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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해서 그래/ 예스우먼의 유쾌한 고독

암만여!!!

by 이다연



“암만여~!”

나는 웬만하면 그렇게 대답한다.
사장님이 시킨 보고서? 암만여.
친구의 급작스런 약속 변경? 암만여.
택배기사님이 경비실에 맡겼다고 해도? 암만여, 감사합니다!


나는 '예스우먼'이다. 진짜 내 의지라기보단, 대체로 습관처럼 긍정적인 사람. 명랑한 말투 속에 숨겨진 건, 말랑말랑한 회피력이랄까?

어릴 때는 "안 돼요"라고 하면 눈치 보였고, 사회에선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요" 하면 분위기 깨는 사람이 됐다.


그래서 나는 '예스'를 배우기 시작했다.
"될까요?"
→ “암만여~!”
"이거 가능할까요?"
→ “암만 되죠~~!”
"좀 많이 부탁드려도 될까요?"
→ “암만 많이 든지요!”

어느새 나는 항상 오케이 하는 사람이 되었다. 문제는, 정작 내 마음한테는 '오케이'를 안 한다는 거다.


누군가 부탁을 하면, 나보다 그 사람이 먼저 떠오른다.
‘이걸 안 하면 실망할까?’

‘싫다고 하면 내가 싫은 사람이 될까?’

그렇게 나는 내 안의 ‘진짜 나’한테 매번 이렇게 말한다.

“암만 미뤄도 되지, 너는. 기다릴 줄 알잖아.”
“암만 참아도 되잖아, 넌. 쿨하니까.”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내 안의 내가 이렇게 중얼거린다.

“… 나도 좀 들어주면 안 되겠니?
암만… 그래도 나잖아.”


대학생 시절, 중간고사 팀과제 발표를 해야 하는데 조장이 결석을 했다. 조원들이 조용히 눈치만 볼 때, 나도 따라 조용히 입 다물었어야 했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그놈의 오지랖이, ㅠ

“제가 대신할게요! 암만여~!”

입이 먼저 말하고 있었다.

그날 밤, 발표 준비를 하며 혼자 PPT를 만들고 내용 외우고, 스크립트까지 혼자 짜고— 결국 새벽 3시에 컴퓨터 앞에서 울었다.

‘대체 왜 나만 이런 걸까?’
‘싫다고 하면 되는 걸, 왜 나는 못하지?’

그때 나는 몰랐다. 내 ‘암만여’가 타인을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사실은 “좋은 사람이고 싶었던 나”를 위한 주문이었다는 걸.


어느 프로젝트 미팅 때, 퇴근하려던 오후 4시 50분. 팀장님이 슬쩍 말했다.

“혹시… 잠실에 이 자료 좀 전달해 줄 수 있을까요?”

마음은 이미 ‘잠실은 무리인데요…’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입은 또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암만여! 지금 바로 다녀올게요!”

퇴근 트래픽에 꽈악~~ 막힌 차 속 자료 봉투를 안고 있던 나, 룸밀러에 비친 내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암만, 내가 진짜 너무하긴 하다.’

그날 이후, ‘예스’라는 말에는 살짝 간격을 두기로 했다. 상대보다 내 마음이 먼저 말하게끔 시간을 벌어주는 간격...


결론은 없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오늘도 “암만여~” 하며 살고 있다. 웃으며, 긍정적으로, 순둥이처럼. 하지만 가끔, 아주 가끔은 조용히 고개를 젓는다.

“이건… 암만해도 아니야.”

나도 이제, 나에게 가끔은 ‘아니요’라고 말해보고 싶다. 그래야 ‘진짜 예스’가 시작되는 것 같아서.


오늘도 “암만여~”를 입에 달고 사는 누군가에게, 이 글이 작은 ‘예스’가 되길.

당신의 고독에, 내가 슬며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해본다.

“암만요. 그 마음, 충분히 이해돼요.”

“… 고독해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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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에세이, 일상, 고독
EP.3 《고독해서 그래》: 《예스우먼의 유쾌한 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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