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해서 그래/ 리턴, 잘 돌아왔어 오늘로

도시는 오늘도 나를 돌려보낸다

by 이다연



나는 가끔 미래의 직업을 상상한다.

대체로 지금 일이 잘 안 풀릴 때다.

프로젝트는 지연되고,

“며칠만 더요”라는 말이
이미 세 번째 업데이트됐을 때,
하루가 끝났는데 한 일보다
설명한 일이 더 많을 때.

그럴 때 나는 잠깐 다른 인생을 산다.

아무도 나에게 진척 상황을 묻지 않는 직업.

회의가 없고,
보고가 없고,
“이건 왜 이렇게 늦죠?”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


상상 속의 나는
정시에 출근하지도 않고,
정시에 퇴근하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상상은 여기서 늘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나는 어느새
사람 대신 로봇과 일하고 있다.

아니, 로봇 밑에서 일하고 있다.


그 로봇은 완벽하다.

감정이 없고, 지연이 없고,
“그럴 수도 있죠” 같은
애매한 말도 하지 않는다.


내가 말한다.

“프로젝트가 조금 늦어질 것 같습니다.”

로봇이 대답한다.

“지연 사유 입력 바랍니다.”

내가 말한다.

“동료와의 협업 과정에서
의사소통 이슈가 있었고요…”

로봇이 말한다.

“감정 서술 불필요.
팩트만 입력 바랍니다.”


그 순간 깨닫는다.

아,
나는 사람 때문에 지친 게 아니라
사람 같은 척해야 해서 지친 거였구나.


문득 어디선가 들은 말이 떠오른다.

미래에는 대부분의 직업이 사라질 거라고.
일은 인공지능이 하고,
인간은 원하면 일하고,

원하지 않으면
일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올 거라고.


그 말이 위로처럼 들려야 하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지지는 않는다.


일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서
나는 무엇으로 피곤해질까.

상상 속에서조차 나는 로봇 앞에서
인간성을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상상을 접는다.


이번엔 동료와의 불화가 없는 직업을 떠올린다.
상사가 없고, 회의가 없고,
누구도 나에게 눈치를 주지 않는 세계.


그런데 이번엔 내가 너무 심심해진다.

불화도 없고, 짜증도 없고, 투덜댈 상대도 없다.

그건 직업이 아니라 감정이 삭제된 삶이다.

아무도 나를 재촉하지 않는 대신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느낌.


그제야 알게 된다.

미래의 직업을 바꾸고 싶은 게 아니라,
지금의 피로를 잠깐 벗어나고 싶었던 거다.


현실로 돌아오면
여전히 프로젝트는 지연 중이고,
일상은 늘어지고, 동료와의 미묘한 갈등은
불편한 공기처럼 남아 있다.


가끔은 상상의 잘못된 행위처럼
‘이 삶이 틀린 건 아닐까’
심리적 갈등도 생긴다.


하지만 결국 나는 다시 지금의 자리로 돌아온다.

짜증을 내고, 투덜대고, 불평도 하지만
그래도 끝까지 책임을 놓지 않는 사람으로.


완벽하진 않지만 로봇은 아니고,
불편하지만 아직 사람인 쪽으로.


고독해서 그래.


미래의 직업을 상상하다가
결국 오늘의 나에게로 돌아온다.

프로젝트는 늦어지고, 일상은 피곤하지만,
이상하게도 지금의 나와 지금의 일에
조금은 만족한다는 결론으로.


우습게도, 짜증 끝에 도착한 곳이
다시 현실이다.

그리고 그 현실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감성 에세이, 일상, 고독


― EP.3《고독해서 그래》: 《리턴, 잘 돌아왔어 오늘로》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