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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격에 이런 집에 살 수 있다고?

나의 첫 렌트 계약

by 봄날의 봄동이

"P콘도를 생각하고 있고 예산은 1500링깃 이하예요"


말레이시아에 오기 전, 회사 위치와 주변 콘도 등을 구글맵으로 파악하고 말레이시아 부동산 사이트 아이프라퍼티에서 렌트 시세를 검색해 보았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남과 같이 살기는 불편해하는 사람이라 월세를 더 내더라도 혼자서 편하게, 좋은 컨디션의 집을 구하고 싶었다. 출퇴근이 편하도록 회사 바로 근처의 한 콘도를 마음속으로 정해 놓고는 에이전트를 만났다.


그런데 막상 와서 본 P콘도는 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여기저기 둘러보았지만 딱히 끌리는 집이 없어 고민하던 중 에이전트가 신축 콘도에 첫 입주인 매물을 보여주었는데 회사 바로 앞인 위치에 구조며 디자인이 마음에 쏙 들었다. 서울에서 독립을 생각하며 알아보던 원룸들보다 훨씬 좋은 투베드 투배쓰 집. 하지만 예산 초과. 에이전트에게 말하자 집주인과 네고해 가구가 없고 입주 청소를 생략하는 조건으로 1600에 해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나중에 확인한 그 집은 베란다 밖으로 사무실이 보이는 뷰가 꽝인 집이었다. 당시 나는 어리고 렌트 계약도 처음이라 여러모로 허술하게 그 집을 계약했지만 집 자체는 매우 마음에 들어 그런대로 잘 지내긴 했다.


그 집에서는 여러가지 에피소드가 있었다. 첫 독립에 신나서 직접 가전가구를 채워 넣다 결국 기진맥진해 타일 바닥에 드러누운 기억, 말레이시아의 긴 연휴 기간, 갑자기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는데 연휴가 끝나야지만 사람이 올 수 있다고 해서 거실 천장 뚜껑(?)을 열어 수도밸브를 직접 잠갔다가 씻을 때만 풀며 버틴 일, 처음 하는 외국 생활에 잘 때 무서워서 추워도 천정팬을 틀어 소음을 만들어 놓고 자던 일, 한국에 잠시 다녀오니 습한 날씨에 한쪽 방 벽에 곰팡이가 피어 깜짝 놀라 닦아내던 일, 혼자 방 두 개 화장실 두 개인 집에 좋아하다 나중엔 청소가 힘들어 다음엔 화장실 하나인 집으로 이사가야지 다짐하던 기억, 잠시 친구와 함께 지낼 때 집에 도마뱀이 들어왔는데 둘 다 소리만 지르다 친구가 나보다 더 무서워해서 결국 내가 빗자루를 들고 밖으로 밀어낸 일 등등.


참고로 말레이시아에서 집을 렌트하는 경우 보증금은 월세의 2.5배 수준이고 관리비는 집주인이, 세입자는 공과금 정도를 납부한다. 계약 시 부동산(에이전트)에 지급하는 수수료도 집주인이 1개월치 월세 정도의 금액을 내는 것으로 알고 있고, 세입자는 스탬핑(공증) 명목으로 에이전트에게 약간의 금액을 지불한다. 이 공증료도 그때 알아본 바로는 집 면적에 따라 산출식이 따로 있고 실제 금액은 훨씬 저렴하지만, 외국인 입장에서 에이전트가 제시하는 금액을 수고비 조로 내는 것이 관례처럼 여겨졌었다. 나는 당시 300링깃 정도의 금액을 냈던 걸로 기억하고 약간 더 높은 월세를 계약한 지인은 600 정도를 냈다고 했다. 보증금은 현금으로 지불했는데(계약 만료 때 집주인이 내가 낸 현금 보증금을 고무줄로 묶어 보관했다가 그 지폐 그대로 꺼내서 돌려주던 장면이 기억이 난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당시만 해도 말레이시아는 콘도 선택지가 많고 렌트 가격이 저렴한 편이라 그 정도 가격에 좋은 컨디션의 집을 구할 수 있었지만 그 후 바로 다음 해, 또 그다음 해 계속해서 렌트비는 오르는 추세였다. 더욱이 코로나를 지나며 말레이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불과 몇 년 사이에 주거비가 크게 상승했다고들 하니 아마 그 가격에 그 정도의 집을 구하는 건 이미 옛날 얘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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