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사회생활 처음이었다. 몰라서 실수했다 치자. 다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아주 성실히 넘어댔지만 내가 더럽게 눈치도, 융통성도 없었다 치자고.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신입사원이 배우려는 의지를 보인다면 한 번쯤은 이해해 주고 좋게 알려줄 수 있는 거 아닌가.
흔히 말하는 '요즘 MZ'가 되기 싫어서, 내 행동 하나로 주변 사람들까지 욕 먹이기는 죽기보다 싫어서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데 이런 수모를 당하다니. 면접 합격 소식을 들은 날, 이 지경이 될 줄도 모르고 마냥 기뻐했던 내가 한심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런 괴롭힘은 신고 직전까지 계속됐다. 직접 가해자들뿐만 아니라 부서장을 비롯한 책임자들과 나머지 직원들까지 묵인하고 그 환경에 순응함으로써 가담했다.
난 이들과 집단 대 개인으로 싸워야 했다.
방관도 직접 가해만큼이나 잘못된 행동이라는 건 초등학생들도 다 아는 상식이다. 본인이 피해받을까 봐 내 의견이나 행동에 대놓고 힘을 실어주진 못해도 가해자들과 함께 따돌려서는 안 될 노릇이지 않나. 학교폭력 교육을 12년 내내 귀에 못이 박히게 하면 뭐 하나, 그 나이 먹고 초등학생도 안 할 유치한 짓을 해대는데.
방관자들도 양심이 있으면 이 행위가 부적절한지 몰랐다고 하진 않겠지. 이미 이 조직에서 괴롭힘으로 인한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며 퇴사한 사람이 여럿 있었으니 말이다. 놀랍게도 이 사실은 가해자에게 직접 들었다.
퇴사한 A씨는 유독 버티기 힘들어하는 사람이었다느니, B씨는 감정 조절도 못하고 히스테릭한 사람이었다느니 하는 말들. 그들이 실패한 인간 샘플이라도 된다는 듯 품평했다. 그렇게 괴롭힘 피해자들은 퇴사하고 나서도 인간 이하의 존재들에게 가십거리가 되었다.
가진 능력치라고는 쥐뿔도 없는 햇병아리를 받아준 회사가 고마워서라도 잘 이겨내려 했다. 다들 이러고 산다기에 그런가 보다 하며 버텼고, 문제를 제기할 때마다 돌아오는 비아냥과 사회 부적응자 취급에도 아직 배울 게 많아 버거운 거라며 스스로 세뇌했다.
그렇게 몇 개월을 견디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출근할 수 없는 그 어떤 일이라도 일어나면 좋겠다.
천재지변이 일어나든, 출근길 버스가 뒤집히든, 도로가 무너지든 상관없다. 적당히 다치고 또 적당히 아프면 잠시나마 쉴 수 있겠지.
평소엔 남에게 피해 주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난데- 다른 사람의 안위를 고려할 정신이 아니었다. 지구가 두 쪽 나더라도 출근만 안 하면 만사 오케이였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런 생각을 한다는 건 굉장히 심각한 상황임을 인지했다. 그와 동시에 무슨 일이 있어도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신고서 접수 전, 먼저 인사과에 사실을 알렸다. 내가 겪은 일이 누가 봐도 부당한지, 아니면 내가 주제 파악도 못하고 피해의식에 잠식된 건지 판단해 줄 제삼자가 필요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내 이야기를 누가 들어도 "아 그건 좀" 하는 말이 나올 정도여야 겨우 괴롭힘을 인정받을까 말까라 했기 때문에 더 마음을 졸였다.
카톡 캡처본, 녹음파일 등 그간의 자료들을 모두 제출했다. 날짜별, 유형별로 열 개 가까이 되는 폴더를 만들어 압축해 놓았던 게 신의 한 수였다. 입사 첫날부터 워치를 차고 다니며 모든 내용을 녹음한 건 아니다. 언젠가 내가 더는 못 견딜 순간이 오면 신고해야겠다고 마음을 일찍이 먹은 셈이었나 보다.
