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의 실험실

한국 R&D 시스템의 병리, 그리고 한 사람의 이탈

by 노경문

형은 나보다 다섯 살이 많다.
어릴 땐 그 다섯 살이 참 멀게 느껴졌다.


초등학생인 내게 형은 언제나 교복 입고 책상에 앉아 있는 사람으로 보였고, 형은 과학고에 진학해 기숙사로 들어갔다.

그렇게 우리는 언제부턴가 같은 집에 살아도 다른 시간대를 사는 사람처럼 지냈다.

형은 그 시절 나의 세계 바깥에 있는 사람이었다.

형은 전교 1등을 거의 놓쳐본 적 없는 학생이었고, 과학고를 거쳐 KAIST 조기 입학, 석사까지 마쳤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과 내가 사람들 앞에서 자랑하던 형의 경력은 내게는 어느 순간부터 하나의 '스펙트럼'이었다.

눈부신 경로. 그러나 묘하게 쓸쓸한 여운.

그런 형이 27살에 갑자기 군입대를 하고

전역한 뒤, 방향을 틀어 의전원에 들어갔다.

지금은 산부인과 전문의로 개원하여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나는 종종 그가 왜 과학자의 길을 내려놨는지를 생각한다.


그리고 그 질문은, 내가 한국의 R&D 예산 구조를 들여다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예산은 세계 1위, 성과는 어디에


형과 술잔을 나누며 처음으로 들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논문을 위한 밤샘 작업, 형식에 맞춘 보고서 작성, 성과 기준을 맞추기 위한 꼼수들.

“진짜 과학은 없어. 그냥 예산에 맞춰 쓰고, 평가에 맞춰 제출하면 되는 거야.”

그때 나는, 한국의 연구개발이 왜 실패를 두려워하고, 도전을 기피하는지 실감하게 되었다. 형의 경험은 하나의 사례지만, 동시에 구조였다.

한국은 GDP 대비 R&D 투자 세계 1위권 국가다. 매년 30조 원이 넘는 예산을 쏟아붓지만, 그에 비례하는 과학적 돌파구나 산업적 혁신은 눈에 띄지 않는다.

형처럼 연구 현장에 몸담았던 이들이 공통적으로 토로하는 문제는 '형식적 성공률 99%'의 기형적 구조다.

실패는 곧 예산 탈락이기에, 도전적인 과제는 꺼려진다. 성과는 수치로 환산되고, 평가는 요식행위가 되며, 감사는 그 형식만 확인할 뿐 본질은 들여다보지 않는다.

결국 연구자들은 논문 수나 특허 건수처럼 평가 지표를 맞추는 기술자가 되고, 연구 자체는 뒷전으로 밀려난다.

“진짜 하고 싶은 연구는 못 해. 과제를 따기 위해 뭘 하고 싶은지보다, 뭘 할 수 있는 척 해야 하거든.”



왜 형은 의사가 되었는가


나는 형 인생의 그 전환이 단순한 직업의 전환이 아니라, 하나의 체제에서 다른 체제로 이동하는 결단이었다고 본다.

“여기선 내 노력만큼 환자에게 반응이 와. 내가 뭘 했는지 정확히 피드백이 온단 말이지.”

과학기술계에선 수년을 매달려도, 결과가 과제 서류 몇 장으로 환원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구조가 성과를 담지 못할 때, 사람은 떠난다. 형처럼, 많은 연구자들이 입술을 꾹 깨물고 그 실험실을 나섰다.



예산을 줄일 것인가, 더 늘릴 것인가


2023년, 윤석열 정부는 R&D 예산을 14% 삭감했다. 과학계는 즉각 반발했고, 정부는 “카르텔을 깨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응수했다.

하지만 이 논쟁은 낯설지 않다.
예산을 늘리자니 비효율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줄이자니 미래를 포기하는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그런데 이 양극단의 논의에서 빠져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왜 이 시스템이 매번 같은 구조적 병목에 빠지는가’라는 질문이다.

형처럼 연구에 몰두했던 인재들이 왜 떠나는지, 시스템은 왜 혁신을 품지 못하는지,
그 구조를 바꾸기 위한 논의는 늘 실종된다.

도전보다 안정,
창의보다 통계,
연구보다 행정이 우선되는 구조.

그 틀을 깨지 않으면 예산을 아무리 늘려도 소용없다.



중국과는 무엇이 달랐는가?


같은 시기, 중국은 전기차와 반도체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다.
단순히 예산을 많이 써서가 아니라, 다르게 써서 가능한 일이었다.

중국은 실패를 전제로 투자했다.
‘대기금’이라는 이름의 국가 펀드는 지분투자 방식으로 민간기업의 성장을 뒷받침했고,
지자체는 전기차 시범도시를 운영하며 충전 인프라와 수요를 함께 확보했다.

R&D는 논문이 아니라 시장 점유율과 수출 실적으로 이어졌고,
이는 다시 기술 내재화로 환류되었다.

