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복선이었나
"이번 여름휴가 어디로 가세요?"
"모르겠어요, 말레이시아 가고 싶긴 한데..."
2013년쯤이었나,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승무원 취업의 꿈을 이루기 위해 본가로 내려와 모 어학원 데스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면접이 있으면 보러 다니고 있었다. 그때 같이 근무하던 정직원 선생님 한 분과 대화를 하다가 여름 휴가지로 말레이시아를 생각 중이라는 말을 듣고 말레이시아라는 나라를 거의 처음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말레이시아? 거기 뭐가 있지?' 궁금한 마음에 한번쯤 검색해 봤다가 흔히 나오는 여행 정보를 보고는 이내 잊어버렸던 것 같다. 그로부터 시간이 조금 더 지난 2015년 무렵, 나는 혼자 아시아 몇 국과 당시 친구가 워킹 홀리데이로 머물고 있던 호주 시드니를 다녀오기로 했다. 그때까지 외국이라고는 대학 1학년 때 친구들과 일본 여행, 대학 3학년 때 일본 오사카 대학에서 교환학생으로 한 학기 지낸 것이 전부라 일본 외의 외국을 경험해 보고 싶었고 계속되는 취준 생활에 지쳐 잠시 답답한 마음을 풀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떠난 여행에서 첫 목적지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였다. 당시만 해도 저가 항공 선택지가 지금처럼 많지는 않았는데 에어아시아를 이용하면 훨씬 저렴하게 다닐 수 있었기에 쿠알라룸푸르를 환승지 삼아 태국, 베트남, 호주 등을 가는 일정을 짰다. 첫날 늦은 밤에 도착해 다소 긴장한 상태로 예약해 둔 공항 호텔로 걸어가며 받은 쿠알라룸푸르의 첫인상은 덥고 습한 공기였다. 그리고 여행을 하며 느낀 건 여긴 관광보다 살기 좋을 것 같다는 것. 쿠알라룸푸르 시내는 생각보다 더 현대적인 모습으로 개발되어 높은 빌딩이 가득하고 인프라가 편리했으며, 사람들은 친절하고 한국인에 우호적이었다. 또 물가는 한국에 비해 저렴하고 영어도 어느 정도 통해 크게 불편함이 없었다.
이어 여행한 태국, 베트남은 아직 충분히 개발되지 않아 불편했고 말이 통하지 않았으며 태국에서는 택시를 탔다가 돈을 더 받기 위해 공포감을 조성하는 기사를 만나기도 했다. 다음으로 넘어간 호주는 일단 물가부터가 비싸고 친절한 쿠알라룸푸르에서 바로 넘어가니 동양인을 투명인간 취급하는 느낌이 대조적으로 다가와 살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한동안 다시 일하고 미래를 고민하며 현생을 살다가 이제는 본가를 떠나 독립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첫 독립지를 물색했다. 나의 성향과 직업 목표, 물가와 주거환경 등을 고려해 독립지를 서울이 아닌 쿠알라룸푸르로 정하고 월드잡 사이트를 뒤졌다. 거기에서 한국어 구사자를 구하는 채용공고를 보고 지원해 몇 번의 면접 끝에 우선 1년 계약으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로 떠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