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2-3.4 그 섬에 웃는 상괭이가 산다

by 소안

삼 년 전 여행의 회상에 빠져있나 보니 두 시간이 삽 시에 지나갔다.

3.

배에 오른 선영은 삼 년 전에 왔을 때처럼 상괭이가 나타나 주길 바라며 달 떠있다. 하지만 바다에는 그 어떤 생명체도 보이지 않았다. 배 옆을 스쳐 지나가는 풍광만 변함없이 아름답다. 바람에 밀려가는 해무가 뱀처럼 산모롱이를 돌아 꼬리를 보이며 사라진다. 섬에 도착한 선영이 그때처럼 포구를 빙 둘러보았다.

그런데 삼 년이라는 시간은 기억 안에 있는 섬을 퇴색시킬만한 세월이 아님에도 섬 모습이 생경하게 다가왔다. 오지랖 사내들이 낚시했던 방파제는 반이 뚝 잘려나가 기능을 잃고 목적만 덩그러니 남아 추했다.

낭만을 품고 있던 빨간 등대도 사라지고 없었다. 백사장 또한 자갈밭으로 변해 이곳이 해수욕장이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렵게 했다. 섬 곶부리 해식애도 무너져내려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선착장 한 편 라면집 유리문에도 녹슨 자물쇠가 걸려 있었고 그 문에 쓰인 해물 라면이라는 글씨는 세월 속에 녹아내려 영업을 하지 않은지 꽤 오래됨을 증명하고 있었다. 선영은 실망을 감추지 못한 채 마을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목가적이기도 했던 마을에 상흔이 역력하다. 마을 옆 둔덕에는 배 한 척이 동그마니 올라앉아 있고 낮은 지붕을 이고 있는 집들은 폐가로 변해 환삼덩굴에 점령당해 있었다.


"어머 이 마을 예전에 참 예뻤는데…."


선영은 짧지도 길지도 않은 삼 년이라는 세월을 절감한다. 폐허가 된 마을을 서성이다가 발길을 돌리려던 참이었다. 가계였을 집 간판이 우는소리를 냈다. 건드리기만 해도 떨어져 나갈 것 같아 불안하기만 하다….

유순한 바람에도 덜거덕거리는 간판은 마을에 부는 바람의 정거장이었다. 딸의 이혼을 속상해하던 아비의 술주정이 간판에 들렀다 갔고 공무원 합격 현수막이 나달거릴 때까지, 그 장본인이 높은 자리에 올랐을 때 뇌물을 받고 파면당했던 일도 간판을 거쳐 갔다. 배를 장만했다며 마을 잔치를 벌였던 어린 부부의 싱글벙글도. 장 씨는 고기가 안 잡혀. 김 노인은 고기를 많이 잡았다며, 그렇게 울고 웃는 마을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간판에 앉았다 갔다. 그런 참새 방앗간이었던 간판은 어느 때부터 마을에 부는 바람의 경우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동안의 기억만을 담아두고 모든 부는 것들을 외면한 채 풍문만 안고 있었다. 바다에 빠져 죽은 아비 때문에 졸지에 고아가 된 아이들의 애잔함을 지켜본 뒤부터였다. 가게 안을 들여다보던 선영의 눈이 선반 위 대병 소주를 좇는다. 먼지의 안식처가 되어버린 소주병에서 선영은 전신을 에워싸는 쓸쓸함을 느꼈다. 술병에서 하염없는 기다림을 보았기 때문이다. 고기잡이에 빈 그물만 덩그러니 올려졌을 때, 젊은 놈과 눈이 맞아 집 나간 마누라가 생각날 때 그럴 때마다 주인의 삶을 위로해 주었던 그때를 그리워하고 있는 듯했다.

유순하게 떠돌던 바람이 인기척에 놀란 것일까? 표독스럽게 변했다. 그 탓에 세월의 끈을 놓지 못하고 겨우 처마에 매달려 있던 간판이 결국 땅바닥에 곤두박이 쳤다. 선영은 기겁하여 짧은 비명을 질렀다. 부서진 간판에서 고딕체의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어 흩어졌다. 하지만 유독 대영이란 두 글자는 굳건하게 살아남아 하늘을 본다….

