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원해서 시작한 일이니 힘들어도 끝까지 감당해야지."
나는 이 말을 끔찍이도 싫어한다. 가해자로부터 이런 말을 들으니 내가 죽든 가해자를 죽이든, 둘 중 하나를 꼭 해야 제 명에 죽을 수 있을 듯했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예상했던 전개라 다행이라는 찰나, 사방에서 못질을 해도 깨지지 않던 정신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산 사람은 사후세계를 절대 알 수 없다. 지옥에는 불만 있는 게 아니었다. 뱀 지옥, 못 지옥, 구더기 지옥, 냉골 지옥. 그 모든 지옥이 한꺼번에 들이닥친 듯한 소식.
명예훼손 및 모욕죄 피소
고소장이 날아왔다. 내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란다. 내 피해 사실을 신고함으로써 가해자의 명예가 훼손되었단다.
올해 통틀어 가장 세게 현타가 왔다. '이런 일을 당하려고 최선을 위해 살아왔나', '무슨 일이 있어도 정직하게, 예의 바르게 살아왔던 지난날의 나는 호구짓을 한 건가' 하는 괴로움에 몇 날 며칠이나 잠을 설쳤다. 하루에 서너 시간식 자며 평소대로 업무와 개인 일정을 소화하려 하니 죽을 맛이었다.
결국 마음의 병까지 오고야 말았고 눈 깜짝할 사이 신체화 장애 증상도 나타났다.
1) 정신의학적 증상: 집중력 저하, 잦은 건망증, 의욕상실, 우울감 및 불안감 지속, 무기력증, 자신감 저하, 감정기복, 소외감, 고립감
2) 신체화 장애 증상: 수면의 질 하락, 만성피로, 면역력 저하, 두통, 소화불량, 역류성 식도염, 스트레스성 피부질환, 손 떨림, 심장 압박감, 구역질, 현기증, 목 이물감, 과호흡
신체화 장애 증상이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날 뻔한 일이 있었다.
점심시간, 식당에서 가해자들을 마주쳤다. 그들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웃고 떠들며 식사하고 있었다. 이미 식판에 음식을 다 받은 상황에서 잔반처리통에 부어버리고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눈을 찌푸려야만 겨우 누군지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멀리 앉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식당이 워낙 좁아 고작 몇 발자국 떨어진 테이블에서 밥을 욱여넣었다.
'내가 저들을 왜 피해야 하냐'는 마음과 달리 몸은 따로 움직였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가슴이 조였다. 손이 너무 떨려 국 뜬 수저를 내려놓아야 했고, 속도 너무 메스꺼워 당장이라도 토할 것 같았다. 나와 함께 식사하러 온 다른 부서 직원들에게 굳이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아 감췄다. 눈치를 못 챈 건지, 채고도 못 본 척해 준건지 특별한 말을 하지 않았다.
가해자들의 식사자리에는 B팀 선임의 자녀도 있었다. 아이들을 보며 '저 아이들은 자기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평생 모르겠지' 하는 생각과 동시에 저런 사람도 자식을 키운다는 게 역겨웠다. 그 찰나의 장면이, 한 아이의 보호자라는 이유만으로 선하게만 보이는 현실이 원망스러웠다.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두 가지다.
첫째, 나는 절대 안 죽는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살아갈 이유도 수백 가진데 내가 왜 인간도 아닌 것들 때문에 죽어야 하나.
SNS에서 위험한 발언을 하는 인플루언서들의 게시물에는 이런 댓글을 심심치 않게 달린다. "이 사람은 정신질환이 없고 삶의 의욕이 충만합니다." 나도 지인들에게 '내가 갑자기 죽으면 무조건 타살이야' 같은 농담을 종종 했다.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끼고 걸을 때 가해자들이 뒤에서 칼이라도 꽂지 않을까, 풀악셀로 나를 치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내비치는 말이었다. 맹세코 혼자만의 망상은 아니었던 게- 타 부서 사람들이 보기에도 가해자들은 그러고도 남을 것처럼 나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라고 했다.
둘째, 자책하지 말자. 그 어떤 이유도 저들의 행동에 면죄부가 될 수 없다.
그 길로 정신과 초진을 예약했고, 회사에는 정식 조사를 요청했다.
정신과 방문 첫날, 1시간 반을 기다려 의사를 만났다.
초진이라 그간의 상황을 처음부터 설명하느라 50분을 보냈다. 통원 치료 3개월 이내에 진단서를 발급받으려면 몇십만 원이나 하는 임상심리검사 결과가 필요하다는 말에 주저 없이 예약했다. 사회초년생 월급으로는 벅찼지만, 가진 걸 다 털어서라도 끝까지 싸우고 싶었다.
계속 이야기해 보라는 의사의 말에 최대한 이성적으로 대답했다. 피신고인들이 '신입이면 당연히 내야지'라며 돈을 요구했다는 말에 의사가 내뱉은 궤변.
"그 사람도 힘들었겠네요. 신입이 들어와서 적응할 생각은 안 하고 불만만 잔뜩 늘어놓으면, 당연히 피곤하죠."
정신의학과는 약 처방을 위해 평균 10~15분 상담하고, 심리상담센터는 상담을 통해 내면을 들여다본다. 어느 누구에게도 상처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이 정도는 미리 알아보고 갔다. 의사가 앞뒤 따지지 않고 내 편이 되어 주길 바란 것도, 단번에 상처를 다 낫게 해 주길 바란 것도 아니었다.
상처 위에 소금만은 뿌리지 않길 바랐는데. 예의상 망설이는 시늉이라도 해주길 바란 건 내 욕심이었나 보다.
그는 소금을, 참 많이도 뿌려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