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잘못 들은 이름, 어머니

정서적 몬더그린

by 유호현 작가

노래 가사나 문장을 잘못 듣고 다르게 이해하는 현상을 몬더그린이라고 한다.

내 기억 속 최초의 몬더그린은 초등학교 3학년 때 다녔던 컴퓨터 학원에서의 일이었다.

4시에 당당히 문을 열고 들어온 날 보며 선생님이 말했다.

"왜 이렇게 일찍 왔어?"

난 선생님의 칭찬인 줄 알고 쑥스럽게 대꾸했다.

"네! 오늘 좀 일찍 왔어요."

그 말을 하자마자 약간 어이없다는 표정과 함께 이후 계속 날 보며 웃으시는 모습.

그리고 내가 일찍 왔다면 왜 학원 교실은 이미 원생들로 가득한가?

그렇다. 학원 등원 시간은 3시였고 난 한 시간이나 늦은 4시에 도착한 것이었다.

아주 오래전 기억인데 잊히지가 않았다.

그때 나의 천진난만함을 귀엽게 봐준 선생님에게 고마웠나 보다.

아니면 세상을 듣는 방식이 꼭 귀로만 이뤄지지 않는다는 걸 그때부터 어렴풋이 알아가고 있었는지도.

사람은 자신이 듣고 싶은 방식으로 세상을 해석한다.

그 해석이 진실과 다를지라도, 한동안은 그것을 의심하지 못한다.

감정의 오독, 난 그걸 정서적 몬더그린이라 하겠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딸 머피는 아버지를 오해한다.

지구를 떠나 먼 우주로 간 아버지를 '자신을 버린 사람'이라 믿는다.

하지만 아버지는 사실 지구에 남은 딸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걸고 떠난 것이다.

그 사랑을 머피는 버림으로 해석했다.

진심의 부재가 아니라 해석의 오답인 것이다.

나의 기억 속 어머니도 그렇다.


나는 네 살 무렵, 부모님의 이혼을 겪었다.

이후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계모와 살았다.

그리고 중학교 2학년 무렵, 아버지와 내 '진짜' 어머니는 다시 재혼하셨다.

어머니는 그동안의 떨어져 살았던 시간을 보상하듯 같은 레퍼토리의 말을 자주 반복하셨다.

"혹시 너희가 계모에게 쫓겨나면 갈 데가 없을까 봐 엄마는 혼자 살았어."

"난 널 세상 모든 사람 중에 제일 사랑해. 넌 내 보물 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보석이야."


어린 시절 못 받은 사랑에 대한 보상 심리였을까?

어느새 나는 그 말을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래. 부모는 자식을 위해 희생하니깐.

부모는 본능적으로 자식을 사랑하니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내가 어머니 나이에 가까워지며,

결국 어머니보다 한 살 많은 오빠가 되었을 때,

난 그 선명해지는 몬더그린의 진실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 사랑은 내 당연한 권리가 아니었고 당연히 본능으로만 해석해서도 안되었다.

그 사랑은 선택이었고, 결단이었다.


어머니의 젊은 시절 앨범을 펼쳐보면 아주 천진난만한 소녀의 흑백사진들이 있다.

처칠을 좋아했는지 승리의 V 포즈가 제일 많고 앨범 제일 첫 장엔 그 시절에 너무나 과감했던 비키니 사진도 있다.

어머니는 생전 나한테 앨범을 보여주는 것을 좋아하셨다.

난 어머니가 앨범을 펴면 끝까지 다 보는 사람이란 걸 알았기에 그 시간이 지루했다.

어머니가 떠나고 나서야 나 스스로 앨범을 펴기 시작했다.

그 속엔 삶을 사랑했던 한 사람의 흔적이 있었다.


어머니도 누군가의 딸이었고,

누군가의 친구였고,

하고 싶은 것이 많았던 소녀였다.

그 모든 시간을 나와 누나를 위해 미뤄온 사람이었다.


여전히 어머니를 다 알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아는 것이 있다.

어머니는 기다린 게 아니었다는 것을.

살아 있을 때도,

떠난 뒤에도

내 쪽으로 조용히 계속 걸어오고 계셨다.


그 발걸음 소리.

이제는 내게 더 이상 몬더그린이 아니다.

keyword