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보면 다른 말레이시아의 체감 날씨
처음 말레이시아로 떠날 때는 막연히 더운 나라니 여름옷 위주로 입겠거니 생각하고 짐을 챙겼다. 그러나 막상 그곳에서 지내는 3년 동안 나는 거의 긴팔에 긴바지, 봄가을 옷을 주로 입고 다녔다. 실내라면 어디든 에어컨을 하도 세게 트는 바람에 반팔은 도무지 추워서 입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회사, 쇼핑몰, 지하철 등등 일상적으로 가는 어디든 추울 정도로 에어컨을 틀어 대니 긴팔이나 가디건은 필수고, 반팔이나 민소매는 어디 야외로 놀러 갈 때나 한 번씩 입을까 말까 했다. 밖에서 늘 추위에 시달리니(?) 집에서는 에어컨도 거의 틀지 않고 지냈다(물론 개인차가 있고 바깥은 덥고 습하다).
말레이시아에 산다고 하면 '거기 덥지 않아?' 또는 '동남아는 더워서 못 살 것 같아'라는 식의 얘기를 흔히 듣는데 재미있게도 정작 그곳의 한국 사람들이 입을 모아 하던 얘기는 '여름에는 절대 한국 안 간다'는 것. 한국에 있는 지인들은 이곳의 더운 날씨를 염려했지만 우리는 오히려 한국의 혹독한 여름을 피할 수 있음을 다행스럽게 생각하며 지냈다.
말레이시아 날씨에서 의외로 괜찮았던 또 한 가지는 비다. 연중 건기와 우기가 있다고는 하지만 살면서 느낀 체감은 일 년 내내 비슷하게 이랬다 저랬다 하고 딱 잘라 구분하기 어렵다. 스콜성 소나기가 매일이다시피 내리긴 하지만 잠깐 쏟아붓고는 이내 그치기 때문에 하루 종일 추적추적 내리는 한국의 장맛비와 비교하면 오히려 일상에 미치는 불편감이 적었다. 또 비가 늘 오는 곳이라 건물에서 건물 사이 지붕이 연결된 곳이 많아 갑자기 비가 내려도 비를 맞는 일은 많지 않았다. 실제로 말레이시아에서 우산을 챙겨 다닌 기억이 별로 없다.
말레이시아에는 그 기후만의 정취도 있다. 거리에서 보이는 화려한 색의 나무꽃들, 동남아에 있음을 상기시켜 주던 야자수, 해질 무렵 시시각각 색깔을 달리하며 감탄을 자아내던 하늘, 시원하게 쏟아붓던 빗소리, 창문 가득 번쩍거리던 번개, 한낮의 화창한 파란 하늘 등.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에 비하면 일 년 내내 똑같은 말레이시아의 날씨는 단조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도 언젠가 KL 근교의 고지대에 놀러 갔다가 오랜만에 느껴보는 선선한 바람에 감동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런 날씨의 장점은 옷 걱정이 없다는 것. 한국에서는 특히 환절기마다 오늘은 날씨가 어떤가를 생각하며 옷을 입어야 하지만 말레이시아에서는 늘 같은 날씨 같은 온도니 고민 없이 입던 대로 입고 나가면 되어서 아침 시간이 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