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첫 직장의 기억
말레이시아에서 나의 첫 직장은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다시피 했으나 당시는 꽤 이용자가 많았던 모 온라인 여행사의 한국어 고객지원을 담당하는 아웃소싱 업체였다. 인터넷으로 호텔이나 항공권을 예약하고 나서 뭔가 변경하고 싶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 고객센터로 전화하면 연결되는 곳. 사람들은 한국인이 받으니 센터도 한국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실제로 우리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그중에서도 여행자들이 오는 곳과는 거리가 있는 외곽 지역에 있었고, 말레이시아 외에 중국 대련에도 다른 아웃소싱 업체가 있어서 한국에서 전화를 하면 둘 중 한 군데로 연결되는 구조였다(그때만 해도 대련이라고 하면 미지의 세계 같은 느낌이었는데 요즘 대련이 여행지로 핫한 걸 보니 세월의 변화를 느낀다).
아무튼 이 지리적 특성은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가끔 '진상' 고객으로부터 찾아오겠다는 협박을 받을 때면 마음의 위안이 되어주었다. 만약 서울 한복판에서 일하고 있었다면 어떤 사람들은 정말로 찾아왔을 테지만 말레이시아 P 지역에서 일하던 우리는 결코 여기까지 찾아올 수는 없다는 확신이 있었으며 실제로 내가 있을 때까지는 한 명도 없었다.
첫 외국 생활의 신고식이라도 치르듯 이곳은 지금까지 거친 다수의 업직종 중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곳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쉴 틈 없이 전화가 들어오게 되어있는 업무 환경도 그렇지만(언젠가 전화 종료 후 다음 전화가 평소보다 너무 오래 들어오지 않아 시스템을 실수로 꺼두었나 싶어 놀라 확인해 보니 고작 20초인가 밖에 지나지 않았어서 옆 동료와 함께 웃퍼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역시 직장 내 어려움의 화룡점정은 사람이 아니던가? 그런 극한의 업무 환경 또한 누군가의 작품이었고, 이곳을 기점으로 나는 외국에서 일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한국에서 일하는 것보다 자유로울 수 있지만 외국 내 한국 사회에서 일하는 것에는 또 다른 맹점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아무래도 회사 자체의 휴가나 업무시간, 혹은 위계질서 등에 있어 눈치는 조금 덜 봐도 되지만 반대로 지금 한국에서라면 법이 무서워서라도 할 수 없는 행동도 거리낌 없이 행해지기도 하고, 외국인 관리자들은 한국인과 한국문화를 잘 모르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도 관리도 잘 안되고 좁은 외국 내 한국사회에서 한번 셋팅된 환경은 어지간해서 바뀌지 않는다. 말레이시아에 오기 전 근무하던 곳에서 몇몇 한국 특유의 근로문화에 부조리함을 느끼며 외국에서 일하면 어떨까 경험해 보고 싶었던 나로서는 그야말로 여우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난 격이었다(이때 삼재였다).
외국에 간다고 실컷 얘기하고 와버렸으니 오자마자 돌아갈 수도 없고, 어리고 경험이 부족하니 이런저런 부당한 상황에 대처 능력도 떨어지고, 게다가 계약상 '의무 근로 기간'이란 것이 있어 1년 전에 그만두면 위약금을 내야하는 상황이어서 당시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은 그 1년을 간신히 버티다 끝나자마자 이직하거나 한국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고, 누군가는 견디지 못하고 '추노'(계약을 정상 종료하지 않고 그냥 한국으로 돌아가 버리는 식으로 도망치는 경우)를 하기도 했다.
말레이시아를 떠나고 언젠가 인터넷에서 누군가가 여행 업계는 아니지만 '전화받는 그 쉬운 일도 못하면 뭘 하냐'는 식으로 적은 글을 보고 혼자 피식 웃었던 기억이 있다. 분명 그 사람은 이런 일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일 것이다. 그 사람의 생각과는 달리 이 일은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다. 회사에서 고객이 경험할 수 있는 내용 A-Z 중 매번 무엇이 들어올지 모르니(또 쉴 틈 없이 들어오고 즉각 답변해야하니까) 타 부서에서는 모르는 내용까지 다 숙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세세한 것까지 파고드는 한국 고객에게 만족스럽게 설명하고 납득시켜야 하며(우리가 일하는 것을 옆에서 보던 중국팀 동료는 학을 뗐다) 매번 다른, 그러나 대부분 긴급인 이슈를 동료 간, 타 부서 간, 해외 호텔이나 한국 내 기관 간 조율해 차질 없이 빠르게 풀어야 한다.
때로는 내가 생각해도 어불성설인 내용도 상황상 빌다시피 호텔 측에 부탁할 수밖에 없고, 한바탕 받아치고 싶게 만드는 호텔 직원의 빈정거림도 꾹 참고 고객이 원하는 것을 얻어다 주어야 한다. 그리고 당연히 존중받지 못한다. 물론 쉽게 할 수도 있다. 엉망으로 해서 다음에 전화받는 동료를 힘들게 하고 고객의 편의를 하나도 봐주지 못하고 대충 하다 빠지면 쉬울 것이다. 그러나 고객을 최대한 돕고 동료를 배려하려면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이 일을 경험하고 나는 이후 다른 회사의 다른 부서에서 일하면서도 고객지원부서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을 갖게 되었다. 그들 업무만의 고충과 기여, 난이도, 그리고 그에 비해 어느 업종 어느 회사건 조직 내에서 인정과 보상은 적게 받는 구조를 알기 때문에. 실제로 세간의 편견과 달리 그곳에는 고학력에 일 잘하고 인성 좋은 사람들'도' 많았다. 대부분 금방 떠났지만.
이곳에서의 근무를 계기로 나는 불특정 다수를 상대하는 '서비스직'(개인적으로 이 용어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노동의 실제 모습은 왜곡하고 뒤틀린 기대감을 충족해 주기를 압박하는 느낌?)이란 것이 얼마나 나와 맞지 않는지 절절히 깨닫게 되었고 실낱같은 미련을 갖고 있던 어릴 적 승무원의 꿈을 깨끗하게 접게 되었다. 꽤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던 승무원이라는 목표는 이루지 못하게 되었지만,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 친언니가 승무원이 되면서 나에게는 그 고된 육체적/정신적 노동은 겪지 않고 티켓 할인만 누리는 오히려 좋아의 기적이 찾아오게 된다(언니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