을 특별한 날을 위한 케이크라고 말할 테지만, 나는 오히려 ‘평범한 날에 먹는 디저트’라고 생각한다. 아무 일도 없는 저녁, 괜히 마음이 출렁이는 날,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괜찮은 위로가 필요할 때. 그럴 때 도지마롤은 조용히 제자리에 있다. 언제 먹어도 그 맛은 여전하고, 언제 봐도 그 모습은 변하지 않는다.


이제 나는 안다. 도지마롤은 단지 케이크가 아니다. 그것은 기억이고, 거리이고, 감정이다. 예전엔 일부러 찾아 먹던 디저트였고, 지금은 너무 가까워서 잊고 있던 존재. 하지만 어쩌면 그 사이의 감정이, 도지마롤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까이 있어도 잊지 않게 되는 무언가, 그게 진짜 ‘좋은 맛’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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