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화_너의 길 엄마의 길

우린 서로 축복하며 그렇게 손을 꼭 잡는다

by 필이

"엄마, 나 하루 더 있다가 갈까?"

"응?"

"하루 더 집에 있고 싶어서."

아이가 연세대학교에 합격했다. 기쁨도 잠시, 기숙사로 갈 날이 다가오자 이것저것 준비가 바쁘다. 이때만 해도 이것저것 챙기며 걱정보다 설렘이 크다. 그것이, 날이 갈수록 설렘이 점점 숨어들고 걱정이 점점 고개를 치켜든다.

어른도 새로운 길을 시작하게 될 때 설렘보다 두려움이 크다. 그것이 여태까지 걸어왔던 길과 완전히 다른 길이라면 그 두려움은 더 커진다. 하물며 아이다. 자신은 당당히 술을 먹을 수 있는 어른이라고 하지만 엄마 눈에는 아직 아이다. 스무 살 아이.

자신이 가고 싶어 하는 학교에 합격했다며 얼싸안으며 기뻐했건만 막상 혼자만의 길을 떠나기 위해 집을 나서기에는 멈칫하는가 보다. 그래도 다행이다. 단지 멈칫한 이유가 새로운 길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 그동안 머물렀던 추억을 하루 더 담아가고 싶다는 것이어서.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을 하루 더 연장하고 싶단다. 어쩌면 스무 살 독립을 하루 더 연장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아이로 하루 더 머물고 싶은 그런!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아이 원이로 하루 더 있고 싶은 그런!

"엄마야 괜찮지만 네가 괜찮겠어? 멀어서 도착하면 오후가 될 텐데. 기숙사 방 소독하고 청소하고 정리해야 한다면서? 다음 날 바로 강의도 있다고 하고. 괜찮겠어?"

"응, 괜찮을 것 같애. 소독하고 청소만 해놓고 정리는 천천히 해도 되고. 여기서 하루 더 있다가 가고 싶어."

"니가 괜찮다면 그렇게 해. 엄마도 좋지. 너랑 하루 더 있을 수 있으니깐."

"엄마는 괜찮겠어? 다녀오면 밤늦을 텐데. 다음 날 바로 개학이고."

"엄마는 괜찮아. 너만 괜찮으면 엄마는 다 괜찮아."

이렇게 하여 스무 살 아이는 독립을 하루 더 연기했다. 독립을 위한 짐까지 다 싸놓은 상태라 아이에게는 오롯이 하루가 주어졌다. 엄마도 마찬가지다. 다녀와서 바쁘고 힘든 건 그때 문제다. 지금은, 주어진 하루를 아이와 어떻게 보낼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저녁에는 아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엄마방에 있는 돌침대에 나란히 누워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침대에 책들을 쌓아놓은 탓에 아이는 모로 누워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불편함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이와 엄마는 추억 여행에 한창이니깐.

어릴 때부터 떠오르는 기억들을 하나씩 끄집어낸다.

"저녁마다 이 침대에 앉아서 명상했던 거 기억나나?"

"어, 엄마가 명상에 빠져가지고 자기 전에 명상하고 잤잖아."

"그래, 그럴 때가 있었지. 제주도 여행 갔을 때가? 김영갑 갤러리 갔을 때, 거기 바위에 앉아서도 니 명상했잖아. 그거 사진도 있는데. 그때 진짜 귀여웠다."

이야기는 어느덧 함께 여행 다닌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오늘 나를 만든 건 엄마와 함께 다닌 여행이었던 것 같다. 특히 필리핀 가서 몇 달 동안 살았던 건 큰 경험이었다. 엄마랑 했던 그 모든 것들이 지금 나를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눈물이 핑~ 돈다는 표현을 이럴 때 쓰는 것이겠지? 아이에게서 이런 말을 듣는 엄마라면, 이럴 때 감동하며 눈물 좀 흘려도 되겠지?

아이와 한참 필리핀 다녀온 이야기를 한다. 그러다 결국 엄마는 이 이야기를 꺼내고야 만다.

"니 생각나나? 저녁마다 엄마 허리 밟아주고 다리 주물러주고 그랬잖아. 엄마 다리가 저려서 잠을 못 잔다고. 쪼꼬만 그 손으로 날마다 엄마 다리 주무른다고 얼마나 힘들었노? 참 못난 엄마다."

"어? 나는 재밌었는데? 엄마 막 밟고 다리도 막 때리고."

아이는 주먹으로 엄마를 때리는 시늉을 한다. 그 모습에 또다시 눈에 맺히려던 물이 그대로 멈춰라를 한다. 그리고 웃음이 떠오른다.

기특한 녀석. 아팠던 엄마를 그래서 너무 미안한 엄마를 웃음으로 넘기려고 하다니. 어쩜 이렇게도 생각이 깊은 것인지.

