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해서 그래/ 퇴직금과 타조의 상관관계

타조의 알은 생각보다 현실적이다

by 이다연

퇴직금과 타조의 상관관계




친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밝은 척을 하고 있었지만,

그 밝음이 너무 또렷해서 오히려

더 불안한 종류의 톤이었다.


“나… 진지하게 고민 중이야.”


나는 직감했다.
이건 연애 상담이 아니라 인생 상담이다.


“회사 그만두려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상사가 힘들게 한다는 얘기는 이미 몇 번 들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퇴직금 받고 나와서…
뭔가 새로운 사업을 해보면 어떨까?”


그 순간,


내 안의 4차원 스위치가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켜졌다.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바로 현실적인 계산을 하지 않았다.


대신 생각이 이상한 방향으로
조금씩, 아주 자연스럽게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퇴직금 → 새로운 사업 → 새로운 삶 →
완전히 다른 직업 → 미래의 나 →

…그리고 갑자기,


타조가 떠올랐다.


몇 년 전,
나와 똑같이 4차원적 사고를 하던 선배 한 명이 있었다.


그 선배는 어느 날 정말로 회사를 그만두고
귀농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몇 달 뒤,
나에게 연락이 왔다.


“다연아, 나 타조 키워.”


나는 처음에 장난인 줄 알았다.


“타조?”
“응. 타조. 알도 엄청 커.
와서 먹어봐. 완전 새로운 세계야.”


새로운 세계라는 말에
나는 또 홀린 듯 시골로 내려갔다.


그날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거대한 달걀을 봤다.


정말로 컸다.
달걀이라기보다
작은 우주 같았다.


선배는 그 알을 깨겠다며
망치를 들고 등장했다.


“이건 일반 달걀이 아니야.
의식이 필요해.”


나는 그 순간
이 사람이 정말 퇴직금을 타서
인생을 타조에게 올인했구나,
라는 사실을 뒤늦게 실감했다.


망치로 알을 깨고,
프라이팬에 부어,
“이건 타조 오믈렛이야!”라며
환호하던 선배의 모습은
지금도 슬로우 모션으로 기억난다.


그리고 이어진 2차 코스.


타조 스테이크.


“이거 진짜 고급이야.
씹는 맛이 달라.”


… 맞았다.
정말로 달랐다.


문제는,
씹히지가 않았다.


나는 10분 동안
한 점의 고기를 붙잡고
인생의 선택에 대해 깊이 성찰했다.


이게 바로
퇴직금의 물리적 결과인가.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며
나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은
회사를 그만두는 순간
자유를 얻는 게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책임과 고기를 얻게 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 고기는
생각보다 질길 수 있다는 것을.


친구의 전화로 다시 돌아온다.


퇴직금, 새로운 사업, 새로운 인생…


나는 잠시 상상해 본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무언가를 시작한다면?


아마 나는
타조는 아니더라도
‘우주의 기원을 탐구하는 카페’ 같은 걸
차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메뉴는
블랙홀 라떼, 빅뱅 에스프레소,
그리고 오늘의 질문.


“의식은 어디서 시작되는가?”


…그리고 한 달 뒤,
현실의 계산서 앞에서
다시 깊은 사유에 잠기겠지.


생각은 그렇게

(머릿속에서,

그날의 거대한 타조가

느리게, 그러나 확실하게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미래에서 과거를 거쳐
다시 현재로 돌아왔다.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새로운 사업도 멋있지.
근데… 퇴직금은 생각보다 무겁고,
타조 스테이크는 생각보다 질겨.”


잠시 후 답장이 왔다.


“… 그냥 조금 더 다녀볼까?”


나는 웃었다.


가끔은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새로운 인생에 대한 상상으로 이어지지만,
그 상상 속에서도 결국
나는 다시 현실의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나를 발견한다.


고독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아직 이 자리가
완전히 끝난 자리는 아니라는 걸
어딘가에서 알고 있어서일까.


퇴직금을 받아 새로운 세계로 가는 상상은

분명 짜릿하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나는
타조 알을 망치로 깨는 인생보다,
조용히 커피를 식히며
다음 문장을 생각하는 인생에
조금 더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래서 오늘도 나는
그만두지 않고,
조금 더 버텨보기로 한다.


고독해서 그래.


그리고,
아직은 여기에서 써야 할 문장들이
남아 있는 것 같아서 더그래.


감성 에세이, 일상, 고독


― EP.5《고독해서 그래》: 《퇴직금과 타조의 상관관계》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