삼 년 만에 온 섬은 많은 게 변해 있었다. 너저분한 섬 모습은 기억 속의 것과 너무도 이질적이라 눈살이 찌푸려졌다. 무엇이 섬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곰곰 생각에 잠겨있으려니 삼 년 전 이곳에 다녀간 뒤 한 달 남짓 됐을 무렵 떠들썩했던 뉴스가 생각났다. 남해안 많은 섬이 태풍에 직격탄을 맞아 방파제가 유실되고 해안가 마을들은 전쟁터를 방불케 할 만큼 초토화됐다는 뉴스였다. 그때의 상처가 삼 년이 넘은 지금까지 아물지 않고 섬 곳곳이 흉물스러운 모습으로 남아있는 것이었다. 그중 섬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본 곳이 이 마을이었다. 강력한 태풍과 함께 마침 사리 물때까지 겹쳐 방파제는 이름이 무색하리만치 파도를 방어하지 못했고 사람들은 집을 잃고 희망마저 잃어 섬을 떠난 게 삼 년 전이었다.


“삼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복구가 안 됐네…? 아! 너무 안타까워 아름다운 마을이 이렇게 짓밟히다니…."


태풍에 피해를 본 해안가 도시와 큰 섬들이 몇 년째 복구작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생연도는 북구의 뒷순위로 밀려 첫 삽질도 못 하고 있다. 섬의 면적과 인구로 보나, 섬이 가져다주는 지방자치의 경제적 이득으로 보나 모든 게 여타 지역보다 열세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람들 귀추도 주목시키지 못했고 자본주의 사회가 가져온 경제 논리에 생연도의 자연은 끼어들 틈이 없었으리라. 태풍은 인간들의 만행에 화가 난 자연의 꾸짖음이거늘 혼이 났음에도 인간은 고양이가 쥐 생각하듯 자연을 빼꼼히 들여다보기만 하는 잘못을 저지른다….

이렇듯 삶의 최고의 가치를 배부른 것에 두고 자연을 등한시한다면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멸종당하리라는 것은 자명한 일일 것이다. 선영이 싹둑 잘려나간 방파제에 앉아 많은 생각에 빠져있던 그때 할머니가 다가왔다.

선영은 할머니에게 상괭이 소식을 물었다. 할머니는 최적의 답안을 던진 후 던져놓은 통발을 걸어 올린다..


”그 넘들 인자 여그 안 올라는 갑소!


몇 년 전부터 통 볼 수가 없당게.. 아 그 넘도 가족들 멕여 살리기가 버거웠던 게지! 낚시로, 그 물로 고기를 깡그리 잡아가서 씨가 마르고 방파제 꺼정 저렇게 허리가 싹둑 잘려나가 물고기가 기대고 살 곳이 없는데 여그를 뭣 땀시 온당가 안 그러요? 보랑게요 저그 저렇게 죽어서 떠밀려 오기나 하덜 안 당기?

저렇게 죽어 나자빠진 넘들이 여기저기 널렸소..."


할머니가 가리킨 곳에서 시커먼 상괭이 사체가 파도에 떠밀려 오고 있었다. 순간 선영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아! 이를 어째. 저 웃는 모습을 뭘까? 차라리 죽는 게 행복해서 웃는 것일까? 행복하게 살다 죽어서 웃는 것일까?"


죽은 상괭이의 웃음 앞에서 선영은 애상에 젖어 어찌할 바를 모른다….

무지갯빛 비눗방울 같은 기대가 퍽 하고 터져버렸다. 삼 년 전 녀석들을 보며 새로운 삶의 방향을 고추 시켰었는데 상괭이의 행복을 볼 수 없음에 아쉬움이 커져만 간다. 불과 삼 년 남짓한 그때 그리고 지금의 틈이 삼십 년처럼 아득하게 벌어져 있는 생연도였다.


