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은 식사가 아니다
회식은 식사가 아니다.
행사다.
그리고 가끔은, 시험이다.
나는 그걸 매번 늦게 깨닫는다.
퇴근 10분 전.
슬슬 정리하려고 마우스를 놓는 순간,
누군가 말한다.
“오늘 회식입니다.”
…
잠깐 멈춘다.
이건 공지가 아니다.
이미 끝난 이야기다.
이미 예약이 되어 있고,
이미 모두가 알고 있고,
나는 지금에서야 듣고 있을 뿐이다.
자리에 앉으면 누군가 묻는다.
“뭐 드실래요?”
나는 잠깐 고민하는 척을 한다.
고기를 먹을까,
아니면 다른 걸 먹을까.
하지만 안다.
이건 선택이 아니다.
“다 같은 걸로 주세요.”
누군가 그렇게 말하면 그걸로 끝이다.
그 순간, 내 취향은 조용히 빠져나간다.
회식에는 속도가 있다.
고기 굽는 속도
술 따르는 속도
웃음이 커지는 속도
그리고 가장 빠른 것.
시간이 사라지는 속도.
아까까지만 해도 퇴근이었는데,
왜 벌써 여기 앉아 있는 걸까.
회식에는 기술이 필요하다.
적당히 웃고, 적당히 반응하고,
적당히 취한 척하는 것.
나는 그걸 꽤 잘하는 편이다.
…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눈치 보며 타이밍을 재는 것.
상사의 농담에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늦지도 않게
딱
0.5초 뒤에 웃는 것.
이건 거의 생존 기술에 가깝다.
회식이 조금 풀릴 때쯤
꼭 등장하는 말이 있다.
“편하게 얘기해요.”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조금 더 조심스러워진다.
정말 편하게 말하면
내일이 불편해진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모두 알게 된다.
편하게 들리지만,
편하게 말하면 안 된다는 걸.
누군가 잔을 들며 말한다.
“한 잔 더 하시죠.”
음... 나는 안다.
이건 제안이 아니다.
거의 통보다.
여기서 들어가면
오늘은 끝나지 않는다.
퇴근은 이미 지나간 일이 되고,
시간은 내일로 넘어간다.
그리고 우리는 또 안다.
이 문은 한 번 들어가면
생각보다 잘 닫히지 않는다는 것을.
가끔 이런 상상을 한다.
회식이 끝나고 누군가 말한다.
“오늘은 여기까지죠.”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도 2차를 말하지 않는다.
나는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아무도 나를 붙잡지 않는다.
나는 집에 간다.
조용하다.
…
이건 역시 SF다.
현실은 늘 한 박자 늦게 온다.
“딱 한 잔만 더.”
이 ‘한 잔’은 숫자가 아니다.
의지다.
붙잡고 싶은 마음,
끝내고 싶지 않은 분위기,
그리고 거절하기 어려운 공기.
회식에는 끝나는 시간이 없다.
시간은 남아 있는데 사람이 먼저 지친다.
나는 오늘도 생각한다.
“이쯤이면 된 것 같은데…”
하지만 항상 비슷한 결론에 도착한다.
회식은 식사가 아니다.
이벤트다.
같은 자리에 앉아 있지만
마음은 다 다르다.
집에 가고 싶은 사람은 많다.
그런데 먼저 일어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조금 더 앉아 있는다.
그게 조금 편해서가 아니라,
조금 덜 불편해서.
고독해서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