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의 이별
"엄마 나 말레이시아 가기로 결정됐어"
말레이시아로 독립지를 정하고 나서는 고향 근처에서 일자리를 찾아 가까이 살기를 원하셨던 엄마가 결사 반대할 것을 예상했기 때문에 모든 것이 확정될 때까지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출국일까지 다 정해지고 나서 통보하듯 소식을 전하게 되었고 반응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무슨 소리냐 당장 취소해라 등등.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내 성격을 알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어쨌든 교환학생으로나마 일본에서 지내다 잘 돌아온 경험이 있기 때문일까 반대는 거기까지였다. 결국 출국일은 다가왔고 엄마와 나는 서로 줄줄 흐르는 눈물을 애써 참으며 우리가 두고두고 수도꼭지라고 부르게 되는 이별을 하게 된다. 그 후 삼 년간 수시로 왔다갔다하며 더 이상 수도꼭지는 흐르지 않게 되었다.
언니가 김해공항까지 따라와 배웅해 주었고, 수속하고 탑승장으로 들어가는 내내 열심히 사진을 찍어주었다. 또 수도꼭지가 될까봐 뒤도 제대로 돌아보지 못하고 황급히 손을 흔들며 들어가는 사진이 아직 남아있다. 그렇게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해 회사에서 보내 준 픽업차를 타고 임시 숙소로 향했다. 함께 입사하게 된 몇 명의 동료를 그 차 안에서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고, 낯선 곳에서 긴장해 있다가 인상 좋아 보이는 한국 사람들을 만나니 비로소 마음이 조금 놓였던 기억이 난다.
임시 숙소에 내리자 콘도 단지 내 식당에서 외국인들이 밥을 먹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별것 아닌 그 풍경이 당시의 나에게는 굉장히 이국적으로 느껴졌고 모험이 시작된 것 같은 기분에 설렜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에어컨도 나오지 않아 자동으로 빨리 집을 구해 나가게 되는 임시숙소에서 나는 한국에서부터 미리 찾아두었던 부동산 에이전트를 만나 집을 보러 다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