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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계승자들: 이타도리 유지와 이카리 신지

현대 애니메이션이 그리는 숙명과 결핍의 초상

by KOSAKA

현대 애니메이션의 두 걸작, 『주술회전』의 이타도리 유지와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이카리 신지는 각기 다른 시대와 배경에서 살아가는 청춘들이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내면적 고뇌와 운명에 대한 저항은 고대 그리스 비극의 정수와도 맞닿아 있다. 이들은 단순한 주인공이 아닌, 고대의 오이디푸스나 안티고네처럼 인간 존재의 근원적 질문에 직면한 비극적 영웅들이다.


고대 그리스 비극의 영웅은 언제나 신과 인간 사이의 경계에 놓인 존재다. 숙명은 피할 수 없으며, 인간은 그것에 저항함으로써 오히려 파국에 이른다.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를 물리치고 도시를 구하지만, 그것은 그 자신을 파멸로 이끄는 시작점이 된다. 자신의 출생의 진실을 알게 된 오이디푸스는 부친을 죽이고 모친과 결혼한 자로 낙인찍히며, 스스로를 벌하고 추방당한다. 그 비극의 정수는 단지 불운한 사건이 아니라,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인간이 감당해야 하는 고통과 책임에 있다.


『주술회전』의 이타도리 유지는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운명을 떠안는다. 저주의 왕 '양면 스쿠나'를 몸 안에 받아들인 그는, 언젠가 반드시 제거되어야 할 존재라는 낙인을 안고 살아간다. 이타도리는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안다. 그것은 오이디푸스가 자기 눈을 찌르고 도시를 떠난 결말처럼, 숙명을 거스른 대가를 감당해야 하는 존재의 자의식이다. 그러나 유지가 비극적인 것은 죽음을 앞두어서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을 구하려 하는 윤리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의 존재를 타인의 생명에서 입증하려 한다. 자신이 위험한 존재라는 사실이, 오히려 그를 더 절박하게 만든다. 자신이 누군가의 희망이 되어야만 살아있을 수 있는 아이러니. 그는 구원자이자 재앙이다.


이카리 신지도 마찬가지다. 『에반게리온』에서 그는 선택이 아니라 강요된 소명 속에 던져진다. 에바에 탑승하지 않으면 인류는 멸망하지만, 탑승하는 순간 그는 인간이 아닌 어떤 존재로 변모해간다. 그의 싸움은 외부의 사도와의 전투가 아니라, 자기 존재에 대한 부정과 수용 사이의 고통이다. 그는 파일럿이 되는 것을 거부하면서도,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다시 에바에 오른다.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자해에 가깝다. 아버지로부터 사랑받지 못한 아들은 결국 신의 도구가 되는 길을 택한다. 그리고 그것은 신화를 닮았다. 불을 훔쳐 인간에게 준 대가로 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처럼, 신지는 인류보완계획이라는 신화적 서사 속에 자신을 잃는다.


두 인물의 결정적 공통점은 '애정의 결핍'이다. 이타도리는 어머니와의 기억이 없다. 그 공백은 자신이 존재할 이유에 대한 끝없는 물음으로 이어진다. 그는 끊임없이 타인을 구하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한다. 사랑받지 못한 자가 누군가를 사랑함으로써 스스로를 정당화하려는 구조다. 이는 고대 비극에서 반복되는 모티프다. 안티고네는 오빠의 시신을 매장하려다 죽음을 맞이하지만, 그것은 신의 법과 인간의 법 사이에서 가족에 대한 절대적 사랑을 선택한 인간의 비극이다.


신지는 더 직접적이다. 어머니는 존재하지 않으며, 아버지는 감정 없는 지휘자일 뿐이다. 신지는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 계속해서 자신을 지운다. "나는 타인을 만족시켜야만 존재할 수 있다"는 왜곡된 믿음은, 그를 끝없이 고립시키고, 에바라는 생명체와의 동화를 통해 인간성을 상실하게 만든다. 신지는 자기를 파괴하는 방식으로 존재를 증명한다.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에서 신지는 모든 인간의 경계를 녹여 하나의 존재로 융합하려는 계획에 직면한다. 그는 결국 타인과의 분리를 받아들이며, 손을 내민다. 그것은 구원이 아니다. 다만 살아가겠다는 의지다. 이타도리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기 파멸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 순간 싸우고 선택하며, 존재를 증명해간다.


이들은 고대 비극의 현대적 계승이다. 현대는 신의 음성이 사라진 시대다. 운명은 절대자가 아니라 사회적 구조, 트라우마, 시스템, 기술적 강제력으로 나타난다. 이타도리와 신지는 신이 사라진 세계에서, 여전히 신의 짐을 짊어진 인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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