엄마는 어찌 된 것이 좋은 기억이 아니라 아팠던 기억이 더 많은지 모르겠다. 잘 토하고 숨도 잘 막히는 엄마를 아이의 작은 손으로 등을 두드려주던 기억. 엄마 아프지 말라며 손 꼭 잡고 기도해 주었던 기억. 급기야 넉 달이라는 긴 시간을 병원에서 보내게 되어 아이 혼자 산골짝에서 살게 했던 기억.

아이는 그 모든 것에서 배웠단다. 중2 나이에 그렇게 혼자 살아보는 아이가 어디 있겠냐며 그때 자신도 많이 컸단다.

아, 뭐라고 말할 수가 없다. 미안함으로 막을 내리고 싶지 않은데 더 이상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이런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아이가 내일 무엇을 할 것인지 정하자고 한다.

"뭐 하고 싶노? 니가 하고 싶은 거 다 하자."

"음, 그러면 지난번 가기로 하고 못 갔던 남사예담촌에 가서 밥 묵자. 거기서 산책하고 오후에는 좀 쉬자. 다음 날 일찍 출발해야 하니깐."

아이가 좋아하는 한식 한 상으로 점심을 먹고 우린 남사예담촌을 천천히 걸으며 또 회상한다. 그곳은 우리 아이 어릴 적부터 자주 다닌 곳이기에.

'아이 원이'로 마지막 날을 한 조각의 퍼즐로 채운다. 아이 인생의 '삶'이라는 퍼즐에 '아이 원이'로는 마지막 한 조각이다. 기분이 정말 이상하다. 엄마인 나조차 말로 할 수 없는 기분에 휩싸이는데 당사자인 아이는 어떨까.

3월 2일.
연세대학고 국제캠퍼스가 있는 인천 송도로 출발하는 날이다. 비마저 내리는 먼 길을 아이와 함께 한다.

공주 휴게소에서 잠시 쉬며 늦은 점심을 먹는다. 공주 휴게소 대표 메뉴라는 공주국밥과 알밤 먹은 한우국밥을 먹는다. 색다르면서 맛이 있다. 맛있는 음식은 좋은 기억으로 남겨지는 법. 아이와 엄마는 언젠가 이 국밥을 먹으며 오늘을 기억하자고 의기투합한다. 또 하나의 추억 퍼즐이 만들어지는 순간이다.

드디어 도착한다. 빗길에 차들이 많다. 짐을 내리고 아이는 수속을 밟고 짐을 자신의 기숙사 방에 가져다 놓고 온다. 그리고 엄마와 잠시의 시간을 보낸다.

우산 하나를 같이 쓰고 기숙사 둘레를 빙 둘러본다. 사진도 찍는다. 기숙사 아래에 있는 편의점과 카페도 간다. 우리에게 주어진 조금의 시간을 최대한 함께 한다.

시간은 어느덧 4시가 다 되어 간다. 지금 출발해도 엄청 늦은 시간 도착할 것이다. 아이는 기어이 엄마 차가 세워져 있는 주차장까지 같이 가겠단다. 비도 오는데 얼른 기숙사 들어가라는 엄마 말을 지지리도 듣지 않는다. 엄마와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다는 말로 더 이상 엄마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만든다.

아이는 차에서 조금만 있다가 가고 싶단다. 엄마는 운전석, 아이는 조수석. 올 때와 마찬가지로 앉았다. 그리고 아이와 엄마는 손을 꼭 잡는다. 아무 말도 없이. 얼마큼의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르겠다. 사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단지, 엄마가 느끼기에 그 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다.

"엄마, 고마워. 나, 공부 열심히 할게."

명치끝이 뭉턱하고 뭔가가 걸린다. 분명 눈물덩어리였을 것이다. 엄마는 침을 한 번 꼴딱 삼킨다. 우는 모습으로 헤어지고 싶지 않다. 씩씩하게 웃는 모습을 아이에게 남겨주고 싶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놀기도 열심히 놀아라. 청춘은 다시 오지 않는다. 후회 없을 정도로 실컷! 알았지? 너의 청춘을 응원한다."

아이는 엄마의 과장된 말에도 잠자코 엄마 손을 잡고 있다. 그것도 두 손으로 꼭!

너의 길,
엄마의 길,
우린 서로 축복하며 그렇게 손을 꼭 잡는다.

그리고
응원한다.
너의 독립도
엄마의 독립도



그동안 [아들과엄마]를 사랑해 주신 독자님!

고맙습니다.

이야기에서처럼

울 아이는 이제 자신의 길을 떠났습니다.


언젠가부터 [아들에게쓰는편지]가

[아들과엄마]를 많이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아이에게 쓰는 편지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다만, [아들과엄마]는 여기서 마무리가 됩니다.


그동안 사랑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오필리아처럼

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