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박, 준비, 에어매트, 올뉴카니발, 가족여행, 시작
차박이라는 말조차 낯설던 시절, 우리는 그 길의 초입에 서 있었다.
우리 가족의 차박 이야기를 꺼내려 한다. 그래서 이전에 다녔던 여행들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이건 '차박'에 대한 이야기다. 처음 차박에 도전했던 바로 그날, 그 준비과정부터 다시 되짚어본다.
타임머신을 타고 그날로 가기 위해 사진 폴더를 열었다. 날짜는 2017년 1월 29일. 그날의 감정은 정말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두려움, 설렘, 긴장... 꼭 군대 입대하는 느낌이었다. 물론 군대엔 설렘 같은 건 없었겠지만.^^
비슷한 기분을 느낀 적이 있다. 난생 처음 비행기를 타고 해외출장을 갔을 때였다. 영어는 늘 멀리했던 내가 명함 하나 달랑 들고 호주에 있는 거래처에 한 달 동안 파견되었던 경험. 생존본능 하나로 그들과 협업하고, 이별파티까지 하고 돌아왔었다. 그때 느꼈던 낯선 설렘과 생존의 긴장감이 이번 차박과도 비슷했다.
침대부터 만들었다. 그것이 내가 찾은 해답이었다.
차박이라는 건 결국 차 안에서 잠을 자는 것이다. 그래서 시작은 단순했다. "어떻게 하면 잘 잘 수 있을까?"
차박 카페, 동호회에 가입해서 눈팅하고, 실패담 성공담을 찾아보며 하나씩 배워갔다. 2017년이면 아직 차박이라는 개념이 막 퍼지던 때였기 때문에 차박 관련 장비들은 흔하지 않았고, 대부분 캠핑장비를 이용하거나 개조해서 사용하고 있었다.
캠핑이라는 단어만 붙으면 가격이 훌쩍 뛰었다. 우리는 캠핑이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장비는 과감히 포기했다. 하지만 올뉴카니발에 딱 맞는 에어매트 하나만큼은 장만했다. 그게 신의 한 수였다.
내 차는 9인승 카니발이었고, 2열과 3열 좌석을 뒤로 젖히고 매트를 깔면 침대가 되었다. 그냥 매트는 안 된다. 푹 꺼지니까. 반드시 강력한 에어매트여야 했다. 그걸 깔면 무게를 버텨주는 폭 120cm, 길이 217cm의 넓은 침대가 펼쳐졌다.
아이들이 그때 6살, 5살, 2살이었으니, 그 침대 하나로 다섯 식구가 누워도 괜찮았다. 물론 앉으면 머리가 천장에 닿았지만, 누워있기엔 충분했다.
가족들도 신기해하며 차 안에 함께 누워보았다. 좁을 줄 알았던 공간이 하나의 커다란 방처럼 느껴졌고, 아이들은 마치 캠핑장에 온 것처럼 들떠 있었다. 그렇게 첫 침대를 만들어 놓고 나니, 우리 앞에 펼쳐질 차박 여행이 조금씩 기대되기 시작했다.
그때는 정말 에어매트 하나면 차박 준비가 다 된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귀여운 착각이었다. 차박의 세계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고, 우리는 이제 막 그 입구에 들어섰을 뿐이었다. 그 시절의 순진했던(?) 나를 떠올리면 절로 웃음이 난다.
목적지는 어디든 괜찮았다. 다만, 기억에 남을 장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차 안에 침대를 만들고 나니, 이제 고민은 목적지였다. 우리는 그전까지는 항상 펜션이나 당일치기 여행이었다. 길 위에서 자는 여행은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그날도 퇴근 후 깜깜한 밤이었고, 어디로 갈지도 사실 막막했다. 이왕 처음 해보는 거라면 특별한 장소였으면 했다. 그때 떠오른 곳이 간절곶이었다. 해돋이 명소이기도 했고, 내가 봐온 차박 후기들 속에는 늘 바닷가에서 차 안으로 비치는 일출, 그런 낭만적인 풍경이 담겨 있었다. 바닷가에서 차 안에서 일출을 보는 그림, 얼마나 멋졌던가.
사실 나랑 해돋이는 참 인연이 없었다. 생애 첫 일출 여행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교회 친구들과 송구영신예배를 마치고 부산 해운대로 갔는데, 여름 일출 시간을 겨울에도 똑같이 생각한 덕분에 새벽 5시부터 무려 두 시간 반을 추위에 덜덜 떨며 기다렸다. 너무 추워서 잠시 편의점에 들어가 라면 한 그릇을 먹고 나왔는데, 그 사이에 해가 떠버렸다. 미쳐, 미쳐...
다음 해, 똑같은 친구들과 똑같이 송구영신예배를 마치고 이번엔 시간을 정확히 맞춰 다시 해운대로 향했다. 그런데 웬걸, 이번엔 반대 방향 버스를 타고 말았다. 버스 안에서 창밖을 보고 있는데, 저 멀리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 이후로도 내가 일출을 보러 가면 어김없이 구름이 가로막거나 비가 내렸다. 그렇게 단 한 번도 정상적인 일출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더 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내 인생 첫 일출에 도전하려고 간절곶을 정했고,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그곳을 우리 가족과 함께 향했다. 우리의 차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