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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해서 그래/ 고독은 민소매보다 긴팔을 입는다.

여름, 노출, 그리고 탄수화물

by 이다연


여름, 노출, 그리고 탄수화물


아~ 여름이다.
여자에게는 가장 잔인한 계절, 노출의 계절, 그리고 진실이 드러나는 계절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살이 잘 찌지 않는 체질이다.

“와, 좋겠다~
아무리 먹어도 살이 안 찌는 체질이라니!”

이 말, 한 여섯 백 번쯤 들었다. 그런데 그다음 말은 왜 아무도 안 해줄까?

“음... 근육도 안 생기지?”

맞다.
나는 탄수화물과는 잘 지내는데, 단백질과는 썩 친하지 않다. 아무리 플랭크를 하고, 스쿼트를 해도 내 팔뚝은 그냥 *실선(실제로 얇은 선)*이고, 복근은 희망사항이다.


문제는 여름이다. 다들 탱크톱, 크롭티, 민소매를 입고 으스대며 다니는 이 계절에 나도 비슷하게 따라 입어보지만— 좁은 어깨에 겨우 버틴 어깨끈은 힘없이 흘러내리고, 팔은 해변 대신 연필통에 더 어울릴 것 같고, 복부는 복근보다 복통을 연상시킨다.

“복부는 복근보다 주로
공복과 복통을 담고 있다.”

그래서 거울 앞에 서서 생각한다.

“아…
이래서 내가 고독하구나.”


몸짱이 되려면 단백질, 운동, 휴식이 기본이라는데 나는 탄수화물, 창작, 야식이 주종이다.

운동하러 나갔다가도 오히려 공원 벤치에서 아이디어가 떠올라 노트북 펼쳐 글을 쓰고, 결국 땀은 글쓰기 스트레스로만 흘린다.

몸이 아니라, 생각이 근육질이 되어간다.


며칠 전,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카페에 갔다. 그녀는 한눈에 봐도 ‘운동을 열심히 한 사람’이고, 나는 한눈에 봐도 ‘글을 열심히 쓴 사람’이었다.

주문을 마치고 앉자 그녀는 부러움의 시선을 받으며 시원하게 크롭티를 입고 말했다.

“요즘 데드리프트 80kg 들어. 너는 뭐 해?”

나는 순간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어... 요즘... 비유법 잘 써.”


그녀가 물컵을 들었다. 삼두근이 움직였고,

나는 핸드폰을 들었다. 엄지손가락이 움직였다.

“근육은 다르지만...
우리 각자의 방식으로 무언가를 들고 있긴 하네?”

그녀가 웃으며 말했고, 나는 원인 모를 갈증에 다시 한 모금, 꼴깍...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복근은 없지만, 문장은 조금 단단해졌다고 자기 위로를 담아, 아주 시원하게 삼켜버렸다.


나는 괜찮다. 고독은 나를 민소매 대신 긴팔로 인도하고, 군살 없는 몸 대신 글감으로 채운다.

다들 해변으로 가는 여름, 나는 냉방 잘 되는 카페에 앉아

“근육은 없지만, 문장은 좀 단단해졌지 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두 모금 마시며 위로한다.


언젠가 ‘여름맞이 3일 무료 체험’이라는 헬스장 광고를 보고, 왠지 모르게 내 바디에 죄책감을 느껴 등록을 했다.
첫날, 과감하게 러닝머신에 올랐다. 뛰는 척 걸었고, 걷는 척 서 있었다.

다들 스쿼트, 버피, 데드리프트를 하는데 나는 단백질 셰이크 자판기 앞에서 메뉴만 훑고 있었다.

“고객님은 어떤 운동을 원하세요?”

트레이너가 물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 고요하게 사색하는 운동이요.”

그는 내 몸을 한 번 훑더니 웃지 않고 돌아섰다.


둘째 날엔 쉬었고, 셋째 날엔... 카페에 갔다.

그 후 나는 확신하게 되었다. 운동은 3일도 안 갔지만, 그 경험으로 글 하나는 쓸 수 있겠구나.

3일 체험권의 진짜 용도는 ‘내가 왜 운동과 친하지 않은지를 다시 확인하게 해주는 글감’이었던 것이다.


결론은,


“내가 고독한 건,
헬스장에 가지 않아서가 아니라,
셰이크를 마시기엔
너무 말이 많은 사람이라서다.”


여름은 계속되고, 나는 여전히 실선 같은 팔뚝을 가졌으며, 고독은 나의 그늘막처럼 나를 감싸고 있다. 그래도 괜찮다. 노출의 계절에 노출할 게 없어도, 고독은 내가 원하지 않아도 나를 충분히 채워주기 때문이다.


“나는 고독해서 그래. 아니, 여름이라서 더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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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에세이, 일상, 고독
EP.2《고독해서 그래》: 《고독은 민소매보다 긴팔을 입는다.고독은 민소매보다 긴팔을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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