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태스킹의 비극
나는 동시에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정확히 말하면,
많은 일을 한꺼번에 벌여 놓는 사람에 가깝다.
그리고 나는 유난히 호기심이 많다.
무언가가 궁금해지면
적당히 알고 넘어가는 법이 없다.
끝을 봐야 마음이 놓인다.
문제는 그 ‘끝’이 처음 출발했던 자리와는 전혀 다른 곳에 도착해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내 일상은 웃기면서도 어딘가 조금 서늘한 이상한 에피소드들이 자주 생긴다.
어느 날 회의 중이었다.
누군가가 가볍게 물었다.
“이 표현, 어원이 뭔지 아실까요?”
그 순간,
내 안의 작은 스위치 하나가
딸깍 하고 켜졌다.
회의는 계속되었지만
나는 조용히 검색창을 열었다.
어원 → 언어의 기원 → 고대 문자 체계 → 음성학 →
인류 최초의 언어는 무엇이었을까 →
언어는 사고를 지배하는가 →
그렇다면 생각은 어디서 시작되는가 →
의식의 기원 →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우주는 왜 존재하는가’라는 논문을
읽고 있었다.
회의는 이미 끝났고, 누군가가 물었다.
“그래서… 그 표현 어원은 아셨어요?”
나는 잠시 멈췄다.
“… 아직…
우주의 기원 쪽을 보고 있어서요.”
그날 이후
나는 회의 중 검색을 자제하라는
은근한 압력을 받게 되었다.
단어 하나가 내 안에서는 언제나
세계관으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나는 동시에 여러 일을 한다.
정확히는, 여러 일을 동시에 시작한다.
커피를 내리면서 세탁기를 돌리고,
메일을 확인하다가
글 아이디어가 떠올라 메모를 하고,
그러다 문득
“세탁기 필터 구조는 왜 이렇게 생겼을까?”가 궁금해져 분해 영상을 찾아본다.
그러다 타이머가 울린다.
커피는 이미 식어 있고,
세탁기는 멈춰 서 있고,
메일은 미완성이고,
메모장은 ‘필터 구조’로 가득 차 있다.
생각 모드에서 현실 모드로 천천히 돌아온다.
분명 나는 계속 움직였고,
머릿속은 쉼 없이 일하고 있었는데,
현실 속 결과물은 아무것도 완성되지 않았다.
나는 일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일의 방향을 너무 많이 바꾸며 계속 이동만 했을 뿐이었다.
어느 날,
지인의 말투가 평소와 조금 달랐다.
그 한 문장이 머릿속에서 계속 재생됐다.
“왜 저렇게 말했지?”
나는 분석을 시작했다.
어제의 대화를 떠올리고,
목소리 톤을 복기하고,
그날의 컨디션과 상황을 추측하고,
혹시 숨은 의미가 있었는지
여러 개의 시나리오를 세웠다.
A안: 서운했다.
B안: 피곤했다.
C안: 내가 뭔가 실수했다.
D안: 사실 아무 의미도 없었다.
나는 결국
모든 가능성을 검토한 뒤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혹시 그때 그 말에
다른 의미가 있었을까 해서요…”
잠시 후 답장이 왔다.
“어? 그냥
배고파서 급하게 말한 건데요 ㅎㅎ”
나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상대의 한 문장으로
나는 이미 머릿속에서
감정의 장편소설을 완성해 버린 뒤였다.
가끔은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 엉뚱한 사람인 건
능력이라기보다
조금 과잉된 호기심의 부작용 아닐까 하고.
나는 동시에 많은 일을 시작하고,
끝까지 알고 싶어 하고,
쓸데없이 깊이 파고들다가
혼자 아주 먼 데까지 갔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그 반복이
웃기기도 하고,
조금 피곤하기도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과정을 거칠 때마다
나는 다시 지금의 나로 돌아온다.
커피는 식어 있고,
세탁기는 멈춰 있고,
답장은 이미 와 있고,
검색창에는 여전히
‘우주는 왜 존재하는가’가 남아 있다.
그 풍경을 바라보다 보면 문득 알게 된다.
나는 일을 못 하는 사람이 아니라,
너무 많은 세계를 동시에 열어 두고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하나의 단어에서 사유로,
사유에서 이야기로,
이야기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이 반복 속에서
지금의 내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도.
완벽하진 않지만,
엉뚱하고,
조금 느리고,
그래도 끝까지 궁금해하는 사람으로.
그래서 오늘도
여러 갈래의 생각 사이를 오가다가
ㅡ회의 중에는 검색창을 닫아 두려고 노력하면서
(물론… 아직 성공한 적은 없지만.)
결국 다시
나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고독해서 그래.
그런 내가 나 답다는 생각을 하면서.
감성 에세이, 일상, 고독
― EP.4《고독해서 그래》: 《검색의 끝은 언제나 우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