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해서 그래/ 외유내강

프레젠테이션에서 살아남는 법

by 이다연



직장에는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발표를 하는 사람과
발표를 버티는 사람.


나는 후자다.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마다 늘 생각한다.

“이게 왜 내가 해야 하는 일일까.”


그러나 직장인은 대부분 그 질문을

마음속에만 넣어 둔 채 다음 슬라이드를 넘긴다.
그것이 바로 직장인의 외유내강이다.


에피소드 1


PPT는 완벽한데 노트북이 배신할 때
프레젠테이션의 가장 큰 적은 사실 경쟁 회사가 아니다. 노트북이다.


어느 날이다.
슬라이드를 완벽하게 준비했다.
그래프도 있고 애니메이션도 있고

심지어 적절한 여백까지 있었다.
완벽했다.


문제는 노트북이 그 완벽함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빔프로젝터에 연결하는 순간 화면이 이렇게 바뀌었다.


글씨 크기 8pt
그래프 화면 밖 탈출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
오늘은 인생을 말로 설명하는 날이구나.”


그러나 겉으로는 웃으며 말했다.


“조금 작네요.
제가 설명드리겠습니다."


+외유내강 1단계

속으로는 인생의 모든 선택을 후회하고 있지만 겉으로는 차분하다.


에피소드 2


“한 장으로 요약 가능하죠?”


발표 준비를 하며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있다.


“이거…
한 장으로 요약 가능하죠?”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생각한다.


“그럼
제가 지금까지 만든 32장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하지만 직장인은 그 질문을 하지 않는 대신 말한다.

“가능합니다.”


그리고 기어코 밤 11시 30분에

32장을 한 장으로 압축하는 기적을 만든다.
다음 날 발표.


슬라이드 한 장.
상사가 말한다.


“좋네요.
근데 설명 좀 더 해주세요.”


그 순간 깨닫는다.
슬라이드는 줄어도 설명은 줄어들지 않는다.


+외유내강 2단계

겉으로는
“네 설명드리겠습니다.”

속으로는
“그럼 왜 한 장으로 줄였죠?”


에피소드 3


질문이라는 마지막 관문,
프레젠테이션이 끝난다.
그리고 나온다.
직장인의 가장 무서운 말.


“질문 있으신 분?”


이 질문은 사실 질문이 아니다.
운명의 룰렛이다.
그리고 꼭 있다.
한 명.


“그 부분은
현실적으로 가능한가요?”


그 질문을 들으면 사람의 머리는 잠깐 멈춘다.
뇌는 그 순간 엄청난 속도로 계산한다.


도망칠까
설명할까
물을 마실까
나는 늘 이렇게 말한다.


“좋은 질문입니다.”


이 문장은 직장인의 시간 벌기 기술이다.
그 사이에 생각한다.
그리고 말한다.


“가능합니다.
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놀랍게도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때 깨닫는다.
침착함의 절반은 연기다.


+ 외유내강의 진짜 의미

외유내강은 카리스마가 아니다.
프레젠테이션 중에 USB가 안 열려도
웃을 수 있는 능력이다.

겉으로는 차분하지만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제발
다음 슬라이드 넘어가라.”


그래도 우리는 마지막 슬라이드를 넘기며 말한다.


“이상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자리에 앉는다.
그 순간 비로소 깨닫는다.
사람은 강해서 침착한 것이 아니라
침착한 척하다 보니 강해지는 것이라는 걸.


나는 오늘도 프레젠테이션을 한다.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 여전히 생각한다.


“혹시…
PPT 저장 안 했으면 어떡하지?”


고독해서 그래.

그리고 아직 이 자리에서
발표할 일이 조금 더 남아 있는 것 같아서.


감성 에세이, 일상, 고독


― EP.7《고독해서 그래》: 《외유내강》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