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캣맘으로 만든 길고양이 라떼
코로나 팬데믹 기간, 말레이시아에는 이동 금지령이 떨어졌다. 거주지 기준 일정 거리 밖으로는 움직이지 말라는 것. 길에는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깔리고 다니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한국에 계신 엄마는 거기는 아직 그런게 통하는 나라냐며 혀를 끌끌 차셨다. 아무튼 나는 집에 갇혀 재택근무를 하며 집 앞 슈퍼에 다니는 게 고작인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 나에게 위로가 되어준 건 길고양이 라떼.
라떼는 내가 살던 건물 주변을 거점으로 살던 길고양이였다. 처음 봤을 때 라떼는 완전히 아기고양이로, 모성애가 강했던 얼룩무늬 엄마 고양이와 늘 함께 있었다. 너무 귀여워서 한번 만져보고 싶었지만 늘 겁에 질려 도망가기 바빴던 아기 라떼. 그러던 어느 날, 건물 마당으로 잠시 나왔는데 갑자기 엄마 고양이와 라떼가 나에게 쪼르르 달려와 뭐라고 먀-먀-우는 것이다. 발목에 머리를 비비기까지. 뭐지? 갑자기 왜 이러지? 싶다가 생각나는 건 결국 밥밖에 없었다. 홀린 듯 집 앞 슈퍼로 달려가 생전 처음 사 보는 고양이 사료를 대충 사고 밥그릇도 사서 돌아왔다. 허둥지둥 그릇에 담아주니 정신없이 먹던 라떼와 엄마 고양이. 그날부로 나는 소위 캣맘이 되었고 이 고양이들의 사료를 챙겨주는 것이 나의 주요 일과 중 하나가 되었다.
라떼는 쑥쑥 자라 어느덧 일반 고양이의 모습이 되었고 어미고양이는 다른 새끼고양이를 임신해 라떼를 멀리하게 되었다. 이게 고양이들의 특성이라고. 라떼는 엄마에게 가까이 가고 싶었지만 차갑게 거리를 두는 엄마 고양이 때문에 풀 죽은 모습이었고, 나는 그런 두 고양이를 따로 챙겨주며 점점 열혈 집사가 되어갔다. 그 건물에 사는 다른 세입자들은 주변 고양이들을 돌아가며 챙겼는데 나도 메인 집사 중 하나였다. 가끔 특식으로 생선을 구워 내려가면 먹성 좋은 라떼는 입 짧은 다른 고양이 몫까지 다 먹고 점점 덩치가 커졌다.
어느덧 나는 말레이시아를 떠나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고 그곳에서 다른 집사들도 있고 자연 속에서 살던 라떼를 데려올 생각은 할 수 없었다. 그러고 돌아와 얼마 후, 라떼가 한동안 없어졌다가 얼룩 투성이가 되어 지쳐 돌아왔다는 사진을 받고 나는 라떼가 혹시나 나를 찾으러 다닌 것은 아닐까 슬퍼졌다. 집사는 여러 명이었지만 나는 라떼를 살뜰히 챙긴 집사였고, 우리는 이미 친해져 내가 마당에 내려와 의자에 앉아있으면 라떼는 옆에 앉아 꼬리로 내 발을 치곤 했고 내가 배달 음식을 받으러 나가면 역시 라떼는 일어나 나를 따라와 내 발목에 꼬리를 감곤 했기 때문이다.
한국에 돌아와 팬데믹으로 꼼짝없이 갇혀 있을 때, 언젠가 이 시간이 끝나면 라떼를 보러 가고 싶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길고양이들은 수명이 짧으니 지금 내가 가면 라떼가 아직 있을지, 있다 해도 데려올 것도 아닌데 가면 뭐하나 싶어 가지 못하고 5년의 시간이 흘렀다. 라떼가 괜찮게 지냈길. 라떼와 함께 지냈던 그 시절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