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살아남기 제1장 - 살고 싶으면 침묵할 것

by 서휘

그해 초여름, 나와 같은 업무를 맡은 동기 △△씨가 사전 협의 없이 외부로 제출될 재정 관련 서류를 멋대로 작성해 올렸다. 실제로 진행되지 않은 항목이 포함되어 있었고, 이는 규정상 예산 부정 집행은 물론이고 횡령으로도 취급될 수 있는 중대한 문제였다. 절차상 '실수로 그랬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고의가 명백했다.


문제를 인지한 즉시 동기에게 이의를 제기했다. 융통성이 필요하다기에는 굉장히 민감한 사안이었을뿐더러 나와 상의하지 않고 진행한 후 통보했다는 점에서 화도 났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그의 입에서 돌아온 말은 "이미 제출한 건이니 그냥 둡시다. 문제 만들지 마세요."였다.


정식 절차에 따라 보고하겠다고 말한 나에게 그는 B팀의 직원들을 방패 삼아 이렇게 말했다. "그건 그냥 형식적인 거잖아요. 선배들도 그렇게 처리해 왔다고 하던데요. 왜 그렇게 예민하게 구시는지... 굳이 일을 키우려는 의도가 뭐죠?"


더는 참을 수 없어 동기에게 "△△씨가 독단적으로 하신 일이니 다음 회의 시간에 상부에 보고하고 다음부터는 이 일, 따로 처리하시죠."라고 말하자 그는 다섯 살 난 아이의 생떼에 맞춰주듯 귀찮은 얼굴로 "알겠습니다. 제가 다 말씀드릴게요."라 답했다.


잘잘못을 따지자는 게 아니었다. 앞으로는 담당자인 나를 제외하고 일을 진행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하고 싶었을 뿐. 그런데 돌아온 건 일말의 사과도, 타당한 설명도 아닌 '문제 있는 사람'이라는 낙인이었다.




이 문제를 자신이 보고하겠다던 날, 동기는 회의 시간 내내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내가 눈치를 줄 때까지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더는 묵인할 수 없어 내가 그간의 일을 직접 보고했다. 이어 왜 굳이 일을 분담하고자 하는지, 왜 이렇게 팀장님들까지 계신 자리에서 껄끄러운 이야기를 꺼내야만 하는지 모두 말씀드렸다.


이에 부서장과 팀장들은 "그 정도는 현장에서 유연하게 넘길 수 있지 않나? 크게 문제 될 건 없어 보이는데?"라며 묘한 시선을 주고받았다.


나는 억울하고 답답한 심경을 꾹꾹 누르고 조심스레 말했다. "외부에 보고되는 허위 기록이자 예산 부정 집행입니다. 이 문제는 조직 전체의 신뢰와도 연결되는 일이라 판단합니다."


그러자 B팀의 선임은 "이 일은 매번 이런 식으로 처리해 왔고, 팀장님들 모두 알고 계십니다. 뭐 때문에 불편하다 하는진 알겠는데, 때로는 ○○씨도 융통성을 보여야 하지 않겠어요? 불편하면 자세를 고쳐 앉으세요."라고 거들었다.


1초가 1분 같이 느껴지는 갑갑한 분위기에서 정적이 흐르고 드디어 부서장이 입을 열었다. "△△씨, 다음부터는 꼭 상의하고 진행하세요."


그 말을 끝으로 회의는 마무리됐다.


그날 저녁, 회식 자리에서 어쩌다 보니 동기의 바로 옆자리에 앉았다. 별일 없었다는 듯 웃고 떠드는 사람들 사이 마음 한편이 불편했다. 이들이 무언의 동조자일 수 있겠다는 불안감에 더 깊이 침묵해야만 했다. 앞으로의 불행을 직감한 건지도 모르겠다. 썩어 문드러진 건 시스템이었지만, 도마에 오르는 건 늘 문제를 입 밖에 낸 사람이었다.



야, 너 같은 호칭 문제나 공개적으로 망신주는 일 따위는 일상이었다. "네가 할 줄 아는 게 뭐냐"며 윽박지르다가도 "이런 것도 알아서 못하냐"라 핀잔주는 것, "이런 건 알아서 해라" 했으면서 "이런 건 좀 물어보고 해라"고 말을 바꾸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직속 선배에게 종종 조언을 구했지만 언제나 선배는 '네가 사회생활이 처음이라 모르나 본데'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자신은 이런 문화도 괜찮다며 다른 회사는 수직 구조에서 비롯되는 불의가 얼마나 많은지 연설하기 일쑤였다.


괴롭힘은 공기처럼 스며들었고, 아무도 그것을 부당하다 말하지 않았다.


내가 감당해야 했던 괴롭힘은 인간관계에서 종종 벌어지는 갈등으로 포장되어 외면당했다. 권력을 등에 업은, 한없이 비열하고 구조적인 폭력이었다.



인격모독, 금전 요구, 사적 심부름,
업무 배제, 이유 없는 질책, 무시



첫째, 인격모독.


"기분 나쁘게 듣지 마"라는 말을 듣고서 좋던 기분도 나빠진 경험이 있는가. 이 말을 시작으로 "너 이렇게 생각 없이 살아서 어떡할래?", "온실 속의 화초처럼 귀족 대접만 받고 자랐니?" 같은 인격 모독성 발언을 수도 없이 들었다.


나는 지극히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고, 결코 이런 말을 들을 정도로 멍청하게 굴지도 않았다. 중요한 건 그 어떤 상황에서든 누구에게도 이런 말을 들어서는 안 된다는 거다.


그러고는 이런 사람들이 늘 덧붙이는 말을 들었다. "자식 같아서,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


둘째, 금전 요구.


본인들의 이익과 편의를 위해 돈을 달라거나 강제로 거둔 게 족히 몇만 원이다. 신입사원 월급 얼마나 된다고. 그 돈을 내가 왜 내야 하나 싶어 거절하려다가도, 그렇게 되면 동료가 내 몫까지 내게 생겨 어쩔 수 없이 냈다. 또 선배들은 예전부터 '이런 비용은 당연히 신입이 낸다'는 식으로 말했다. 단단히 가스라이팅 당한 탓에 '이건 아니다' 싶으면서도 이게 말로만 듣던 사회생활이겠거니 하고 참았다.


셋째, 사적 심부름, 업무 배제, 이유 없는 질책, 무시.


이런 일들이 반복되자 나는 팀장에게 상황을 보고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말했다. 그러나 대표는 그런 나를 유독 예민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으로 몰아가며 날이 갈수록 더 무시했다.


문제를 크게 키우기 싫은 마음은 내가 더 컸을 텐데. 노동부나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부서 내에서 해결하려 했던 아량에 가까운 배려를 알아채지 못하고 조용히 입이나 다물고 있으라는 태도를 고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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