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대가의 조언

by 노경문

유튜브에서 한 팟캐스트 영상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출연자는 중년의 남성이었고, 자신의 70년대를 회상하며 말했다.

“그땐 얼마를 벌고, 무슨 직업을 가졌는지가 그렇게 중요하진 않았어요. 그냥 좋아하는 일을 하며 가족과 함께 살면 그걸로 충분했죠. 언제부턴가 세상이 너무 바뀐 것 같아요.”

말이 묘하게 가슴에 박혔다.
이 팟캐스트는 미국의 것이다. 완전히 자연스러워서 놀랍지 않은가.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우리 사회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누구도 명확히 시작점을 짚어낼 수는 없지만,

분명히 어느 순간부터 돈은 거의 모든 가치의 척도가 되었다. 자아실현, 존중, 여유, 사랑까지도.

세계 중년들이, 아니 이제는 20대마저 같은 불편함을 토로한다.

경쟁, 불안, 비교, 끝없는 자기계발. 마치 전 인류가 어떤 동일한 병에 감염된 것만 같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감정이 정말 현시대만의 특별한 증상일까?’

고대인들도 “요즘 세상이 이상해졌다”라고 말하진 않았을까?
헤시오도스는 기원전 700년에 “지금은 쇠세대”라 했고, 플라톤은 ‘요즘 젊은이는 버릇이 없다’는 말을 대화편에 남겼다.
시대는 다르지만, 불안은 반복된다.

그래서 상상 속으로 플라톤의 스승인 소크라테스를 불러냈다.

그는 시장 바닥 같은 곳에 앉아 있고, 나는 그의 곁에 주저앉아 한숨 쉬듯 물었다.

“요즘은 다 돈으로 환산돼요. 좋아하는 일을 해도 돈이 되지 않으면 하찮게 여겨져요.”

소크라테스는 묻는다.

“그대는 돈이 진리를 말해준다고 믿는가?”

“아니요. 그런데 현실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어요. 저도 모르게 기준이 거기로 쏠려요.”

“그대는 자아를 돈으로 정의하는가?”

“아니요. 하지만 자아를 실현하려면 돈이 필요하긴 해요. 대출금도 내야 하고, 아이도 키워야 하니까요.”

“필요와 본질은 다르다네. 그대가 아버지가 된 이후, 가장 크게 변한 것이 무엇인가?”

“… 아이를 안고 있으면, 삶의 목적이 너무 명확해져요. 돈으로 바꿀 수 없는 감정이었죠.”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사랑 없이 정의는 없고, 책임 없는 자유는 공허하네. 그대가 느낀 감정은 삶의 본질에 가까운 것이네.”

“왜 우리는 점점 이 감정에서 멀어지는 걸까요?”

“풍요는 욕망을 낳고, 욕망은 기준을 바꾸지. 기준이 외부에 있으면, 자아는 그 속에서 작아진다네. 중요한 건 ‘다시 나의 중심으로 돌아올 수 있느냐’일세.”

나는 그의 말 위에 긴 시간 동안 머물렀다.

우리가 잃은 건 시간도, 돈도 아니다.
관계 속에서 피어나는 자아다. 경쟁이 아닌 책임 속에서, 비교가 아닌 돌봄 속에서 깨어났던 자아.

하지만 사회는 그 자아마저 돈으로만 측정하려 한다.

그래서 우리는 자아를 실현하려 애쓰면서도, 동시에 잃어가고 있다.

그가 남긴 말이 다시 떠오른다.

“진짜 자아는 언제나 관계 속에서, 사랑 속에서, 책임 속에서 깨어난다.”

그 말을 믿기로 한다.
그리고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해 다시, 아주 천천히 걸어가기로 다짐한다.

그날 밤, 아이의 자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작은 숨소리, 이불을 움켜쥔 손, 얼굴에 남은 낮의 흔적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 마음속 무언가 울렁거렸다.

소크라테스는 나의 중심을 찾아가라 했지만, 나는 중심이 아닌 연약한 나와 마주하고 있었다.

그때, 또 한 인물이 떠올랐다.
프레드 로저스.
정장 위에 카디건을 걸치고, 운동화를 신으며 아이에게 조용히 말하던 그 사람.

“너는 있는 그대로 사랑받을 자격이 있단다.”

그 말이 내게도 건네진 것 같았다.

“요샌, 저 자신을 괜찮다고 느끼기 어렵습니다. 자꾸 비교하게 되고, 자격미달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그는 살짝 웃는다.

“그건 자연스러운 감정이에요. 감정이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것, 그게 시작이에요.”

“어른이니까, 아이 앞에선 더더욱 감정을 숨기게 돼요.”

“완벽하려 하지 마세요. 아이는 당신이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알아야 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감정을 말할 수 있을 때, 아이도 자신의 감정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걸.

그가 덧붙인다.

“사람들은 너무 바빠요. 하지만 사랑은 느릴 수밖에 없죠. 천천히 말하고, 천천히 들어야 하니까요.”

나는 말한다.

“그러니까 아이가 잠든 이 조용한 밤이 중요한 거군요. 지금 이 순간을 느리게 들여다보는 것.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사랑이겠죠.”

그는 마지막으로 미소 짓는다.

“당신은 이미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에요. 단지, 그걸 잊고 지내고 있었을 뿐이에요.”

화,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