"뒷말에 한번 가보쇼 이…! 혹시 그 짝엔 저놈들이 올지도 모른 게.."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머니의 얼굴에 미소가 검버섯처럼 피어났다. 선영은 뒷마을로 향했다. 녀석들에 대한 미련인 게다. 태풍 피해를 입지 않은 뒷마을은 여전히 아름답다. 바다를 뚫고 나온 듯한 해식애와 섬산 애추를 비롯해 상흔이 없는 아름다움이 남아있어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는 선영이다. 다행이지만 건재한 방파제는 태풍이 아닌 사람들의 등쌀에 몸살을 앓고 있었다. 테트라포드에는 낚시꾼들이 촘촘하게 서 있었고, 담배꽁초를 바다로 튕겨내는 이들의 모습에 선영은 심사가 뒤틀려 하마터면 욕이 튀어나올 뻔했다. 상괭이가 떠난 이유에는 낚시꾼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할머니의 일침이 떠올랐다. 그래서일까? 저들의 낚싯대에 물고기가 아닌 허무만 낚였으면 하는 선영의 바람처럼 그들의 낚싯대는 심심해 보였다. 상괭이가 오지 않는다는 건 물고기가 없다는 말과 동의어이거늘, 낚시꾼들에게서 조소가 흘러나왔다. 끝내 심심한 낚싯대들은 채비를 거둬들이더니 선영의 옆을 지나쳐 방파제를 떠난다. 무어라 구시렁거리며 가는데, 아마 고기가 없다며 다시는 오지 말자는 말인 것도 같았고, 선영을 힐끗 쳐다본 짝 달만 한 낚싯대는 여자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도 같았다. 선영은 그들의 뒤통수에 대갈일성 하고 싶었으나 혼잣말로 조근거리며 말했다.


"고기가 없다는 건 너희들 때문인 거 모르니? 낚시 금지 구역임에도 나 몰라라 하고 쓰레기 함부로 버리고, 치어까지 깡그리 잡아 방파제 위에 던져버리고, 처먹을 그거 아니면 살려주든지…. 바로 너희들 같은 인간 때문에 물고기도 없고 상괭이도 오지 않는, 결국 사람도 떠나는 섬이 되는 거야, 인간들아…! 그리고 나 이제 너희들이 생각하는 그런 여자 아니거든…?"


선영도 낚시꾼처럼 구시렁거리며 방파제를 등졌다.

봄 햇살이 포근함을 건너뛰고 더위를 느끼게 한다. 윗도리를 벗어 뒷좌석에 던진 선영이 섬 해안 도로를 달린다. 섬에는 봄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꽃들은 저들끼리 축제라도 벌이는 양 화려함을 뽐내며 섬을 가득 채웠다. 열흘을 넘기지 못한다는 우주의 섭리를 알고 있다는 건지, 실컷 누리고자 계절의 화룡점정을 가져왔다.

그러다 열흘 후에는 화양연화의 미련에 벌벌 떨다 이파리로부터 쫓겨가겠지.

선영이 자동차 오디오 볼륨을 최대치로 올린다. 휘가로의 결혼 이 중창이 공기와 바다와 그리고 봄과 어우러져 마음에 풍부하게 녹아든다. 차창으로 팔을 뻗어 지휘하며 영화 주인공 흉내를 내본다. 파도는 고요하게 찰랑거리고, 바람도 유순하게 꽃들을 간지럽혔으며, 초록의 적막강산에 멧비둘기가 구구거린다. 이 모든 게 선영의 지휘에 따라 찬란한 연주를 같다….

섬 곶부리를 돌아 길이 끝나는 곳이었다. 차를 세운 선영이 무엇을 보았는지 차에서 내리더니 길옆에 쪼그려 앉아 깔깔댄다…. 그곳에는 꽃잎을 뒤로 발랑 까 젖히고 속을 훤히 드러낸 채 꽃술을 살랑거리며 뭔가 유혹하고 있는 나리꽃이 있었다. 그 유혹에 넘어간 선영이 그 꽃을 어루만지며 마음이 쇠락해짐을 느낀다….


"어머! 너 너무 야하다 얘. 조금만 오므리면 안 되겠니? 발랑 까진 게 도도 되기까지 하네?"


