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우리 모두는 부모로부터 왔어요. 저는 뜨겁고 급한 빨간색 아버지와 차갑고 차분한 파란색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붉은보라', '자줏빛 보라'예요. 여러분은 어떤 색인가요?"
독서모임에서 '오늘부터 자아실현 꽃 피우자'의 저자 초청 강의를 한다. 조남희 작가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은 나를 몹시도 혼란스럽게 만든다. 답을 할 수 없다. 나는 무슨 색인가. 엄마는 무슨 색이고 아버지는 무슨 색인가. 단순히 내가 어떤 색일까를 고민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부모로부터 온 생명이니 부모의 색부터 알아야 한단다. 엄마는 무슨 색인가. 또 아버지는 무슨 색인가. 엄마는 뜨거운 색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혼자서 그 어려운 시절에 우리 4남매를 키워내셨으니. 억측스러운 열정의 색인 빨강, 그것도 검붉은 빨강으로 떠오른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무슨 색인가? 색이 없다. 볼 수가 없다.
아버지색이 아무리 해도 떠오르지가 않는다. 자꾸 희미한 회색만이 떠오른다. 너무도 희미해 회색이라는 느낌마저 없는 그런 색. 목욕탕에 김 서린 거울 속 나처럼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미지의 색이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전무하기 때문인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라고는 "내가 니 때문에 죽지도 못하고 도망도 못 간다. 어린 니를 두고 어디를 가겠노." 알아듣지도 못하는 어린 딸을 붙들고 한풀이를 한 엄마 말속에 있는 아버지뿐이다. 그러니 아버지가 어떤 색인지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아버지 색을 모른다는 것으로 시작된 존재의 부정. '나'라는 사람이 어디서 온 것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에 한동안 힘들다. 나는 무슨 색인가를 고민하다 보면 결국 최종 질문처럼 가 닿는 질문. 아버지는 무슨 색인가. 엄마는 검은 붉은색이 맞는가. 피멍 자국처럼 엄마는 검붉은 색이다. 무엇에 피멍이 든 걸까? 세월의 한일까? 자식들 먹여 살릴 그날의 새벽처럼 강인한 삶이 한을 만들었을까? 그렇다면 아버지는? 그럼 나는? 아버지로부터 막히는 질문에 해답을 찾을 수 없어 헤맨다. 결국 되풀이된다. 나는 무슨 색인가.
제시어: 색
타자수: 1000자
오필리아처럼~
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