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그 말엔 언제나 복잡한 감정이 따라붙는다. 설렘과 두려움, 기대와 불안. 그리고 내게는... 도피였다.
주변 친구들이 하나둘 결혼 소식을 전해오던 시절. 나 역시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 속에 살았다. 부모님의 시선, 사회의 기준, 그리고 '적령기'라는 말들이 내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부모님의 걱정이 날로 심해지고 점점 부담스러워졌다. 어찌해야 하는 건지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 건지도 막막하기만 했다. 그리곤 생각했다 결혼은 꼭 해야만 되는 건가 안 해도 되지 않을까 하지만 세상은 내 맘처럼 흘러가지 않았다 그 시대에는 무조건 해야만 하는 그런 식이었다 자식들의 결혼은 부모들의 인생에서 의무적이었고 꼭 해야 할 일이라 여겼다 그리고 자식의 입장에선 거스를 수 없는 책임감이었다 의무와 책임감 속에 한 사람을 알게 되고 그렇게 결혼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그는 나와 같은 세대를 살아온 사람이니 서로 통하는 게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조심스럽게 나눴고, 서로의 손을 잡고 살자는 약속도 했다. 그러나 그 사랑은, 지금 돌아보면 너무나 얇고 가벼웠다. 나는 이 관계가 최선이라 믿고 싶었고, 사랑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결혼 생활은 시작부터 낯설고 서먹했다. 그는 자신의 방식만을 고집했고, 나는 그 속에서 점점 작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입에서 나온 말.
"사실 내가 결혼하고 싶었던 여자가 있었어."
그 말은 내 마음을 산산이 깨뜨렸다. 그 순간, 우리가 함께한 시간들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아니 무너져 내렸다. 그때는 헤어진다는 생각은 엄두도 못 내는 그런 시대였다 헤어진 다는 건 집안에 가문에 민폐였기에 괴로워도 슬퍼도 그냥 살아내야 하는 거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나 또한 부모님께 걱정 끼치기보다는 사는 것을 택했다 나는 애써 견디려 했고, 여자로서 더 다가가 보기도 했다. 웃어도 보고, 화를 내보기도 했지만, 그 어떤 감정도 그에게 닿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점점 더 냉소적인 말들을 내뱉기 시작했다.
"오기로 결혼한 거야. 널 괴롭혀주고 싶었어." 잡은 고기한테 밥 주는 거 봤어?
그 말에 나는 더 이상 반박조차 하지 못했다. 삶은 매일 반복되는 다툼과 침묵의 연속이었다. 나는 내 인생을, 그와의 결혼 안에 묻어두었다. 사랑받고 싶었던 마음조차도.
그럼에도 나는 주변의 시선이 무서워 그 삶을 유지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점점 나를 잃어갔다. 이 결혼은 시작부터 엇갈린 선택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선택의 끝에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함께하는 삶이란, 나를 버리는 일이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