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맞는 선생님과 수업 찾기
재미있게도(?) 나의 첫 발레 선생님은 발레리'노' 였다. 거주하던 외국에서 몇 번의 발레 시범 수업을 들어봤으나 번번이 제대로 이어지지 못했고, 드디어 한국에 돌아와 꾸준히 발레를 배울 수 있는 상황이 되었을 때 동네 가장 가까운 발레 학원에 등록했다. 전화로 퇴근 후 갈 수 있는 저녁 시간대 기초반 수업으로 등록하며 '여자 선생님 맞죠?'라고 물어보려다 괜히 물어보는 것도 우스운 것 같고 당연히 여자 선생님이겠지 생각하고 말았다.
첫 수업 날, 인터넷으로 뭐가 뭔지도 모르고 대충 주문해 사이즈도 맞지 않아 숨 막히는 레오타드와 요령 없이 두른 스커트 등 생전 처음 입어보는 발레복을 옷 안에 대충 우겨 입은 상태로 학원에 들어간 순간, 원장실에서 날 맞이한 것은 놀랍게도 남자 발레 선생님이었다. 괜히 민망함도 잠시, 수업이 시작되자 눈으로 선생님의 시범과 다른 수강생을 열심히 좇으며 동작을 따라하기 바빴고 그 선생님의 수업은 지금까지도 가장 빡센(!) 수업의 자리를 지킬만큼 힘들었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던 기억이 난다. 운동이라곤 안 하던 몸에 갑자기 고강도 수업을 받고 근육이 놀랐는지 그다음 날 의자에서 일어나서 걷기가 힘들어 점심도 배달시켜 먹었다. 재택근무라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그러고는 곧 익숙해져 몇 달간 잘 들었다.
그 수업은 정말 힘들었는데 덕분에 지금까지 발레뿐만 아니라 모든 운동을 통틀어 유일하게 배에 복근까진 아니어도 아주 살짝 옆 선이 보여서 기뻐 날뛰었던 기억이 있다. 물론 곧 사라졌고 그 이후로 다른 데서도 계속 발레를 하긴 했지만 그렇게 스파르타 수업은 없어서인지 아니면 내가 여기저기 옮겨 다니느라 열심히 못 해서인지 그 선은 아직 다시 보지 못했다. 한국에서 남자 선생님의 수업을 들어본 것은 이 쌤이 유일하고, 외국에서 몇몇 남자 선생님의 수업은 들어 보았지만 워낙 과정 자체가 한국에 비해 설렁설렁(?) 즐기자 마인드인 곳이어서 그런지 개인 스타일 차이인지는 몰라도 내가 경험한 외국 남자 선생님 수업은 그다지 힘들지는 않았었다.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여자 선생님들의 수업도 개개인마다 스타일이 많이 다르다. 엉망진창으로 따라해도 잘했어요~! 라며 격려해주는 우쭈쭈형 쌤(감사하다), 자세 하나하나 실시간으로 지적해주며 한계를 끌어올리는 쌤 등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몸 쓰는 방법을 정확히 알려주면서 '적당히' 한계치를 높이도록 독려해주고(무리 가거나 다치면 안 되니까) , 바 순서를 너무 복잡하지 않게 짜서 몸에 집중해서 운동효과를 낼 수 있게 해 주는 수업이 좋았다. 그리고 음악이 좋은 수업ㅋ 대부분의 발레 학원에서 무료/유료로 1회 시범 수업을 들어볼 수 있으니 들어보고 자신과 맞는 수업을 고르면 된다.
발레 수업의 특징이라면 수준이 높다고 꼭 그 수업만 듣는 것은 아니고 기초만 수업에도 다양한 레벨의 사람들이 있다. 아무래도 고급반으로 갈수록 동작이 복잡해지고 빨라지니 따라하기 바빠 몸을 단련하고 싶다면 기초 수업이 가장 좋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발레를 처음 시작하면 제일 기초반을 들어가도 사실 따라가기 힘들다고 느끼기 쉽다. 발 번호, 팔동작 등을 세심하게 처음부터 가르쳐주기엔 이미 초급반이라도 진도가 나가 있는 경우가 많으니까. 초반에 나 역시 열정을 발휘해 유튜브도 보고 인터넷도 찾아보고 하며 셀프 복습을 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수업을 따라가기도 힘들고 질려서 포기했을 수도 있다. 다행히 발레가 재밌어서 혼자 찾아보는 것이 그리 수고롭지 않았다.
발레 특성상 옷을 갖춰 입고 가는 게 좀 번거로우니 학원은 가까울수록 좋은 것 같다. 하지만 나 역시 결국엔 시범수업을 들어보고 조금 멀어도 마음에 드는 곳으로 가게 되더라. 나의 기준은 물론 일정에 맞는 수업 스케줄과 수업 스타일, 그리고 운동시간이 즐거워지는 환경 등이다. 시드니에 있을 때 좀 멀어도 오페라 하우스 근처에 위치한 SDC 학원에 주말마다 가서 운동했는데,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길을 따라 내려가는 코스와 크고 외국 느낌 물씬 나는(?) 스튜디오에 가는 게 좋았던 이유도 크다. 지금 다니는 국내 학원도 가장 가까운 곳은 아니지만 깔끔하고 예쁘게 꾸며진 스튜디오가 운동하는 즐거움을 높여준다.
시간대는 개인 스케줄에 따라 정해지겠지만 아무래도 오전에는 중요한 일이나 머리 쓰는 일을 하고 저녁 무렵 운동하는 것이 신체 흐름에 맞는 느낌이었다. 오전 수업을 들어버리면 하루가 바빠지기도 하고 또 발레 수업 특성상 힘들고 복장까지 조이다 보니 끝나고 나면 몸이 너무 힘들기 때문에(나만 그런가) 바로 씻고 쉴 수 있는 저녁 수업이 개인적으로는 좋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