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늘 다른 인생을 상상하게 한다
봄날 아침의 출근길은
사람을 조금 위험하게 만든다.
같은 길, 같은 시간, 같은 발걸음인데도
공기의 결이 달라지면
마음이 먼저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기 때문이다.
지하철역으로 내려가는 계단 위에서
나는 잠시 멈춰 선다.
햇살이 이상하게 따뜻하고,
바람이 이상하게 부드럽다.
겨우내 단단히 접어 두었던 마음이
조금씩 느슨해지는 느낌.
그 틈으로
익숙한 생각 하나가 슬며시 들어온다.
“오늘은 그냥…
반대 방향을 타면 어떨까?”
플랫폼에는 늘 같은 사람들이 서 있다.
이어폰을 꽂은 채 서 있는 직장인,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화면을 넘기는 누군가,
아직 덜 깬 얼굴로 기지개를 켜는 누군가.
그리고 그들 사이에 서 있는 나.
몸은 여기 있지만
생각은 이미 다른 노선을 검색하고 있다.
만약 오늘,
정말로 반대 방향 전철을 탄다면?
회사 대신 공항으로 가서
아무 계획도 없이 비행기 표를 끊어버린다면.
아니면 바닷가 근처 작은 도시로 가서
하루 종일 카페에 앉아 글만 쓰며 지낸다면.
누군가에게는 사라진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나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길일지도 모른다.
전광판에 열차 도착 안내가 뜬다.
내가 타야 할 방향,
내가 늘 타던 노선,
내가 이미 수백 번 서 있었던 자리.
문이 열리고
사람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자연스럽게 탄다.
나도,
아무 일 없다는 듯 그들 사이에 섞여 들어간다.
출근길에는 늘 두 개의 인생이 함께 움직인다.
몸으로 살아가는 현실의 인생과,
마음으로 잠깐 살아보는 평행우주의 인생.
현실의 나는 손잡이를 잡고 서 있지만,
평행우주의 나는 이미 다른 도시에 도착해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을지도 모른다.
봄은 그런 계절이다.
현실을 바꾸지 않아도
마음의 궤도만 살짝 바꾸게 만드는 계절.
그 궤도 위에서 우리는
아직 선택하지 않은 삶들을 잠깐씩 살아본다.
지하철 창밖으로
연분홍 꽃들이 스쳐 지나간다.
나는 문득 생각한다.
저 꽃들도
다른 방향으로 피어볼 수는 없었을까.
그러다 결국,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피어나는 쪽을 택했겠지.
열차가 익숙한 역에 도착한다.
사람들은 한꺼번에 내려
각자의 회사로 흩어진다.
나 역시 같은 흐름 속으로 걸어간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얼굴로.
아무 상상도 하지 않은 사람처럼.
하지만 나는 안다.
오늘 아침,
나는 이미 한 번 다른 인생을 다녀왔다는 것을.
그 평행우주에서 나는
조금 더 가벼운 발걸음으로,
조금 더 솔직한 얼굴로 살고 있었다는 것을.
그래서일까.
현실의 회사 문을 밀고 들어가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아직 따뜻한 햇살이 남아 있다.
떠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곧 머무르겠다는 선택은 아니고,
머무르기로 했다는 선택이
곧 포기라는 뜻도 아니라는 것을.
나는 이제 조금 안다.
우리는 매일 같은 출근을 하지만,
매일 다른 인생을 잠깐씩 살아본다.
그 상상 덕분에
다시 현실의 자리로 돌아올 힘을 얻는지도 모른다.
봄이니까.
조금은 다른 삶을 꿈꿔도 괜찮고,
그래도 다시 같은 자리에 앉아
오늘 해야 할 일을 해도 괜찮다.
나는 오늘도
반대 방향 전철을 타지 않았다.
대신
그 상상을 마음속에 잠시 태워 두고
익숙한 자리에 조용히 앉았다.
고독해서 그래.
그리고
아직 이 자리에서
써야 할 문장들이 남아 있는 것 같아서.
감성 에세이, 일상, 고독
― EP.6《고독해서 그래》: 《출근길의 평행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