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속 기호의 사라짐
언어가 멈추는 순간,
자아는 어디로 가는가?
명상을 깊이 지속하면, 우리 안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난다.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은 말이다.
말을 직접 하지 않더라도, 평소 우리는 끊임없이 ‘속말(inner speech)’을 한다.
무언가를 보면서 동시에 이름 붙이고, 평가하고, 기억 속과 비교하고, 미래를 예측하며, 끊임없이 말을 뱅뱅 돌린다. 그러나 일정한 호흡 리듬과 주의 훈련을 통해 우리는 이 속말의 흐름을 점점 줄여나갈 수 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기호화 자체가 멈춘다.
<용어박스: 기호화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어떤 것’으로 보기 위해 우리는 기호화 과정을 거친다. 예를 들어 눈앞의 붉은 열매는 ‘딸기’라는 단어로 분류되고, ‘맛있다’는 가치 판단이 따라온다. 이처럼 언어, 평가, 기억, 예측은 모두 기호화의 일부다. 명상은 이 전체 과정이 중단되는 드문 상태를 만든다.
이 상태에서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있는 그대로 보게 된다.
딸기는 더 이상 ‘딸기’가 아니라,
색과 냄새와 질감이 흐르는 감각의 사건이 된다.
이러한 체험은 DMT와 유사하면서도 전혀 다르다.
DMT는 기호화를 강제로 폭파한다면,
명상은 기호화를 벗어나는 법을 가르친다.
기호가 사라진 후, 다음으로 변화하는 것은 자아다.
명상의 깊은 단계에 들어가면,
“나는 지금 숨을 쉬고 있다”는 의식조차 흐릿해지고,
“지금 숨이 쉬어지고 있다”라는 감각이 들어온다.
즉, 행위 주체로서의 ‘나’가 희미해지는 것이다.
<용어박스: 자아의 탈중심화(Ego Decentering)>
일반적으로 우리는 ‘생각하는 나’, ‘결정하는 나’를 자아의 중심으로 본다. 하지만 명상은 이 중심을 서서히 해체한다. ‘나’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 있음’만 남는다. 이 경험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을 다시 쓰게 만든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meta-awareness라고 부르기도 한다.
나는 더 이상 생각을 ‘하는’ 존재가 아니라,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바라보는 존재다.
철학자 에드문트 후설은 이런 구조를 의식의 지향성(intentionality)라고 설명했다¹. 모든 의식은 ‘어떤 것에 대한 의식’이며, 그것은 나와 세계의 방향성을 구조화한다.
하지만 명상 속에서 이 지향성은 느슨해지고,
의식은 방향 없이 퍼져 있는 장(field)이 된다.
명상을 하다 보면, 시계가 고장 난 것처럼 시간이 사라진다.
“5분밖에 지나지 않았나?”
“벌써 한 시간이야?”
이러한 시간 왜곡은 단지 주관적 착시가 아니다.
그것은 기호적 시간 구조가 느슨해진 결과다.
<용어박스: 기호적 시간(Sign-Time)>
우리는 시간을 숫자와 단어로 이해한다. “오전 10시”, “점심시간”, “퇴근 후”… 이러한 시간 개념은 기호 위에 존재한다. 명상은 이 기호 시간을 일시적으로 제거하고, 감각 시간 또는 지속 시간을 드러낸다.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은 이것을 순수 지속(durée pure)이라고 불렀다². 기호적 시간은 ‘측정할 수 있는 시간’이라면, 순수 지속은 ‘경험되는 흐름 자체’다.
명상 속에서 우리는
“시간이 흐른다”는 개념이 아니라,
“시간이 펼쳐진다”는 감각을 경험하게 된다.
그 시간은 길지도, 짧지도 않다.
그저 “충만한 지금”이다.
명상은 언어만 멈추게 하지 않는다.
머릿속 이미지의 활동, 감정의 움직임,
심지어 자신의 몸에 대한 공간 인식까지 재구조화한다.
명상 중 느껴지는 다음과 같은 현상은 대부분 실제로 보고된다:
• 손의 위치를 모르게 된다
• 몸의 경계가 사라진다
• ‘내가 어디에 앉아 있는지’ 잊는다
• 주변 소리가 자기 내부에서 울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체험은 공간 구조가 해체되었을 때 발생하는 지각 재조직 현상이다.
<용어박스: 신체–세계 연합(Body–World Coupling)>
현상학자 메를로-퐁티는 공간은 좌표계가 아니라, 신체와 세계가 얽혀 이루는 구조라고 보았다³. 명상은 이 얽힘을 순간적으로 해체하고, 감응적 구조의 바닥을 드러낸다.
결국 명상은 모든 것을 멈추게 한다.
말, 생각, 판단, 시간, 공간…
그리고 그 아래에 흐르는 무언가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것은 해석할 수 없고, 표현할 수 없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것’이다.
이 둘은 상반된 접근이지만,
모두 기호 이전의 구조,
그리고 감응적 리듬의 층위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철학적으로 강하게 공명한다.
다음 장에서는 이러한 기호의 정지 이후,
명상 체험이 어떻게 다시 의미 구조로 되돌아오는지를 살펴봅니다.
즉, 침묵의 구조는 단순히 ‘없음’이 아니라,
새로운 ‘의미의 탄생’ 조건이 될 수 있는가?
다음 장에서 다룰 내용:
• 명상 이후 기억의 패턴과 기호의 귀환
• 감응이 어떻게 사유가 되는가
• 명상, 시, 무의식의 반복 구조
• ‘기호 없는 기호’에서 ‘기호의 리듬’으로의 귀환
참고문헌
Edmund Husserl, On the Phenomenology of the Consciousness of Internal Time (Kluwer Academic, 1991), pp. 34–48.
Henri Bergson, Time and Free Will (George Allen & Unwin, 1910), pp. 76–103.
Maurice Merleau-Ponty, Phenomenology of Perception (Routledge, 1962), pp. 105–1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