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 씨의 만물상점 #6
어서 오세요, 성수 씨의 만물상점입니다.
오늘 제가 꺼내놓을 물건은, 저의 지난 직장생활 서랍 속에서 찾아낸,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당황스러웠던, 하지만 결국엔 마음 따뜻해지는 기억 하나입니다.
이 기억은 제 만물상점의 '관계 회복제' 코너에 진열되어 있지요.
타다닥, 타다닥.
조용한 사무실에 키보드 소리만 울리던 그날 오후였어요.
갑자기 옆자리 K 선생님이 책상 위로 고개를 푹 숙이는 게 아니겠어요?
바로 그 순간, 앞자리 S 팀장님의 안색이 싸늘하게 굳어지는 걸 보았죠. 사무실의 공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답니다.
'뭐지, 이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는?' 저는 긴장감에 마른침을 꿀꺽 삼켰습니다.
저는 조심스럽게 K 선생님에게 메신저를 보냈어요.
"무슨 일 있어요?" 답장은 처절했죠.
"선생님... 저, S 팀장님한테 보냈어요. 선생님께 보내야 할 메시지를..."
사건의 전말은 이랬답니다. S 팀장님께 업무 지적을 받은 K 선생님이, 그 서운함을 제게 토로하려던 것이었어요. 팀장님의 지적이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그 날카로운 어투에 마음이 상했던 거죠.
'선생님, 오늘 팀장님 기분이 안 좋은가 봐요. 왜 저리 예민하죠? 맨날 저러니 일하기 싫어요.'
저에게 왔어야 할 그 메시지가, 정확히 S 팀장님에게 전송된 것이었어요. 본의 아니게, 저는 '뒷담화 미수 사건'의 공범이 되어버렸답니다.
S 팀장님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어요. 얼마 뒤 돌아온 그녀의 두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죠. 화가 난 걸까, 아니면 상처받아 울었던 걸까. 저는 감히 짐작할 수 없었어요. 다만, 그 붉어진 눈을 보며 저 역시 가슴 한구석이 싸늘하게 식는 것을 느꼈습니다.
사실 S 팀장님은 업무 능력이 매우 뛰어난 분이었어요. 행정 업무에 있어서는 제가 만난 상사 중 단연 최고였죠. 그녀와 일하며 저 역시 많이 성장했기에, 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답니다. 하지만 그녀는 날카로웠어요. 틀린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 직설적인 화법은 종종 동료들에게 상처를 주곤 했죠.
이유야 어찌 됐든, 이번 일은 K 선생님의 잘못이 맞았어요. 저는 그녀에게 말했죠.
"지금은 사과해야 할 때인 것 같아요. 제가 티타임을 요청할 테니, 같이 가서 수습해요, 우리."
"팀장님, 저희와 잠시 대화하실 수 있을까요?"
회의실에 마주 앉은 우리 셋 사이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어요.
"팀장님 제가 너무 경솔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생각해 보니, 저도 너무 날까롭게 반응했던 것 같네요"
K 선생님이 먼저 어렵게 입을 열어 사과했고, 그 사과를 시작으로, 우리는 그동안 서로에게 쌓여있던 오해와 서운함을 모두 쏟아냈답니다.
S 팀장님은 자신의 날카로운 말이 다른 이에게 어떻게 상처가 되는지 알게 되었고, 저희 또한 그녀의 완벽주의 이면에 숨겨진 여린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어요.
그날, S 팀장님은 K 선생님의 실수를 '공격'으로 받아치지 않았어요. 대신, 기꺼이 대화의 자리에 나와 자신의 마음을 열어 보였죠. 잘못된 상황을 정면으로 돌파하고, 오히려 그것을 관계 발전의 계기로 삼는 그녀의 그릇.
저는 그날, 그녀의 '넉넉한 그릇'을 보았답니다. 그 넉넉함은 단순히 잘못을 덮는 것을 넘어, 관계를 한 단계 더 성숙시키는 리더십의 본보기였다고 생각합니다.
그 위태로웠던 고비를 한번 넘기고 나니,
우리 팀은 역설적으로 이전보다 훨씬 더 단단하고 돈독해졌어요.
오해는 그렇게,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볼 때 비로소 이해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이 기억은 제 만물상점의 '관계 회복제' 코너에서 늘 빛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