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도시, 불타는 산
도시는 숨을 죽이고 있었다.
급하게 포트맥머리 시내를 빠져나가던 그날, 다운타운에는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았다. 도로 오른편으로는 산이 이어졌고, 소나무들은 불길에 휩싸여 타들어가고 있었다.
그 주변엔 이미 새까맣게 그을린 나무들이 죽은 듯 서 있었다. 말 없는 나무들이 그날의 참상을 대신 말하고 있었다.
시내를 간신히 통과하자 고속도로 진입에는 경찰의 허가가 필요했다. 내가 사는 남쪽, 에드먼턴으로 향하려면 통과 승인을 받아야 했다. 피난길에 가장 필요한 건 물, 식량, 그리고 연료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제한된 연료, 기다림의 행렬
주유소는 이미 사람들로 붐볐고, 차량 한 대당 주유는 20리터로 제한되었다.
아마 다음 휴게소까지 겨우 갈 수 있는 정도였을 것이다. 줄을 서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두세 시간이 지난 뒤, 우리는 마침내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그러나 도심의 남쪽은 이미 절망적인 상태였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삶의 흔적조차 잿더미로 변해 있었다.
내 차에는 서로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포트맥머리로 일하러 왔다가 화재로 갑작스레 귀가하게 된 사람. 밴쿠버에서 온 품질관리 담당자, 또 다른 용접사 한 명, 그리고 애타게 도움을 요청하던 캐나다 현지인 한 명까지.
그들과 함께, 우리는 말없이 남쪽으로 향했다. 긴 피난 행렬은 마치 한국의 설날 귀성길처럼 느리지만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사이렌, 안개, 그리고 통제
웽— 웽—
귀를 찌르는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매캐한 연기가 안개처럼 퍼졌고, 산불은 이미 포트맥머리에서 40km 지점까지 북상하고 있었다.
우리는 숙소로 이동하라는 안내에 따라 다시 돌아갔다.
그곳에는 놀랍게도 일반 시민들도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애완동물을 품에 안은 가족들, 말없이 서로를 위로하는 눈빛들. 캐나다 정부는 피해 지역 주민들에게 호텔과 캠프를 무료로 개방했고, 사람들은 조용히 그 공간에 모여들고 있었다.
말 없는 회사, 불안한 사람들
저녁 식당의 접시는 모두 종이로 바뀌어 있었다.
물을 아끼기 위한 조치라 했지만, 진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TV 화면에는 산불의 방향과 대피 지시가 실시간으로 방송되고 있었고, 그러나 내가 속한 회사에서는 아무런 안내가 없었다.
사람들은 불안해했고, 수십 년의 경력을 가진 이들조차 처음 겪는 상황 앞에서 어쩔 줄 몰라했다.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포트맥머리 전체가 폐쇄된대.”
“오일샌드 중단으로 앨버타 경제가 위험할 거래.”
나 역시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렵게 자격증을 따고, 단 두 달만 더 버티면 보일러메이커 멤버가 될 수 있었던 나의 꿈은 그렇게 흔들리고 있었다.
‘각자도생’이라는 말
밤이 깊어갈 무렵, 드디어 회사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다.
“당분간 조업 중단. 각자 알아서 도시를 떠날 것.”
이미 떠난 사람도 있었고, 끝까지 기다린 우리는 허탈했다. 무언가 대책을 기대했지만 돌아온 건 ‘각자도생’이라는 현실뿐이었다.
우리는 결국 숙소에서 짐을 정리하고, 새벽에 떠나기로 결정했다.
그 피난길에서 나는 깨달았다.
왜 많은 캐네디언들이 차에 여분의 기름통을 싣고 다니는지를.
도중에 만나는 주유소마다 들러야 했고, 그때마다 길게 늘어진 줄에 서야 했다.
12시간이 지나 마지막 주유소에 도착했을 때, 나는 사장님이 한국 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분과의 짧은 대화에서, 이번 화재 사태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들을 수 있었다.
“비상사태 선포 전에 주정부에서 전화가 왔어요.
이제부터는 정부가 모든 주유소를 통제한다고. 차량당 20리터까지만 주유하고, 한 시간마다 기름 양을 보고하라고 했죠. 대신 정부에서 기름을 무제한 공급해 주기로 했어요.”
기적처럼 나타난 사람들
밤새 피난길은 이어졌다.
사람들은 정부 지침에 따르며 조용히 연료를 채웠고,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았다.
기름값은 공짜였다.
정부는 세금을 아낌없이 써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고 있었다.
그리고 날이 밝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많은 사람들이 오일통을 들고 북쪽으로 향했다.
자신의 비용으로 수십 개의 통에 기름을 채워, 산불 현장에서 고립된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위해서였다.
길에서 멈춘 차량들에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산타클로스’들이 기름, 물, 음식을 나눠주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그리고 희망
이 얼마나 따뜻한 이야기인가.
정부의 통제는 치밀했고, 시민의 협조는 놀라웠다.
모두가 처음 겪는 대형 재난 속에서도 단 한 명의 인명 피해 없이 마무리된 이번 포트맥머리 화재. 그 배경에는 철저한 훈련과 공동체 정신이 있었다.
위기의 순간, 누군가는 반드시 도움을 준다는 믿음.
이 경험은 나에게 깊은 울림을 남겼다.
나의 조국도 언젠가는
이제 나는 안다.
내 가족과 내가 어떤 위기 상황에 닥쳐도, 이 사회는 반드시 누군가가 손을 내밀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나는 바란다.
내가 사랑하는 조국, 한국도 언젠가는 그런 나라가 되기를.
시민이 믿고 기댈 수 있는 사회.
정부와 국민이 함께 위기를 이겨내는 나라.
그런 날이 머지않아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