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의 기억③베를린의 바게트

서늘한 도시의 따뜻한 맛

by 스털링

바게트 빵하면 흔히 프랑스를 연상시킨다.

그런데 나에게 바게트는 프랑스가 아닌 독일을 연상시킨다. 배낭여행이 후반으로 접어들 무렵 나는 독일을 여행하고 있었다. 베를린으로 기억된다.

2003년 여름 유럽은 수백년 만의 폭염을 기록했다. 로마에서 민소매로 돌아다니다 등과 어깨에 화상을 입었을 정도였다. 파리에서는 1만 명이 넘는 노인이 폭염으로 사망했다는 뉴스도 전해졌다. 유럽의 가정에는 에어컨이 거의 없다. 수백년(?) 만에 닥친 폭염에 속수무책이었다.

독일을 여행할 때는 살인적인 폭염은 한풀 꺽여 있었고, 저녁에는 제법 쌀쌀했다. 베를린은 날씨도 흐린 날이 많아 초가을도 서늘하게 느껴졌다. 한 달 넘게 돌아다닌 피로와 서늘한 날씨 탓에 몸은 많이 지쳐있었다.

베를린 장벽의 깨진 돌 잔해도 베를린 천사 탑도 쓸쓸하게 느껴졌다. 배낭여행 중에는 유일하게 가두시위를 목격한 것도 베를린이 처음이었다. 브란덴브르크 광장 근처 도로를 막고 대규모 시위대가 질서 정연하게 구호를 외치며 지나갔다. 무슨 시위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점심시간이 되어 어느 골목의 시장을 들러 뭘 먹을까 둘러 보는데 길거리에서 우리나라 군고구마를 파는 카트에서 갖 구운 바게트에 소시지를 넣어 팔았다. 추운 날씨가 따뜻한 빵을 보니 구미가 당겼다.

겉바속촉의 바게트에 적당히 간이 된 소시지의 맛이 어우러진 그 고소함이 아직도 후각으로 남아있다.

베를린은 뮌헨처럼 깨끗한 느낌의 도시는 아니었다. 숙소도 오래된 건물에 2층 침대가 놓여있는 여행자 숙소였다. 도로에서 보면 보이지 않지만 숙소의 안쪽으로 큰 마당이 있는 곳이었다. 화려하게 꾸며진 정원이 아닌 그냥 넓은 마당이었다. 저녁에 되자 마당은 낮의 스산함을 벗고 조명이 아름다운 야외 카페처럼 변신했다. 마당을 따라 드리워진 조명이 반짝반짝 빛을 내고, 어디서 나왔는지 여행자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속속 모여들었다. 젊은 시절 배낭여행에서 상상했던 바로 그런 장면이었다. 겉은 허름하지만 안은 화려하고 따뜻한 반전 매력이 베를린과 묘하게 어울렸다.

낮의 바게트와 밤의 아름다운 조명아래 맥주를 마시며 전세계에서 온 여행자들과 인사를 하고 여행의 경험을 서로 나누던 추억이 함께 어우러진 뜻밖의 선물이었다.


미각으로 느끼는 음식의 맛은 짧다. 그러나 시각과 후각 그리고 그 때의 기억이 함께 얹히면 그 맛은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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