꽃에 건네는 말장난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계절이었다. 선영은 선글라스를 벗고 오롯이 꽃 송어리들의 색채를 만끽하며 봄에 가슴을 씻었다. 그때 콧속을 파고드는 익숙한 내음이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유발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선영이 향기의 진원지로 다가갔다. 섬길 끝 한가로운 바닷가 그곳에는 남색 터틀넥이 잘 어울리는, 바람머리를 흩날리는 남자가 있었다. 그의 앞에는 캠핑용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그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힐끔힐끔 바다를 한 번씩 바라보는 모습에서 머릿속의 분주함이 읽혔다. 갈매기도 남자의 글 감성을 도우려는 건지 날갯짓이 부지런하다.


"아! 남자도 아름다울 수 있구나!"


오도카니 서서 남자를 훔쳐보던 선영은 남자에게 다가가 분주함을 방해했다. 분주함을 방해한 게 아니라 남자의 그리움을 끊어버렸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커피 향이 참 좋네요!."


"커피 향에 이끌리셨군요! 잠깐만요."

바람머리의 남자는 자동차에서 캠핑 의자를 꺼내와 펼쳤다.


"앉으세요. 한잔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바다에 넋을 놓고 있는데 커피 내음이 솔솔 풍겨와 못 참겠더군요!


가만 보니까 로스팅해서 내리시던데, 바다를 보면서 만들어 먹는 커피는 어떤 맛일까 궁금하기도 했고요!" 제가 커피 만드는 사람이라…."


"아! 바리스타군요. 여행을 할 때는 커피에 더욱 정성을 다합니다. 커피 향이 그윽해질수록 여행 감성도 풍부해지더군요."


선영이 곁눈질한 노트북 화면에는 빼곡한 글자들이 세상 밖으로 꺼내 달라 아우성치고 있었다. 문자들과 달리 세상에 나온 소리는 절규하고 있다. 파도 소리에 존재감을 잃기 싫은 탓일 것이다.


"어머! 사라사테 군요? 그런데 파도 소리 때문인가? 파도 소리에 묻혀버리는 존재의 허무, 나타낼 수 없는 가치의 표류, 이러한 이유로 지고이네르바이즌의 바이올린이 절규하는 것 같아요!!"


"사람의 마음에도 이와 같은 게 있지요! 추억을 따라다니며 존재의 부각을 위해 암 덩이처럼 커지는 그리움도 파도 소리에 묻히기 싫은 바이올린이 절규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것 같습니다."


바다에 음악을 얹어놓은 두 사람의 대화는 담백하고, 그 모습이 바다를 배경으로 미려하다.


"낚싯대도 던져놓으셨네요. 뭐 좀 잡으셨어요?"


낚싯대를 본 선영은 방파제의 낚시꾼들이 생각났다. 하지만 그 낚시꾼과 이 낚시꾼은 뭔가 다르겠지 생각하며 싸잡아 도매금으로 넘기면 안 될 것 같았다.


"네. 이것저것 많이 잡았습니다."


"어머, 여기 고기 없다며 어느 할머니가 그러시던데…. 저기 방파제에서도 낚시꾼들이 투덜대며 가던걸요. 망태기 좀 봐도 될까요? 물고기 보고 싶네요!"


선영의 활달함에 바람머리 남자가 빙긋이 웃으며 물에 넣어놓은 망태기를 가리킨다….


"에계계!! 한 마리도 없네요? 많이 잡았다면서요…?"


"물론 많이 잡았지요! 안 보이십니까? 추억도 희망도 너무 많은 걸 잡아 그곳에 다 담아 놓을 수가 없어 제 가슴에도 담아 놓았는데…."


남자가 눈 앞으로 흘러내리는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그 표정이 쓸쓸해 보인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하얀 얼굴이 바다로 향했다.


"어머! 이 섬에 추억이 많은가 보군요. 추억놀이에 제가 끼어들어 방해했나 봅니다."


"추억이란 루비콘강 너머 아득한 풍경일 뿐이죠. 슬펐거나 행복했거나, 가끔 이렇게 추억의 장소에서 그 언저리를 들여다보는 것도 나름 재밌습니다."


남자는 바다로 향하던 얼굴을 선영에게 돌리며 미소 짓는다.

"나이를 먹으니 추억을 먹고사는 것 같아요! 때론 눈물을 흘리며, 때론 미소 지으며…."


두 사람 사이에 잠깐의 침묵이 흐른다. 파도에 대적하느라 지친 것인지, 바이올린의 절규는 들려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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