반면 한국은 그 반대다.
예산은 많았지만 '파편화'되어 있었고, 실패는 용납되지 않았다.

행정 중심의 평가와 회계 위주의 감사는 연구자를 행정가로 만들었고,
성과를 위해선 창의성보다 눈치가 더 중요했다.

그 사이, 형은 떠났고 다른 나라에선 실험이 시작됐다.



70~80년대 한국과의 비교


사실, 한국도 70~80년대에는 중국과 비슷한 방식으로 성장했다.

정부 주도 하에 중화학공업을 육성하고, 기업에 자금을 밀어주고,
온 국민이 수출과 외화벌이에 나섰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민주화 이후 개인의 권리, 사회적 투명성, 형평성 논리가 강화되면서
과거와 같은 방식의 ‘동원형 성장’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정부가 산업을 선택하면 곧바로 특혜 논란이 일고,
기업은 정부를 경계하고, 시민사회는 그 모든 움직임을 감시한다.

그런 면에서 중국은 아직 가능했고,
한국은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은?


놀랍게도, 미국 역시 한국과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
대학 중심의 R&D 시스템, 과제 수주 경쟁, 행정적 비효율, 실패에 대한 회피.
모두 한국과 닮았다.

그리고 트럼프의 재선 이후, 미국은 명확한 입장을 취했다.
“줄이고, 돌려라.”

2025년 미국 연방 예산안에는 대학 중심의 기초연구 예산 삭감이 포함되었다.
대신 DARPA(첨단 기술 연구), CHIPS Act(반도체 지원법), 국방연구와 직접 연결되는 산업기술 중심 예산은 유지되거나 증액되었다.

논문이 아니라 무기와 공장에서 성과를 보자는 입장이다.
이는 트럼프식 실용주의이자, 형식의 탈피와 병목을 용인하지 않는 시장 중심 전략이다.

한국과의 차이는 여기에 있다.

한국은 문제를 인식하면서도,
누구도 책임지고 구조를 바꾸지 못한다.

정부는 정치적 부담 때문에 망설이고,
연구계는 생존의 불안 때문에 저항하고,
시민사회는 구조보다 사안에 매몰된다.

반면 미국은 ‘갈라치기’에 가까운 방식으로 과감히 선을 그었다.

비효율로 지목된 부분은 아예 예산을 잘라버리고,
대신 산업으로 옮기는 것이다.

중국은 실패를 감싸 안으며 밀어붙이고,
미국은 실패한 구조를 잘라내며 방향을 바꾼다.

한국은 실패를 부인하며,
같은 오류를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



진짜 문제는 어디에 있는가


현장의 문제는 연구자들의 도덕성 이전에,
실패를 허용하지 않는 시스템이다.

감사를 피하려면 실패는 숨겨야 하고,
평가는 성공만을 요구한다.

그 결과, 모든 과제는 형식상 ‘성공’하고,
모든 실패는 데이터도 없이 사라진다.

예산은 파편화되고,
수천 개의 과제는 중복된다.
국가는 관리할 수 없는 수를 쏟아내고,
연구자는 과제를 쪼개어 살아남는다.

“내가 지금 하는 연구, 서울대에서도 똑같이 하고 있다는 거 나중에 알았어.
정보 공유 시스템이 없으니까.”

이건 단순한 비효율이 아니다.
이건 전략의 부재다.



중간을 믿지 못하는 사회, 그리고 우리의 과제


우리는 늘 둘 중 하나를 택하길 강요받는다.
예산을 줄일 것인가, 증액할 것인가.
규제할 것인가, 풀어줄 것인가.

그러나 형의 경험과 나의 문제의식은 말한다.

“우리가 필요한 건 극단이 아니라 중용이다.”

형이 겪은 시스템은 실패를 벌주는 시스템이었다.
도전적 시도를 인정하지 않고, 안정을 지표로 삼는 체제는
결국 ‘눈치 빠른 사람’만을 살아남게 만든다.

그런 구조에서는
혁신도,
몰입도,
진정성도 자라지 않는다.

R&D 예산에 대한 진짜 개혁은
예산 증액 여부가 아니라,
그 안의 신뢰를 복원하는 일이다.

평가가 정직하고,
실패가 기록되고,
성과가 정당하게 보상받는 구조.

그 구조 안에서
형 같은 연구자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다.



인재가 떠난 자리에서


형이 과학기술계를 떠난 것은,
결국 시스템이 인재를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빈자리를 바라보며 나는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예산을 논하기에 앞서,
사람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그들의 시간,
그들의 열정,
그리고 그들이 떠난 이유.

연구개발은 돈이 아니라 사람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한 사람의 이탈은
곧 한 세대의 가능성이 스러지는 일이기도 하다.

형이 먼저 들어간 그 실험실에서,
언젠가 다시 누군가가 웃으며 나올 수 있기를.
그리고 그때는,
떠나지 않아도 되는 세계였기를.

수, 금,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