사실 인사과도 회사 소속이라 한낱 NPC에 불과한 '직원 1'의 주장은 쉽게 묵살될 줄 알았다. 부서원끼리도 모자라 회사의 전 직원에게 사회 부적응자로 낙인찍히는 건 아닐지 수십 번 망설였다. 하지만 더 미루면 이대로 증발될 것만 같았다.
다행히 증거들은 꼼꼼하게 검토되었고, 직장 내 괴롭힘이 확실하다는 대답을 듣고서야 신고서를 제출했다.
피신고인의 이름을 적는 칸에는 책임자들을 포함한 모든 부서원들의 이름을 적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바란 건 단 하나, 괴롭힘 행위가 중단되는 것이었다. 해고는 무슨, 정직이나 감봉까지 바라지도 않았다. 직장 내 괴롭힘 예방교육 의무 이수 같은 것도 그들을 인간다운 인간으로 만들기엔 소용없다는 걸 진작 알았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자는 신고 전보다 후에 훨씬 더 큰 상처를 받게 된다고 한다. 나도 예외는 아닐 거라 어느 정도 각오를 했다만, 신고 후 상황은 상상을 초월했다.
퇴사 직전까지 직원들은 더 교묘하고 잔인한 방식으로 나를 괴롭혔다.
전 직원이 함께 식당에서 점심을 먹던 식사시간, 시계도 못 보고 일하는 나를 단 한 사람도 부르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된 따돌림은 업무에도 이어져 모든 프로젝트에서 배제되기에 이르렀다. 기존에 내가 맡고 있던 업무는 어느새 다른 직원에게 넘어가 있었고, 회의 일정은 공유되지 않았다. 부서장과 B팀 선임의 주도 하에 나만 제외된 단체 채팅방이 여러 개 만들어졌다.
소위 '카더라' 식의 허위 소문을 만들어 자기들끼리 시시덕거리기도 했다. 내 옷차림이나 머리 스타일은 말할 것도 없고 학벌과 전공, 심지어는 생김새와 목소리까지 조롱의 대상이었다.
신고를 철회하라고 설득하기도, 협박하기도 했다. 자신들의 권위와 인맥을 자랑하며 "내 밑에서 일하는 한 널 보호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세뇌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절대 재계약할 리 없다 생각했던 걸까, 계약 종료일이 임박했을 때까지 계약 연장 근로계약서를 받지 못했다.
내가 없는 회의 시간에 모든 부서원들은 나와 내 신고 건을 언급하며 비밀유지 의무라는 최소한의 윤리를 저버렸다. 부서장과 팀장들은 가해 직원과 같은 업무를 맡도록 팀을 짜 직접 접촉을 강요했고, 이는 피해자 보호조치를 위반이었다.
따돌림, 업무 배제, 허위 소문, 비하 발언, 설득, 협박, 재계약 불이익, 비밀유지 의무 위반, 접촉 강요, 피해자 보호조치 위반
그 밖에도 2차 가해의 방식은 너무 다양해서 사건 하나하나를 다 담는 게 어려울 정도다.
직원들은 나를 잔잔한 연못에 돌멩이를 던진 사이코 보듯 했다. "더 심하게 따돌림당할 거다", "네가 할 수 있는 게 있을 것 같냐" 같은 말을 듣고도 견뎌야 했다. 날 위한다는 그들의 말은 누구보다 자신들을 위한 말이었다. 그렇게까지 본심을 드러낼 필요는 없었는데. 그 위선엔 반박이란 호사까지 주기 싫었다.
게다가 그들은 우리끼리 해결할 수 있는 일을 외부에 알려 이 사단을 만드냐며 나를 내부 고발자 취급했다.
'우리끼리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하긴, 할 수는 있겠지.
피해자가 떠나면 되니까.
애초에 그들의 '우리'엔 내가 없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