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은 계획이 아니라 사건이다
퇴근 직전 10분은 시간이 아니다.
재난 예고 구간이다.
이 시간에는
평소에는 존재하지 않던 일들이
갑자기 생겨난다.
하루 종일 조용하던 메일함이
퇴근 10분 전에 갑자기 출산을 시작한다.
제목은 늘 같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내용은 정중하다.
마지막 문장은 더 정중하다.
“오늘 안에 가능하실까요?”
나는 늘 궁금하다.
이 메일은… 방금 태어난 걸까.
아니면 아까부터 숨어 있다가 튀어나온 걸까.
퇴근 직전이 되면 사람들이 진화한다.
평소엔 조용하던 사람이 갑자기 말문이 트인다.
“다연님, 잠깐만요.”
이건 평소의 ‘잠깐’이 아니다.
길다
깊다
끝이 없다
그리고 항상 급하다.
방금까지 아무 일 없던 사람이
퇴근 10분 전에 인생이 급해진다.
가끔 이런 상상을 한다.
퇴근 10분 전.
모든 것이 멈춘다.
메일도, 메신저도, 사람도.
나는 조용히 컴퓨터를 끈다.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는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다.
바로 열린다.
나는 탄다.
문이 닫힌다.
그 순간—
아무도 뛰어오지 않는다.
… 이건 거의 SF다.
퇴근 10분 전.
갑자기 이런 말이 등장한다.
“잠깐만요, 이거 5분만 회의할까요?”
이 ‘5분’은 시간 단위가 아니다.
개념이다.
회의는 이렇게 시작된다.
“간단하게 공유만 할게요.”
“빠르게 끝낼게요.”
“이거 금방이에요.”
그리고 20분 후.
아무도 끝낼 생각이 없다.
오히려 더 깊어진다.
갑자기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고,
없던 문제도 생긴다.
누군가 말한다.
“이건 내일 이어서 하죠.”
그 순간, 모두 안다.
이건 끝난 게 아니다.
내일로 증식한 것이다.
현실은 늘 타이밍이 정확하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순간,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
“어디 가세요?”
나는 웃으며 말한다.
“퇴근이요.”
그 사람의 표정이 밝아진다.
“아, 잘됐다.”
직장인이라면 안다.
이 말은 절대 좋은 말이 아니다.
이 말 뒤에는 반드시 붙는다.
“이거 잠깐만…”
그 ‘잠깐’은 보통 30분이다.
이 시간, 직장인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모른 척하기
아는 척하기
하지만 우리는 안다.
모른 척해도 결국 알게 된다는 것을.
그래서 말한다.
“네, 말씀하세요.”
이 한마디로 퇴근은 사라진다.
퇴근 직전 10분은 짧다.
하지만 많은 것이 결정된다.
오늘 내가 집에 갈 수 있는 사람인지,
회사에 남을 사람인지.
나는 오늘도 이 시간을 지난다.
겉으로는 평온하게,
속으로는 생각한다.
“오늘은… 진짜 될까…”
그리고 늘 같은 결론에 도착한다.
퇴근은 계획이 아니다.
사건이다.
고독해서 그래.
아무도 대신 이 10분을 살아주지 않으니까.
그래서 오늘도,
나는 조금 늦게 퇴근한다.
감성 에세이, 일상, 고독
― EP.9《고독해서 그래》: 《읽음 1의 공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