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사우디에서 일한다는 것

승(承) – 멈춘 시간 속으로

by 게으른 개미

사우디에서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뜨겁고, 훨씬 허전한 일이다.


이곳의 여름(4월~10월)은 여름이라 부르기도 민망하다. 1년 중 반 이상은, 사람은 물론이고 돌멩이조차 숨이 턱 막힐 듯한 열기 속에 갇힌다. 파리며 모기며 모두 자취를 감춘다. 한낮에는 50도를 넘나드는 온도가 아스팔트를 달구고, 주차된 차 안은 화로가 된다.


석유 부국이라는 이름값이 무색하게, 이 나라의 일상은 때로 놀랍도록 밋밋하다. 한껏 기대를 품고 근처 도시로 나가도 지겹도록 무한한 사막과 정적뿐이다. 부족한 인프라, 빈약한 문화/체육 시설(미술관, 박물관이 거의 없다. 영화관도 잘 안 보이고 공공 체육관도 없다.), 사우디에선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걸, 아주 친절하게 확인시켜준다.


처음엔 그게 너무 당황스러웠다. 어디를 가든 한국보다 투박하고 뒤떨어진 모습에 마음이 가라앉았다. 이곳에선 아무리 주말이라도 한국에서처럼 조밀한 계획으로 하루를 채우는 건 불가능했다. 문화생활이라고 할 것도 소소한 재미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현장 사무실 주변을 걷다가 문득 돌무더기 위에 피어난 작은 꽃 하나를 발견했다.
황량한 풍경 속에서 예상치 못한 생명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와, 이 땅에서도 꽃이 피는구나.'

그 짧은 탄성 속에, 나는 스스로도 몰랐던 경외심을 느꼈다.

사막의 거친 열기와 메마른 땅조차 막지 못한 생명의 의지 앞에서,
나는 이곳에서 ‘당연한 것’이라 여긴 모든 감각들이 흔들리는 걸 느꼈다.


한국에서라면 당연했던 것들—주말마다 누릴 수 있는 문화생활, 잠깐의 산책만으로도 만날 수 있었던 꽃과 나무들—그 모든 것이 이곳에선 더 이상 당연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어쩌면 당연한 것이란 애초에 없었던 건지도 모른다.


당연함에 안주할 수 없는 이 환경 속에서, 나는 조금씩 ‘기대’보다는 ‘발견’에 마음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잃은 것들의 빈자리를 들여다보다 보면, 그 사이에서 뜻밖의 것들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가끔, 뜨거운 사막 열기 속에서 어쩌다 보니 야무지게 쪄진 감자 같은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이상하게도 그 순간마저, 이곳의 삶에 어울리는 어떤 풍경처럼 느껴진다.


[사진 1] 혹서기는 시작됐지만, 아직 여름이 아닌데도 한낮 기온은 이미 50도에 닿는다.

[사진 2] 자연의 위대함 - 돌무더기에서 피어난 꽃 -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 드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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