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 씨의 만물상점 #5
어서 오세요, 성수 씨의 만물상점입니다.
오늘 진열장에서 꺼내볼 물건은, 먼지가 뽀얗게 쌓여있어 차마 꺼내고 싶지 않았던, 제 인생의 '흑역사' 상자입니다.
때는 바야흐로, 아이를 막 낳고 산후 우울감과 씨름하던 시절. 제정신이 아니었던 걸까요. 제가 아주 엉뚱하고도 무모한 일을 저지르고 맙니다. 바로, 지역 방송국 퀴즈쇼에 출연한 것이죠.
지금부터, 그 부끄럽지만 웃음 나는 저의 '방송 출연기'를, 큰맘 먹고 공개합니다.
아이를 출산하고 5개월 남짓 지났을 무렵, 저는 산후 우울감과 씨름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우연히 보게 된 지역방송국 TV 퀴즈쇼가 제 인생에 뜻밖의 파장을 일으킬 줄은 꿈에도 몰랐지요.
사회자가 내는 문제를 소파에 앉아 무심코 따라 푸는데, 제가 척척 맞추는 게 아니겠어요?
'어? 생각보다 쉬운데?'
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솟구쳤습니다. 충동적으로 예선에 신청했고, 며칠 뒤 덜컥 본선에 진출했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때의 제 모습은, 솔직히 말해 엉망이었습니다. 퉁퉁 부은 얼굴, 빠지지 않은 살, 우수수 빠져 부스스한 머리카락. 하지만 아이를 낳고 무채색이 되어버린 제 삶에, 작은 활력소가 될 거라는 생각에 용기를 냈습니다.
남편과 함께 도착한 방송국. 스튜디오에 들어서는 순간, 저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습니다. 수많은 카메라와 눈을 멀게 할 듯한 조명 앞에 서니, 머릿속이 하얘지더군요.
"예뻐지진 않았다"는 솔직한 후기만 남긴 분장을 마치고, 드디어 녹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첫 번째 문제, 통과! 두 번째 문제, 통과!
상금이 쌓여갈수록 제 심장도 터질 듯이 뛰었습니다.
그리고 운명의 세 번째 문제.
"성별의 구분이 없는 옷, 패션 스타일 등을 뭐라고 하는가?"
알고 있었습니다. 입안에서 그 단어가 빙빙 맴돌았죠.
"정답! 저기... 어... 유니... 유니...?"
"하나, 둘, 셋, 땡!"
그 '땡' 소리와 함께, 제 머릿속에서 전구가 켜졌습니다.
"유니섹스!!!"
하지만 사회자는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죠.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렇게 저는, '광탈'했습니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지만, 그래도 상금 30만 원은 챙겼습니다. (물론 세금 떼고, 가족 외식 한번 하니 사라졌지만요.) 저는 그날, 다시는 퀴즈 프로그램을 넘보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했습니다.
[후일담: 나를 알아보다니!!]
며칠 뒤, 아이가 감기에 걸려 동네 병원에 갔습니다.
진료를 마친 의사 선생님이 저를 빤히 바라보시더군요.
"어머님, 어디서 뵌 것 같은데..."
"아, 맞다! 퀴즈 프로그램 나오셨죠?"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니! 공중파도 아닌 케이블 방송이었는데 말이죠.
"아... 네... 보셨군요. 부디 잊어주세요."
그날, 의사 선생님은 제 아들의 초음파 검사를 공짜로 해주셨습니다.
저의 '광탈'이, 아들에게 뜻밖의 선물이 된 순간이었습니다.
지금도 남편은 집에서 퀴즈쇼를 볼 때마다 척척 문제를 맞히는 저를 보며 말합니다.
"여보, 한 번 더 나가자!"
저는 오늘도, 고개를 힘껏 젓습니다.
그 부끄러움은, 여전히 온전히 저의 몫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