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 되지 못해서 다행이다
나는
포커페이스가 잘 안 되는 사람이다.
마음이 얼굴로 바로 송출된다.
딜레이도 없고,
편집도 없다.
그래서 회의실에서는
이미 말하지 않은 말까지
표정으로 먼저 말했다가 곤란해진다.
반면 우리 상사는 포커페이스다.
아니, 포커페이스를 넘어
표정 최소화 모드에 들어간 아주 특별한 사람이다.
좋은 소식을 전해도
“음.”
나쁜 소식을 전해도
“음.”
음 하나로 회의가 시작되고
음 하나로 회의가 끝난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프로젝트가 엎어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이미 얼굴에
‘아… 망했다’
‘이거 다시 처음부터잖아’
‘집에 가고 싶다’가 순서대로 지나간다.
그걸 본 상사는 나를 보고 말한다.
“표정 관리 좀 하세요.”
그분은 프로젝트가 엎어졌다는 말을 들을 때도
마치 점심 메뉴를 고르는 얼굴이다.
“그럴 수도 있죠.”
그 얼굴로 사람의 멘털을 한 번 더 눌러준다.
또 이런 경우도 있다.
내가 열심히 설명하다가
스스로도 말이 길어졌다는 걸 느끼는 순간,
내 얼굴에는
‘아, 말 많았다’
‘지금 잘라야 하나’
‘아니, 끝까지 가야 하나’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러면 상사는 말없이 물을 한 모금 마신다.
그 물 마시는 속도에 이미
평가가 다 들어 있다.
나는 그 순간 말을 멈춘다.
상사는 그제야 말한다.
“계속하시죠.”
이미 멘털은 한 번 접힌 뒤다.
그래서 가끔은 생각한다.
포커페이스가 인생 스킬이 맞긴 맞는구나.
표정 하나로 손해를 안 보고,
질책도 덜 받고, 괜히 오해 살 일도 없으니까.
나는 포커페이스가 안 돼서
손해도 보고, 괜히 혼나기도 하고,
“왜 그렇게 다 드러내냐”는 말도 종종 듣는다.
그런데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표정까지 숨기며 일하는 건
너무 고급 기술 같다.
나는 아직 그 정도의 인간은 아니다.
속상하면 속상한 얼굴이고,
억울하면 억울한 얼굴이고,
좋으면 티가 나는 얼굴이다.
그래서 손해를 봐도 사람 같다.
질책을 당해도 로봇은 아니다.
포커페이스는 없지만 감정은 있다.
그게 가끔 불편하고, 피곤하고, 손해일지라도.
그래도 인간다운 내가 조금은 더 낫지 않나(?) 싶다.
고독해서 그래.
오늘도 표정 관리에는 실패했지만,
인간 관리에는 아직 희망이 있다고
혼자서 우겨본다.
감성 에세이, 일상, 고독
― EP.2《고독해서 그래》: 《아, 포커페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